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에 소개팅이라니... 마지막으로 남자를 소개받은 지도 십 년 이상은 된 것 같은데 소개팅이라니...
누구라도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막상 소개팅을 하겠다고 해 놓았지만, 당장 그날 너무 나가기 싫은 마음이 나를 휩싸고 도는 느낌이 드는 경험 같은 것. 그래서 갑자기 소개팅 주선자에게 전화해 너무 몸이 아파 못 나가겠다고 했거나, 집안에 큰 일을 핑계대기도 했던 경험 같은 것들...
그러나 나이가 먹으니 그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름 사회에서 살아오면서 익힌 약속의 무거움도 알고 있었고, 주선한 분에게도 그리고 나오는 그분에게도 그러면 안 된다는 양심은 있었다.
왜 싫었을까?
주선자는 지금의 남편을 소개팅해준 날을 기준으로 30년 전에 만난 인연이었다. MBC아카데미 시절, 그곳은 방송에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어떤 사람은 PD나 작가를 꿈꿨고, 어떤 이들은 촬영감독, 조명감독, 음향감독 등을 꿈꿨다. 주선자는 아카데미에서 만난 나보다 두 살 많은 남자선배였다. 선배라기보다 동기여서 오빠라고 불렀는데, 같은 분야에서 각자의 꿈을 좇던 사람들이라서 금세 친해졌다. 지금에 와서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푸른 젊음의 한 페이지였다. 풋풋했으며, 순수했고, 열정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그런 젊음이었다.
그렇게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고 경쟁했던 우리는, 그 시절의 아카데미가 끝나고는 다들 자기의 꿈을 향해 흩어졌고, 젊음의 한 챕터는 그렇게 다음으로 무대를 옮겨갔다. 이후 그래도 같은 분야에 있던 사람들이어서인지 아는 사람을 통해 서로의 소문만 간혹 확인할 순 있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만나기도 애매하고 만나고 싶을 정도의 사이도 아닌 그런 상태였다.
그 소개팅 주선자인 오빠도 그런 방식으로 소식이 끊겼고 간혹 뭐하고 있다라는 식의 소문만 간간이 들려왔다. 그러다 한참이 지나서 그 오빠가 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다행이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각자의 삶에서 20여 년이 흘렀고, 상암동은 방송의 메카 비슷한 곳이 되었다. 많은 방송사들이 여의도에서 상암동으로 몰려들었고, 그에 따라 많은 방송쟁이들이 상암동에 흘러들었다.
그러던 어느 가을의 점심시간이었던 것 같다. 점심의 상암동은 여기저기서 식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한 손엔 커피를 들고 거리를 걸어가는데, 멀리서 뭔가 서로 아는 것 같은 느낌으로 상대가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그 오빠와 나도 서로를 알아봤다.
“야~ 오랜만이다. 넌 어디에 있어?”
“진짜~ 우리 몇 년만이지?”
그렇게 우연히 만나서 약속을 잡고 며칠 뒤 점심을 같이했다. 그 오빠는 YTN에서 기자를 하고 있었고, 나는 TVN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시절이었다. 업계의 동향, 소문난 방송가 사건들, 불안한 미래 등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후일을 기약했다. 가끔 서로 연락하고 가끔 점심을 같이 하며 지냈고, 그렇게 무겁지 않은 인연은 세월과 함께 몇 년이 슬며시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오빠와 만나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오빠, 나 회사 그만두려고 해~”
“야~ 안돼.. 회사 그만두고 뭐 하려고?”
“코스웍 그동안 밟고 있었어. 회사 그만두고 박사 따려고. 논문만 쓰면 돼”
그 시절은 CJ를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직장을 오래 다닌 사람은 알 것이다.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이유를 못 찾을 때가 생기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회사와의 인연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콘텐츠보다는 영업, 사업이 더 우선인 조직에서 점점 위치를 잃어갔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점점 각박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중이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 내가 누구 소개해줄까?”
“어머. 날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어? 이혼남? 아님 나이가 몇인데?”
“이혼남 아니야. 나이는 너보다 한 살 많아”
“오빠 고마워~ 근데 뭐 하는 사람이야?”
“음~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야...”
“잉? 그게 무슨 말? 자연인이야? 하하하”
“스님이었던 사람이야”
“스님?(스님이었다고?) 근데 지금 뭐 하는데?”
“그게.. 지금 특별히 뭘 하고 있진 않아. 근데 사람 괜찮아”
“오빠 너무한데~. 성의는 고맙지만 거절할게!”
그렇게 가볍게 거절했지만 사실 그 오빠의 소개팅 제안은 불쾌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을 소개해주다니ㆍㆍㆍ. 이런 조건의 사람이 소개팅으로 들어온 사실이 왠지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난 똑같은 제안에 다른 결정을 내렸다. 내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회사를 그만두었고, 두 번은 할 수 없는 박사논문을 힘들게 썼다. 그러나 여전히 미래는 불안했고, 자신감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 논문을 전해주기 위해 오빠를 다시 만난 날, 오빠는 같은 소개팅 제안을 했던 것이다.
그때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됐는데 하나는 소개받는 사람이 그 오빠의 아내의 사촌오빠라는 사실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왠지 약간 안심이 된 것 같다. 다른 하나는 그분 누나의 이름이 내 이름과 같고, 대학과 학과까지 같은 ‘직속 선배’라는 사실이었다. 재미있는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만나볼게ㆍㆍㆍ”
하지만 스님이었다는 사실이 깡마르고 시커멓고 신경질 가득한 그런 스님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법정스님의 책을 한 권 읽은 정도였고, 불교나 절, 그리고 스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그리고 불교재단인 동국대를 나와, 실천승가회에서 1년 일했었던 친한 후배가 있는 정도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전생이 뭔지, 인연이 뭔지, 함 이야기나 들어볼까?’
그런데도 그날 왜 그렇게 나가기 싫었을까? 아마도, 내가 외면했던 내면의 초라함을 직접 바라보기 싫은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거기에다가, 노처녀도 한참 노처녀였지만 그래도 노처녀였기에 먼가 튕겨 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을까? 그래도 나잇값 하려고 용기를 내어 그 자리에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