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인생은 고(苦)’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삶에서 괴로움은 일상이고, 인간의 삶 속에 존재하는 괴로움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불교의 수행’이라고 말한다.
비록 죽음이라는 숙명적인 명제엔 속수무책인 것이 인간이지만, 그리고 나아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죽음을 극복할 수는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에 생기는 괴로움은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불교의 요체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괴로움에서 벗어나 다시는 괴로움에 물들지 않는 마음인 안심(安心), 편안한 마음을 추구한다.
이렇듯 사람은 각각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누구나 괴로움을 가지게 된다. 부유한 자는 부유한 대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 대로, 많이 배운 사람은 많이 배운 대로, 적게 배운 사람은 적게 배운 대로, 지위가 높거나 낮은 대로, 인간은 필연적으로 각자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
이 글을 계속해서 쓰기 위해서는 내가 세상을 등지고 스님이 된 출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좀 재수 없게 느낄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배부른 고민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프롤로그에 썼던 것처럼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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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예가 자동차인데, 대학생 때 자동차를 사주셨다. 차는 중형차였고, 80년대 중반에 대학생이 차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손에 꼽을 때였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는 강남 반포에 있는 30평대 아파트를 사주셨다. 또, 아버지 친구분의 무역회사에 다녔는데,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이 친구분은 아버지에게 회사를 넘기고 싶어 하셨고, 그래서 내가 이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실무를 익히고 결혼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 회사는 내 회사가 될 예정이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연 매출이 꽤 되는 원자재 수입 회사여서 세월이 흘러도 망할 확률이 0에 가까웠다.
이렇게 아버지가 나에게 배려를 한 이유는 내가 못난 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몸이 허약해서 언제나 시름시름 앓았으며, 마음이 약해서 세상의 풍파에 치이는 삶이었다. 세상을 살아 나가는 데 필요한 무기가 하나도 없었고, 그래서 부모님은 내 걱정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특히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넌 건강만 해라. 나머지는 다 해줄게.’라고, 늘 나를 위로하고 걱정해 주셨다. 경제력을 떠나, 나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아버지였다.
난 어릴 때부터 굉장히 허약했다. 아버지는 이렇게 허약했던 나를 위해 보약을 먹이고 몸에 좋다는 건 다 구해서 먹도록 했다. 그래도 병치레가 많았고 갖은 질병에 시달렸다.
가벼운 감기 같은 병에도 열이 내리질 않아서 온몸이 불덩이인 채로 며칠씩 몸져누워 반쯤 정신을 놓고 앓았고, 열 때문에 입맛이 없기도 하지만 음식을 먹으면 토하기 일쑤였다. 음식을 먹지 못하니 체력이 회복되질 않았고, 체력이 약해지니까 감기는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었다. 1년에 3~4개월은 이렇게 늘 감기를 달고 살았다.
또 접촉하면 피부가 부어오르는 두드러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놀이도 조심해야만 했다. 작은 접촉에도 가려움이 생기고, 온몸으로 두드러기가 번지면서 전신에 가려움이 일어났다. 가려움이 생기는 날엔 밤새 어머니가 온몸을 살살 긁어 주셔야만 했고, 난 울면서 잠든 날이 많았다.
또 일종의 근육통이 있었는데 좀 많이 뛰어놀면 장딴지가 찢어지듯 아팠다. 내 기억으로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많이 뛰거나 혹은 걷거나 하면, 다리에서 젖산이 나오고 그 젖산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다리에 피로감 정도가 생기는데, 나 같은 경우는 젖산을 분해하는 효소가 적어서 젖산이 생기면 다리근육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서 근육을 찢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의사가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고통이 모든 병으로 인한 고통 중에 제일 힘들었다. 근육통이 찾아오면 다리에 수백 개의 바늘을 쑤셔 넣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온다. 이런 날은 밤새 고통 속에서 울부짖고, 온 방 안을 떼굴떼굴 구르며 뜬눈으로 보내야만 했다. 오죽하면 효과는 없었지만, 교회에서 하는 치유 안수기도를 받기도 했다. 이런 병들은 중학교에 진학하는 사춘기가 오면서 잦아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오던 과정에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됐는데, A형 간염에 걸렸다. 그 당시 A형 간염의 경우, 대부분 사람은 간염에 걸려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고, 가볍게 앓고 지나갔지만, 나의 경우는 황달이 심했고 간 수치가 좀처럼 내려가질 않아서 병원에 보름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고, 그 이후에도 조금만 심하게 움직여도 간 수치가 다시 올라가서 고등학교 1학년 동안 체육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살아남은 건 부모님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난 아마 어린 시절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을 것이다.
