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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Aug 23. 2024

만난 그날과 일주일 - 男

남편의 章

그 날 첫만남을 일찍 끝낸 것은 친한 선배 아버님의 부고를 들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집에 바래다준 후 안암동에 있는 고대병원 영안실로 갔다.    

  

언제부터인지 장례식장을 너무 늦게 방문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에, 도착한 시간이 9시 전후였던 것 같다. 그래도 도착해 보니 장례식장에 사람은 거의 없었고 선배형과 형수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반갑게’라고는 하지만, 큰일을 치르는 피곤함과 실감 나지 않는 슬픔이 언뜻 보였다. 그래도 선배의 아버님은 근래 몇 년 동안 몸이 아프셔서 그런지, 선배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던 것 같았다. 아버지의 죽음이 쉽지는 않겠지만 나름 잘 견디고 계시는 것 같았다.    

 

이 선배형을 알게 된 것은 군대에서였다. 우리 때는 방위라고도 부르고, 공식적으로는 ‘단기사병’이라고 하는 출퇴근하는 군인이 있었는데, 이 형은 내 바로 위 고참이었다. 어릴 때 내 성격은 까칠하고 오만해서 어디에서도 선배들과 사이가 좋질 않았다. 보통 말하는 ‘선배를 키우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이 형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내 까칠한 성격도 웃으면서 받아주었고, 내 오만함도 귀엽게 봐주셨다. 그래서 이 형한테만큼은 내 성격을 누그러트릴 수 있었던 고마운 선배였다. 산에서 내려온 뒤에도, 자주 연락하고 만나진 못해도, 한 편에서는 고맙고 든든한 선배였다. 형수님도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형이랑 비슷한 느낌은 다정하고 편한 스타일의 분이셨다.   

   

장례식장의 기본적인 예절 인사를 한 뒤, 옆에 준비된 식당에서 선배형과 형수님이 약간의 음식을 내어주시며, 선배는 내 소개팅에 대해 궁금해했다.  

    

“어. 그래~. 어땠냐? 상대는 어땠어?” 


그리곤 옆에 앉아있는 형수를 보며


 “얘 오늘 소개팅했대.”

“어머. 어땠어요?” 형수도 그렇게 물어왔다.

“네. 뭐~. 아주 괜찮은 친구가 나왔어요. 성품이며 인물이며 나무랄 데가 없었어요.”

“얌마. 잘 됐다. 만나!”

“형. 그런데 제 처지 아시잖아요. 제가 누구를 만날 만큼의 상황은 아니에요.”

“얌마. 상황이 되는 사람이 어딨어! 그냥 만나. 만나다 보면 어떻게 될지 몰라. 처음엔 친구처럼 만나. 누가 결혼하래~?!”

“고민 좀 해볼게요.”     


사실 이즈음의 나는, 다시 산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뒤 처음의 몇 개월이 지나고 처음의 반가움이 누그러지자, 부모님은 냉담해졌고, 세상의 일반적인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온 내가 세상에 적응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인연 따라 구한 일자리도 적응하기 어려웠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도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면서 ‘이제 나는 세상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게 됐구나’라고 느끼는 중이었다. 정직한 돈을 벌기엔 나이가 많았고, 부정한 돈을 벌기엔 양심에 용납이 되질 않았다.

     

게다가 산에서 내려온 지 5~6년이 지난, 이즈음엔 일방적이긴 해도 이제 부모님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거의 갚은 상태였다. 출가할 때는 내 괴로움이 너무 커서 잘 몰랐지만, 스님이던 시절, 가장 많이 참회하는 대상이 부모님이다. 자식을 산으로 보내는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아마도 자식을 사별하는 것 다음으로 힘들고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태어나길 원하지 않았고, 부모님도 내가 그렇게 태어나길 원하진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그런 나로 태어나서 그렇게 살아왔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는 천륜(天倫)이 존재한다. 부부간의 인연도 보통의 인연은 아니라고 해도, 부부는 헤어져서 남이 될 수도 있지만, 부모와 자식은 헤어져도 부모와 자식인 사이이다. 하지만 이런 인연이 점점 엷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산으로 돌아간다면 산속에서의 삶은 익숙하겠지만, 오십에 가까운 나이에 공부가 다시 되지는 않을 것이고, 대중들이 반길 리도 만무했다. 나의 위치도 산에서 내려올 때보다 많이 낮아질 것이고, 그저 남아 있는 숨을 이어 나가는 삶일 뿐일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에 남아 있을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중간에 끼인 상태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는 많이 고민했다. 그녀는 여자로서 매력과 인간으로서의 매력을 다 가지고 있었고, 분명 잘 이어지기만 하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민폐일 수 있었다. 세상을 잘 살아온 사람에게 세상에서 벗어났던 사람은 짐이 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은 점점 포기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내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홀아비 마음은 과부가 안다고, 만나는 친구들은 대부분 이혼했거나, 혼자인 친구들이 주를 이뤘다. 세상에 내려와 보니 꽤 많은 친구가 혼자 살고 있었다. 그중에 이혼하고 홀아비가 된 국민학교 시절 친구와는 자주 만났고 둘 다 등산을 좋아해서 한국의 100대 명산을 오르는 것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 친구를 만나면 나도 국민학교 시절도 돌아간다. 서로 무례한 행동을 해도 그 행동이 무례가 되지 않는 격의 없는 친구였다. 순진하진 않지만 나름 순수한 구석이 있는 친구였고, 동심이 남아 있는 친구여서, 만나면 다른 사람들보다 마음이 편했다.      

이전에도 이 친구와 전국에 있는 여러 산을 올랐었는데, 우연히 100대 명산을 알게 되어 목표를 가지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사실 그 친구는 이혼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을 탔고, 나는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절로 돌아가기 위해 산을 탔다. 소개팅을 할 무렵에는 100산 중에 2개 정도의 산만 올라 본 상태였지만, 우리 둘은 의욕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100산을 본격적으로 도전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 친구도 당연히 나의 소개팅을 알고 있었고, 소개팅한, 그다음 주 어느 날에 점심을 먹었다.      


그 친구는 만나자마자,     


“이쁘냐?”    

 

나이가 어리든 나이가 많든 간에 남자들이 처음으로 하는 공통된 질문이었다. 

    

“이쁘다기보다는 괜찮아. 지혜가 있어 보여.” “현명해 보이는 스타일이야.”

“사진 있냐? 카톡프로필 같은 거~.”

“아마 있을 걸~?”    

 

카톡프로필을 찾아 보여주니,    

 

“이쁘구만. 만나.”

“내 사정 알잖아. 쉽지 않아.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아.”

“얌마! 누가 뭘 하래~? 그냥 만나 봐.”

“그냥 100산이나 타자. 너, 나 없으면 심심해지잖아.”

“야~ 야~. 네가 언제 내 생각을 해줬다고~. 그리고 100산이 중요하냐~. 네 삶이 중요하지. 난 이혼했지만, 네가 말한 대로 좋은 여자라면 만나 봐.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생각해 볼게.”    

 

이렇게 대답은 했지만, 마음속에선 생각을 거의 지운 상태였다.   

   

다시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엔 약간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내 상황이 여의찮아서 만날 엄두가 나질 않은 것이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만날 생각을 접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다시 밀어내고 일상을 보내던 토요일 오후였다.    

 

“띠링~”


살펴보니 그녀에게서 온 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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