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章
2018년 4월 초의 어느날. 시간이 흘러 약속의 날이 왔다. 그날 날씨는 봄이 오다가 시샘을 하는지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꽤 쌀쌀한 날이었다. 카디건에 남방과 청바지를 입고 나갔는데 꽤 추웠던 기억이 난다. 전날까지 날씨가 따뜻해서 그 정도의 옷이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쌀쌀했다.
약속장소는 상암동 YTN건물 2층에 있는 카페였다. 여기에 근무하는 매제의 퇴근시간에 맞춰서 정한 장소와 시간이었다. 약속시간은 5시였다. 그냥 전화번호만 주는 요즘 방식이 아니었고, 우리 세대가 좀 구식이기도 해서 매제와 사촌 여동생이 같이 나오기로 했다. 매제는 카페에서 만나 간단히 인사만 하고 연남동 쪽으로 옮겨서 식사를 같이하자고 했다.
사실 이일은 사촌 여동생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어릴 때부터 사촌여동생은 비교적 근처 동네에 살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작은 이모가 우리집으로 자주 놀러 오셨기 때문에 나와는 어릴 때부터 친했다. 이쁘장한 외모에 붙임성도 좋아서 어릴 때부터 나를 잘 따랐고 동생이 없던 나와 나름 잘 지냈었다.
산에서 내려와보니 매제와 결혼을 한 상태였는데, 사촌여동생도 늦게 매제를 만나 결혼을 해서인지 아이는 없었다. 처음 매제를 봤을 때, 꽤 괜찮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번은 나와 같고 지금도 서로 존대를 하지만, 이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친구로 사귀고 싶은 스타일이었다. 성격이 맺힌데가 없고 둥글둥글하면서 유머감각도 있는 친구였다. 아무래도 사촌여동생의 성격은 털털한 듯 하면서도 뾰족한 듯한 데가 있는데 이런 면 때문인지 부부가 다정하고 친구같은 사이로 보였다.
사촌여동생이 보기엔 내가 산에서 내려와 대략 홀아비로 사는 모습이 보기 싫었던 것 같다. 소개를 받기 전에 한 번 만나서 칼국수를 먹었는데,
“오빠! 그래도 혼자는 아니야. 옆에 누군가 있어야 자리가 잡혀.”
“오빠가 맘에 들때까지 남편이랑 찾아보기로 했어.”
“근데 이번 분은 꽤 괜찮은 분인 것 같아.”
“그리고 카톡프로필 봤는데 이뻐~”
“잘 해봐.”
첫 번째로 소개받은 것이 지금의 아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아마될 때까지 소개를 해줬을 것이다. 사촌여동생은 그렇게 나를 친오빠 이상으로 챙겨주려고 했다.
대부분의 스님은 환속한 다음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성(聖:출가의 삶)에서도 살지 못하고, 속(俗:세속의 삶)에서 살지 못하고 방황한다. 특히 여자 문제로 환속을 한 분들은 대부분 여자들에게 버림받고 한심한 인생을 살기도 한다. 버림받는 이유는 경제적인 능력 때문이다. 대부분 젊어서 배운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는 이상을 추구하는 삶이기 때문에, 순간의 욕정에 눈이 멀어 파계하기는 해도, 세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에는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여자문제로 환속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그럭저럭 살 수 있었던 것은 집안의 뒷받침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엄청난 부자는 아니어도 꽤 부유한 편이었기에, 스님을 그만두고 내려와서도 빠듯하게나마 살 수 있었다. 거기에 지역에서 초중등생들에게 영어과외를 하면서 나름 벌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개받는 자리엔 매제와 사촌여동생이 같이 나오는 자리였다. 나는 그날 나름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서 준비하던 자격시험을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니다가 약속 시간이 좀 남아서 약속 장소 근처 사우나에서 목욕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별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서 마음속에서는 생각과는 다르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현실과 경제적 압박 속에 그런 기대는 마음 한편에 금세 숨어들어 갔다. 그냥 오늘 하루만의 만남이지만 성실하게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YTN 건물 지하에 주차하고, 시계를 보니 대략 15분 전쯤이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2층에 도착해서 카페에 들어가니, 매제와 사촌 여동생이 멀리서 반갑게 손을 흔들었고, 맞은 편에 앉아있던 그녀의 일어서는 뒷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