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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Dec 01. 2023

29. 마음챙김 패러독스

- 현대서구명상의 역설

앞에서 우리는 마음챙김에 대해서 알아봤다. 불교적 수행의 관점에서, 그리고 서구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마음챙김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아봤다.  


불교적 수행의 관점에서의 마음챙김(sati)은 명상을 하기위한 수단으로서 깨달음으로 가는 방편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마음챙김‘대상을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고,

그 대상이 집중(호흡 혹은 화두)이면 사마타(집중:止) 명상이 되고,

대상이 신수심법(사념처)이면 위빠사나(통찰:觀) 명상이 된다.

사마타를 통해 삼매(定)를 닦고,

위빠사나를 통해 바른 이해(正知:慧)를 개발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명상을 통해 반야(般若)라고 하는 궁극적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지관(止觀)을 통하든 혹은 이 두 가지가 통합된 화두(話頭)를 잡든 간에 깨달음을 향해서 나아간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명상이고 수행이며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용어해설  

 (1) 지관(止觀): 사마타와 위빠사나 명상의 동북아불교의 용어

 (2 )화두(話頭):동북아 대승불교의 하나인 선불교(禪佛敎)의 수행법. 비논리 비정형의 수행법




그런데 남방불교의 사띠(sati)를 서구의 학자들이 mindfulness로 번역하고 정의할 때 다음과 같은 오류와 특징이 발생한다.     


1. 관점의 오류

2. minfulness의 정의에 대한 특징

3. 비판단과 탈중심 개념의 적용 오류

4. 자기부정 없는 자기긍정의 문제점



1. 관점의 오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각 살아온 삶에서 만들어진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산을 바라보아도 산을 바라보는 위치가 동서남북에 따라 산의 모양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중국의 격의불교(格義佛敎)에 대해 알아야 한다.          


* 격의불교(格義佛敎)     

격의불교는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는 초기인 위·진 시대(220~420)에 유행한 불교로서 간단히 설명하면 중국의 관점에서 인도의 불교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그 당시 인도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철학과 역사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불교 경전은 한문으로 번역된다. 이렇게 번역되는 과정에서 불교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의미인 사상과 교리 등을 중국인들이 이해하기 위해서, 중국 기존의 사상인 노장사상의 개념을 빌려서 설명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해석이나 설명은 본래의 불교사상의 개념을 왜곡시켰다. 예를 들어, 불교 경전인 반야경(般若經)의 "공(空)"에 대한 의미를 노장사상의 “무(無)” 개념을 적용하여 그 내용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듯 불교인 듯 불교가 아닌 것처럼 발전하던 중국불교는 시간이 흘러 더 많은 인도의 불교 원전이 전해지면서 원전의 의미에 더 가까워지게 되고, 또한 자체적으로 사상적ㆍ수행적 발전을 통해 중국불교는 더욱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엄밀히 따지면 인도불교와 중국불교를 완전히 같은 불교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불교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체계를 유지하면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불교의 다른 형태라고 볼 수는 있다.          


이것은 현대에서도 이어져, 지금 우리나라 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승불교의 경전인 한역본 금강경에 나오는 핵심 개념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등의 개념도, 인도 불교철학의 역사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있고, 이런 새로운 해석이 오히려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처럼 완전히 체계가 다른 사상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많은 오해와 이론적인 오류가 발생한다. 서구사회의 바탕이 되는, 절대적인 유일신을 숭배하는 유신론(唯神論)적 서구 기독 사상과 여기에서 파생된 돈만을 숭배하는 자본주의 사상의 유물론(唯物論)적 관점은, 불교가 가지고 있는 유심론(唯心論)적 의미를 원래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2. mindfulness의 정의에 대한 특징     


그래서 남방불교(테라와다불교)의 명상법을 기반으로, 서구 심리학자 중심으로 만들어진 현대 명상은, 사띠(sati)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의미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ㆍ사상적 체계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번역과 해석 그리고 의미에서 작지만 큰 의미의 변이가 일어난다.     


이런 관점에서 서구심리학자들이 마음챙김을 어떻게 이해하고 생각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실 서구심리학자들이 정의하는 마음챙김은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다.      


