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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Jul 26. 2024

첫만남 - 女

아내의 章

일상이었다. 늘 살던 삶을 그날도 살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의 남편을 만나던 날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일상 이상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를 만나기 전, 그 공휴일의 낮을 어떻게 보냈는지 뚜렷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만큼 소개를 받는다는 사실에 기대감도 없었고 치러야 할 행사 정도의 의미였던 것 같다. 하지만 명확히 기억나는 건 정말 나가기 싫었다는 것이고, 그래도 그나마 남아있는 기억을 더듬어 보면 4월 초인데도 날씨가 쌀쌀하다 못해 매서웠고, 옷을 어떻게 입고 나가야 할지 고민을 한 것 정도이다.     


아마도 그날은 그런 일상이었을 것이다. 박사논문을 끝내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적당한 시간에 나른한 아침햇살을 맞으며 적당히 일어나는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일어나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을 아버지와 함께하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했을 것이다.      


그렇게 부모님과의 식사가 끝나면 아빠와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즈음부터 아빠는 설거지를 도맡아 하려고 하셨다. 여든이 가까워지시면서 무언가 가정에 도움을 주고 싶어 하시는 건지는 몰라도 제법 완강하게 주장하셨고 그럴 때면 나는 못 이기는 척 설거지를 양보하곤 했다.      


엄마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성당에 갈 준비를 하셨고,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외출할 채비를 하곤 했다. 대단한 준비는 아니고 노트북과 책 한 권을 챙기는 정도였고, 엄마와 함께 현관을 나서서 밖에 나오면, 엄마는 성당을 향해서 가셨고, 나는 집 근처에 있는 별다방으로 향하곤 했다.     


별다방에서 커피 한 잔을 시키고, 노트북을 켜고 못다 한 일을 하기도 하고, 혹은 그동안 읽지 못한 책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동생한테서 어김없이 전화가 온다. 딸 셋중에 내가 첫째이고 이 시간에 전화하는 동생은 둘째인 바로 밑에 동생이었다. 이 동생은 20대 후반에 결혼하고, 딸 둘을 가진, 알뜰하고, 착하지만 똑 부러진, 그러면서도 정이 많고 일복도 많은 동생이다. 동생은 내가 살고 있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단지에 살고 있었고, 같이 살고 있는 나보다 부모님을 잘 챙기는 효녀이기도 했다. 그런 동생은 시집을 가지 않고 부모님과 살고 있는 내가 마음에 걸렸는지, 늘 주말이면 조카들과 함께 나와 시간을 보내줬다.     


“언니! 뭐해?”

“별다방에 있어. 올래?”

“그럴 거 뭐 있어. 집으로 갈게”

“그래. 집에서 보자”     


알뜰한 동생은 늘 커피전문점에서 마시는 커피값도 아끼려고 했다. 좋은 주부라고 생각한다. 내가 동생이 올 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하면, 성당에 가셨던 엄마는 돌아와 계셨고, 조금 뒤에 동생이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다.  동생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면서,     


“언니!”

“응, 왔어? 뭐 마셔?”

“아니 물 마셔. 집에서 커피는 마시고 왔어.” “OO(조카)가 이제 슬슬 논술 준비를 해야 하는데ㆍㆍㆍ”

“아, 내 후배가 얼마 전에 딸래미 논술 선생님이 너무 좋다고 하던데ㆍㆍㆍ”

“그래? 그럼, 언니가 좀 알아봐 줘”     


그렇게 든든한 큰딸, 믿음직한 언니, 그리고 조카들에겐 아낌없이 퍼주는 골드이모의 역할에 만족하면서 살아왔고, 늘 주말이면 동생과 조카들을 만나서 이것저것 많은 소소한 일들을 함께 했다. 영화관에 가거나 미술관에 가거나 멋진 카페나 갤러리를 찾아다니며 나름의 라이프스타일도 향유하곤 했다.      


그날도 5시 약속만 아니면, 그런 일상들을 동생이나 조카와 함께 즐겼을 것이다. 영화관에서 멋진 영화로 새로운 여행을 경험했거나, 아니면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생각지도 않게 맛있었던 커피 맛에 주말의 끝을 아쉬워했을 것이다.     


그날의 오후는 어느새 다가왔다. 


‘뭘 입고 나가지?’

‘날씨는 왜 이렇게 스산한거야~.’    

 

뭘 입든, 어떤 치장을 하든, 내 나이가 감춰지지는 않아 보였고, 잠시 뒤에는, ‘에이~ 모르겠다. 그냥 잠깐 만나서 저녁 먹는다고 생각하지 뭐~.’ 짧은 긴장감이 휘몰아쳐 왔지만, 오히려 소개팅하는 남자를 만나는 기대감보다는 오랜만에 만나는 그 오빠와 오빠의 부인을 보는 일이 더 기대되었다.


그렇게 준비를 갖추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시간은 대략 15분 전 정도였고, 2층에 자리 잡은 카페에서 영화 잡지를 펴서 막 읽으려는데, 뒤에서  

    

“일찍 왔네.”     


뒤를 돌아보니 오빠와 부인되시는 분이 서 계셨다. 오빠의 부인은 오빠와는 다르게 키도 크고 커트 머리를 한 세련된 느낌의 사람이었다. 


그렇게 반갑게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시작하려는데,     


“오빠~! 여기야.”


내 뒤쪽 입구에서 다가오는 누군가에게 오빠의 부인이 손을 흔들었다. 오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형님! 여깁니다.’라고 인사를 했고, 


나도 반사적으로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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