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章
당시 난 대학 때부터 짝꿍처럼 지낸 절친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5년 정도까지 한국에 있다가,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친구였다. 유학 후에도, 서울에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우린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한국과 미국을 서로 오가기도 했고, 국제 통화를 수시로 하면서, 20대 미혼 시절의 끈끈한 우정을 3, 40대까지 계속 이어갔다.
우리의 우정은 40대 말에 더욱 끈끈해졌다. 친구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서 자리 잡을 계획을 세우느라 그 시기 한국에 자주 나오곤 했는데, 남편을 두고 한국에 나온 그 친구와 나는 영화도 보고 미술관도 가고 국내 여행도 자주 다녔다. 싱글인 나의 연애와 결혼에 관해, 상담이든 수다든 늘 함께해 주었던 친구다. 기혼자였던 그녀는 내 연애사를 옆에서 흥미롭게 지켜보았던 것도 같다.
소개팅이 끝난 다음 날, 시내 카페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소개팅 어땠어?”
“생각보다 괜찮았어.”
“오~~”
“글쎄, 카디건을 입고 나왔더라. 그것도 클래식 카디건이 아니라….”
“와, 남자들 보통 카디건 잘 안 입잖아, 패셔너블한 사람인가 보다. 외모는 어때?”
“음…. 까맣고 마르고 그렇진 않아.”
“이야기는 어땠어?”
“재밌었어”
“연락 오겠네. 기다려 봐~ ”
그즈음 나는 25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제2의 인생을 모색하기 위해서, 학계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먼저 대학교 미디어 관련 학부에서 제작 실습수업을 강의하기 시작했는데, 인맥을 총동원하여 부산, 서울, 공주 등을 오가며 매우 바쁘게 지냈다. 그리고 관련 학회에도 등록하여, 논문도 발표하고, 000 연구회 등 소그룹 세미나에도 참여했다. 학회 활동은 그 절친도 함께했는데, 다가오는 토요일 학회에도 같이 참석하기로 한 상태였다.
젊은 시절, 소개팅하면 이런 경우가 제법 있었다.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연락처를 먼저 물어보며, 꼭 연락하겠다고 했지만, 연락이 전혀 없었던 경우 말이다. 그럴 때는 아예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팅했다는 말조차 하지 않고, 모든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리려고 했다. ‘이불킥’을 날리면서 말이다. 아니면 혼자 부글부글 속을 끓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친구들이나 후배들을 불러내어 시간을 보냈던 적도 있었다. 연락처를 물어보고 연락을 안 하는 그 남자의 심리가 무엇인지에 관해 열띤 토론을 하면서 말이다.
며칠이 지난 후, 절친에게서 문자가 왔다.
“연락 왔어?”
“아니? 안 오네?”
“잉? 그 사람 뭐야?”
“글쎄.”
“아마 오겠지. 혹 안 오면 머... 주말에 나랑 놀자. 학회 포럼 끝나면 홍대 앞에서 저녁 먹자구.”
“그래….”
이 친구에게만 소개팅하는 걸 알렸었다. 사실 친구와 이런 문자를 주고받을 때 담담한 듯 답을 했지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괜히 까인 것 같은 느낌이 좋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사랑과 연애에 나이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이 나이에 소개팅을 왜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 하고 싶은 걸 참지 말고 하는 게 맞을까? 아님 하고 싶은 일을 참는 게 맞을까? 나이 들면 참는 게 맞는 것 같다. 소개팅이, 버킷리스트나 위시리스트 같은 것도 아니었는데, 왜 한다고 했을까? 그리고 왜 그 자리에 나갔을까?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아! 그런데, 산에 가고 싶다.”
불쑥 혼잣말이 나왔다.
산에서 내려왔다는 그 남자와 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나 보다. 특히 지리산 이야기를….’
나는 산을 좋아했다. 산에 오르면 만나는 경치와 느낌들이 참 좋았다. 그 커다란 산과 산 중간에 펼쳐진 길들, 그사이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또 나타나는 계곡과 작은 물길들, 또 숲 사이에 비치는 햇살들, 헉헉거리며 숨이 차올라서 잠시 멈출 때 살며시 다가와 땀 찌꺼기를 없애주는 바람들, 한발 두발 올라가는 다리만 쳐다보다 어느새 뒤돌아보면 앞에 크게 펼쳐지는 그 멋진 경관들, 혼자서 온몸으로 즐기는 산행은 나의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고 산을 즐기는 남자도 좋아했다. 주변에서 어떤 남자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산을 좋아하는 남자’라고 말한 적도 많았다. 물론 그 질문에 딱히 현실적인 조건과 바램을 이야기하는 게 멋쩍기도 했지만, 그 안에 담긴 나만의, 나와 삶을 함께하면 좋겠다는 사람에 대한 상상이 있었다. 그런 산행을 함께 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난다면, 산행을 했던 그 시간처럼 그렇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에서 13년을 살았던 사람, 그리고 앞으로 산에 함께 가면 꽤 괜찮은 그림이 그려졌던 사람.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연락을 안 하는 걸까?’
그렇게 궁금해하며 고민하던 사이, 어느새 나는 이런 내용으로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000입니다. 주말에 산에 안 가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