아내의 章
소개팅을 해 본 적이 꽤 있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인 이십 대에는, 그 시대의 유행인 무리 지어 했던 미팅들이 많았고, 서른 살이 넘어가면서는 주로 지인들이 한 사람을 소개해 주는 소개팅이 주를 이루었다. 소개를 해 주는 사람이 함께 나오기보다는 주로 연락처만 받고 혼자 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기대했건, 안 했건, 상대의 얼굴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그 느낌이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이 오십이 다 되도록 혼자였을 거다.
더구나 무려 ‘스님’이었다는 사람에 대한 나의 선입견 때문에, 처음 마주하는 순간이 너무 두렵고 긴장되었다. 그러나 나이 오십의 인생 내공에서 나온, 하기 싫은 순간을 많이도 마주해 본 경험 때문에, ‘에라~마주하자!’ 하면서 고개를 돌려 일어서서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간단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던 것 같다.
그런데….
뽀얀 피부에, 선하고 환한 인상의 얼굴이었다.
일단 안심이 되었다. 긴장했던 나의 목과 어깨가 풀리는 듯했다.
다음 보이는 건 그의 옷차림이었다. 보통 소개팅에 하고 나오지 않은 옷차림 - 소개팅에 하고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나이 오십인 남자가 보통 하지 않은 옷차림이었다. 카디건인데, 엉덩이를 반쯤 커버하는 클래식 카디건이 아니라, 엉덩이를 가리고도 남게 더 내려온 다소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의 카디건이었다. 하여튼 예상했던 촌스러움의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비로소 그와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카페를 떠나 음식점으로 가기로 했다. 그의 차는 연식이 꽤 되긴 했지만 대형차였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전직이 스님인 사람이 어떻게 이런 차를 몰 수 있을까? 그럼 그렇지. 이 나이에 그도 어느 정도 먹고 사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뒷좌석의 승차감은 4월의 때아닌 매서웠던 바람을 잊게 해 주었다.
음식점에서 여러 가지 대화가 오갔다. 그는 소개팅하기 한 달 전 즈음에 친한 친구와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며, 사촌 동생인 오빠 부인에게 여행 후기를 늘어놓았다. 여행을 같이 갔던 그의 친구도 오빠 부인과 아는 사이 같았다.
그리고 그 친구와 한국의 100대 명산을 정복하기로 했다며, 현재 두 개의 산을 올랐다고 했다. 그는 늘 아침을 아메리칸 스타일로 먹는다고 했다. 7시면 어김없이 계란후라이, 양배추, 베이컨, 토스트 한쪽으로 거의 거르는 일 없이 스스로 요리해 먹는 사람이었다. 이것저것 다른 요리들 이야기로 시간은 흘러갔다.
식당에서 나온 후, 선배 오빠와 오빠 부인은 인사를 하고 떠났고, 둘만의 시간이 왔다. 우리는 근처의 카페로 갔다.
앉자마자 그가 물었다. 자기가 무얼 했는지 알 텐데, 왜 소개팅엘 나왔냐고 물었다. 허를 찌르는 질문이었다. ‘내 나이에 누굴 가리겠어요.’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지 않아도 소개팅에 응한 걸 후회하고 있어요.’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튀어나온 말….
“삶과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었어요. 전 어릴 때부터 죽음에 관해 관심이 많았었어요. 중학교 때, 내일 일어나지 못한다면 어떤 느낌일지 하면서, 못 일어날까봐 잠을 못 자기도 했어요.”
“아~ 그래요? 저도 그랬어요. 고등학교 때, 죽음에 관한 생각으로….”
그는 천천히 조곤조곤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죽음, 귀신, 장례식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시간이 잘 흘러갔다.
그리고 본인이 왜 절에 들어갔고, 또 왜 절에서 내려왔는지도 알려주었다.
난 그 이야기들이 100% 다 이해가 안 되었지만, 설명해 주는 자체가 나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으로 생각하여 그냥 좋게 바라보았다.
나 또한 나의 이야기…. 대학 졸업하고, 무얼 했고, 최근에 회사를 그만두었고,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대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지낸다는 걸 설명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 앞으로 무얼 하며 먹고 살아야 할지 좀 막막하기도 하다는…, 이런 식의 자세한 이야기는 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대화가 진행되는 중, 문득 그는 미아리에서 돗자리를 깔아 본 듯 말을 했다.
“참, OO씨는 열심히 살아 온 사람 같아요. 정말 열심히 살아 온 거 같아요. 그런데 이제 좀 쉬셔야 해요. 쉬어야 그다음 일을 찾을 수 있고, 그리고 다음 일을 잘할 수 있어요.”
그때 나는 문득, ‘이 사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당시에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조금 빨리 퇴직하여, 다음 일을 빨리 모색해야 하는 과제가 옥죄어 오고 있을 때, 그가 그 초조함을 알아채고 어루만져 준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그는 시간이 괜찮으면 등산을 같이 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도 등산을 자주 하진 않지만 좋아해서 흔쾌히 그러자고 답했다.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밤 9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주선자들이 가고 나면, 보통은 더 현실적으로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질 텐데, 우린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로 푹 빠져 있었다. ‘신은 있는가? 귀신은 있는가? 죽음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라는 대화가 꽤 흥미로웠다.
그러는 사이….
“친한 형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죄송합니다만 일어나야겠습니다.”
“아 네 그래요?”
갑자기 살짝 당황스러웠다.
소개팅 처음 자리에서 과연 누가 먼저 ‘그만 일어나자’라고 말해야 할까? 그리고 언제쯤 말해야 할까? 서로 예의를 차리기 위해 밤 9시 정도면 좋은 시간일까? 아니면 카페 주인이 ‘이제 문 닫을 시간인데요….’라고 말하기 전까지일까? 별거 아닌 문제인 것 같아도, 꽤 신경이 쓰이는 문제였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장례식장엘 가야 한다고 먼저 말했다. 그리고 밤 9시였다.
곧 ‘사실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당황스럽거나 아쉬워하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먼저 일어섰다.
그는 전화번호를 물어보며,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늘 죄송합니다.”
꼭 바래다주고 가겠다고 하여, 그 사람 차를 타고, 집 앞까지 갔다. 매우 어색했지만 차 안은 아늑했다. 차에서 내리면서 또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며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오늘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