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다가온 가을은 밤새 내린 비에 더욱 깊어지고
비 그친 아침의 개울 소리는 못내 아쉬운 여름을 흘려 보낸다.
흠뻑 젖은 낙엽이 오솔길을 따라 속내를 드러내면
미처 떨어지지 않은 잎들은 서로를 숨겨주고 있다.
움추린 어깨를 펴고 고개돌려 뒤를 돌아보면
잊었다고 생각했던 고향의 기억이 떠오른다.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떨치고 발 끝에 마음을 두면
오히려 잊혀진 그리움은 먹먹하게 가슴에 일어난다.
젖어드는 검정고무신이 흙에 닿는 감촉도
겹쳐 입은 승복 사이에 스며드는 차가운 습기도
나무에 스쳐 손등을 타고 흐르는 한줄기 빗물도
이루지 못한 꿈을 되새기게 한다.
아침밥을 짓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넣으면
날숨에 내뱉던 하얀 입김이 어느새 사라지듯
불붙은 잔가지의 붉은 일렁임이 얼굴에 닿으면
잔잔하게 일어난 그리움은 일상으로 스며든다.
어둠을 머금은 하늘이 아침햇살에 물들기 시작하고
밤새 숨어서 아침을 기다린 산새들의 말문이 터지면
짙푸른 하늘 사이로 하얀 구름이 흘러들어
잠시 잊은 막연한 구도의 길을 그리워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