이렇게 몸도 허약한 데다가 마음도 유약했다. 심성은 착했지만 유약해서 세상에 살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강건한 사람들은 잘 모르는 세계가 몸도 약하고 마음도 약한 사람들에겐 펼쳐진다. 남들에게는 별것 아닌 가벼운 감기 같은 병에도 몸져누워서 시름시름 앓아야 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내뱉는 의미 없는 가벼운 농담도 나에겐 힘겨운 비난이 되었고 상처로 남았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나의 세상은 거칠고 힘겨웠다. 거기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과 타협하게 되면서, 점점 더 비열해지는 자신이 용납되질 않아서 나에 대한 혐오감이 커져만 갔고, 그런 내면의 괴리가 점점 신경질과 우울함으로 나를 채워나갔다.
이런 내면의 우울감은 불안과 같이 오는데, 이런 것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늘 죽음을 그리워하게 됐고, 삶은 잿빛이었고 암울했다. 필름이 끊기듯 죽음도 그런 것들에 불과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죽음은 그런 힘든 삶에 휴식을 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한강다리에서 난간을 붙잡은 채 두려움에 울고 있다가, 경찰에 의해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처음 스승님을 만났을 땐, 운명적인 느낌보다는 세상에 대한 욕망이 더 컸던 것 같다. 출가라는 운명의 예감을 느꼈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욕망을 즐기며 살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뒤, 사귀던 여자에게 차이고, 너무 힘들어서 스승님이 계신 절로 찾아갔을 때, 스승님은 그날로 전 여자 친구로 인한 괴로움이 사라지도록 도와주셨다. 그 과정은 너무 힘들었지만, 그 경험은 절대 세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에는 몇 년 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전 여자 친구도 나중에는 출가해서 스님이 된다) 그때 느꼈던 불법(佛法)에 대한 감동과 매력이 결국 출가의 길로 이끌게 된다.
그날 이후, 출가하기 전까지 3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주말마다 스승님이 계신 지리산으로 다녔었고, 겨우 출가할 복이 생겨서 출가하게 된다. 그렇게 2000년 초에 지리산으로 출가한다.
이 절은 해발 700미터에 있는, 전기도 전화도 없고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깊은 산 속에 있다. 한 마디로 야생의 삶이었다. 톱을 들고 나무를 해서, 도끼로 장작을 만들고, 그 장작으로 방에 불을 때고 밥을 하며, 밤에는 촛불을 켜고 생활했다. 단순한 삶이었지만 행복한 삶이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오직 ‘공부’밖에 할 것이 없다. 3년의 행자 시절을 포함한 약 5년간은 미친 듯이 공부만 하며 살았던 것 같다. 특이한 점은 처음 5년간은 스승님은 내가 책을 읽지 못하게 하셨고, 오히려 머리에서 글을 빼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몸으로 체득한 공부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전부 13년 가까이 스님 생활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내가 출가한 이유보다, 왜 산에서 내려왔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속퇴(俗退), 즉 세상으로 돌아온 이유는 변명의 여지가 없이, 내가 생각 하나를 잘못 일으켜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마음의 괴로움도 거의 없어지자, 공부에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고, 일으켜서는 안 될 생각을 일으켰다. 물론 구체적인 상황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내 자신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스님 생활을 계속 할 걸 하고 후회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을 계속 읽은 분들은 당연히 알겠지만, 산에서 내려와 만난 인연과 늦은 결혼을 해서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번 생에는 다시 스님을 할 수는 없겠지만, 다음 생은 다시 한번 스님이 돼서 이번 생에 못 이룬 꿈을 이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