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章)
지금의 기억으로는 전체적인 실루엣으로 기억이 난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하던 사촌여동생과 매제, 그리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뒤를 돌아보는 그녀의 모습. 그렇게 반쯤 일어나며 뒤돌아서는 모습이 그녀에 대한 첫 번째 각인이었다.
그렇게 돌아봤을 때,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의 모습엔 약간의 당황이 묻어 있었다. 사촌여동생과 매제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 그녀에게도 인사를 했다.
“오빠! 잘 지냈어?”
“형님. 잘 지내셨어요?”
“오. 반가워요. 잘 지냈죠?”
매제와는 같은 학번이라 서로 존대를 하는 사이였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서,
“안녕하세요.”
그러자 그녀는 약간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이것이 우리의 첫 대화였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순간적으로 일어났던 당황한 듯한 표정은 사라지고 금세 편안한 모습이 보였다. 생각보다 나에 대한 인상이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녀의 첫인상은 좋았다. 하지만 느낌으로는 왠지 나오기 싫은 자리를 억지로 나온 듯한 옷차림새였던 것은 기억난다. 정확히 어떤 옷을 입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예의는 차리지만 잘 보이기는 싫은 느낌으로 입었던 것 같다. 상대에게 이쁘게 보이려는 의지는 없어 보이는 그런 느낌의 옷차림이었다.
그래도 단정하고 절제력이 있을 것 같은 힘 있는 목소리와 허투루 행동하지 않는 몸가짐은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었고, 단발에 환한 얼굴은 미인에 가까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그녀의 눈이었다. 눈의 모양과 눈의 크기뿐만 아니라 그녀의 눈에는 영리함과 지혜로움이 깊이 스며있었다.
약간은 반갑고, 약간은 어색하고, 약간은 어수선한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각각 음료수를 시켰다. 사촌여동생과 매제와는 저녁을 같이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가벼운 대화가 오갔다.
그녀는 오랜만에 만나는 선배오빠인 매제와 매제의 와이프인 사촌동생과 주로 대화를 나눴다. 매제가 결혼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와이프를 본 건 처음이라서 재미있어하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녀는 중간중간 나와 눈을 마주치곤 했는데, 꽤 괜찮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대화 중에 매제가 나에게 물었다.
“형님. 오시는덴 길은 막히지 않았어요?”
“시내에서 일이 일찍 끝나서, 한 시간쯤 전에 도착해서 할 일이 없길래, 사우나하고 왔어요.”
그러자 매제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씨익 웃더니,
“사우나~! 허!허!허! 좋죠. 허!허!허!”
매제는 약간 능글맞으면서도 성실한 느낌의 친구였는데, 사촌여동생이 참 결혼을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친구이다. 만약 어렸을 때 만났다면 좋은 친구 사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소소한 대화를 마치고 식사하기 위해 자리를 연남동으로 옮겼다. 내가 운전하고 매제가 조수석, 사촌여동생과 그녀가 뒷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뒷자리의 그녀들은 언제 만났다고 참 친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신기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식당에 도착했다. 그 당시 잘 나가던 중국집이었는데 식당 이름은 잘 생각이 나질 않지만, 명성만큼 맛이 따라주지 못하는 음식점이었다.
그렇게 넷이 가지요리를 비롯한 몇 개의 요리를 시키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도 주로 매제와 그녀, 그리고 사촌여동생이 주로 대화를 나눴고, 나는 간간이 끼어드는 정도였다. 그래도 그렇게 넷이 같이 있는 것은 즐거웠고, 나중의 일이지만 우리 넷은 연애 시절은 물론 결혼 후에도 종종 같이 만나기도 한다.
식사를 마친 뒤, 계산하고 잠시 어수선한 틈을 타서 사촌동생이 은근히 내 옆으로 오더니 옆구리를 쿡 건드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빠~. 정말 괜찮은 분 같애. 잘 해봐.”
그렇게 사촌 동생 커플과 헤어진 뒤, 우리는 근처의 작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걸어서 카페로 가는 동안에, 어색함과 호감이 섞여 있는 상태에서 느껴지는 쌀쌀한 느낌은 묘한 미래의 기시감을 주었다. ‘지금, 이 순간이 미래의 어느 날에 기억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카페에 도착한 후, 자리를 잡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내가 물었다.
“제가 뭐했던 사람인 줄 아시죠?”
“네. 산에 살았다고…. 스님을 했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나오셨죠? 쉽지 않은 자리였을 텐데요.”
그러자 그녀는 약간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삶과 죽음에 관해서 묻고 싶었어요” “참…. 사는 게 쉽지 않아요.”
그 대답에, 이번에는 내가 약간 당황스러웠다. 생각과는 다른 답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참 좋은 친구구나. 왜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친구가 아직 시집을 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좀 안타깝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외모와 대화에서 풍겨 나오는 그녀의 느낌이 성실하지만 좁지 않고, 세상을 넓게 보지만 비굴하지 않고, 바르지만 딱딱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나도 이날 꽤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만약 이런 여자라면 결혼해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50을 바라보는 나이는 혼자라는 삶이 쉽지 않았을 것이고, 열심히 살았지만, 해답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잘 살아왔다고….
그렇게 그날은 대화 도중에 등산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음 기회에 등산이나 한번 같이하자는 말을 끝으로 만남은 끝이 났다. 마침 그녀의 집이 멀지 않아서 바래다주었다. 그리고 친한 선배형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오전에 받은 터라, 안암고대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