* 현대 mindfulness의 특징          


대표적으로 MBSR에서 주장하는 마음챙김의 개념은

1) 독특한 방식으로 2) 의도를 가지고

3) 지금, 이 순간에 4) 판단하지 않고

5)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6) 생겨나는 자각

이라고 정의한다.           


이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서구심리학자가 주장하는 마음챙김의 정의에는 다음과 같은 필수요소들이 존재한다.     

1) 현재 지금 2) 주의

3) 집중 4) 자각

5) 비판단 6) 탈중심     

등의 개념은 공통으로 들어간다.

다른 개념들 – 현재 지금, 주의, 집중, 자각 – 등은 마음챙김의 요소이긴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비판단’과 ‘탈중심’이다.     


3. 비판단과 탈중심 개념의 적용 오류     


비판단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탈중심자기 객관화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학자들은 이 ‘비판단’과 ‘탈중심’이 자신의 의지로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mindfulness(마음챙김)의 단계에서 이 개념들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테라바다불교(남방불교)든, 마하야나불교(북방불교)든, 비즈라야나불교(티벳불교)든, 공통적인 깨달음의 목표가 바로 ‘비판단’‘탈중심’인 것이다. 비판단은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개념이고 탈중심은 ‘무아무심(無我無心)’의 개념과 상통한다. 아래에 소개하는 신심명에는 이 내용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 신심명(信心銘)


중국불교의 제3대 조사(祖師)에 해당하는 수나라 시대의 승찬대사께서 지으신 책 중에 ‘신심명(信心銘)’이라는 것이 있다. 이 글은 37개의 사구게(四句偈)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첫 구절에는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

라고 되어 있다.           

37개의 사구게 중에 첫 번째 게송(偈頌)에 해당한다. 사람에 따라서 이 구절이 신심명의 요체라고 보고 나머지 36개의 게송을 해설로 보는 경우도 있다.           

해석하자면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단지 간택(판단)이 있을 뿐이다.

미움과 사랑에서 벗어나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보면, 간택이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생각(판단)을 의미하고, 증애미움과 좋음으로 표현되는 감정을 의미한다. 결국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야 도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처럼 동양의 명상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생각과 좋고 싫음을 만드는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이다.        


하지만 서양의 학자들은 이런 불교의 최종목표를 마음챙김의 전제조건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서양학자들이 바라보는 인지 구조의 개념의 차이에 있다. 여기에는 다음 시간에 얘기할 메타인지의 개념이 등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장인 「30. 메타인지와 마음챙김」를 참고하기 바란다.) 서구 심리학자들은 인지체계가 상위인지와 하위인지로 나뉜다고 본다. 자기객관화능력이라고 보는 메타인지를 상위인지로 이해함으로써 상위인지(메타인지)를 통해 하위인지를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위인지의 제어능력으로 하위인지에서의 비판단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위인지에 명령을 내리는 상위인지에는 ‘제어’라는 판단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제어를 하는 '상위인지' 결국 내 자신의 인지이기 때문에 비판단은 불가능하다.     


반면에, 불교에서는 상위인지의 존재를 부정하고 상대인지를 인정한다. 여러 개의 인지가 내면에 존재하고 그들이 서로 바라보는 상태일 뿐 인지에 높고 낮음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챙김의 단계에서 비판단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불교에서는 ‘번뇌(煩惱)가 번뇌를 제거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렇게 비판단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개념은 결국 이 글의 「26. 마음챙김(1)」에서 말하는 ‘마음을 챙기는 자’상위인지(메타인지)에 놓고, ‘마음챙김을 당하는 자’ 하위인지에 놓아서, ‘마음을 챙기는 자(메타인지)’의 자아를 강화하게 된다. 이렇게 강화된 ‘또 다른 자아’는 결국 ‘자아중심’을 강화하게 되므로 ‘탈중심’이 될 수 없다.

결국, 비판단과 탈중심은 마음챙김의 단계에서는 불가능하다.         


4. 자기부정 없는 자기긍정의 문제점  

  

* 자기긍정과 자기부정     


명상을 분류하는 또하나의 관점은 자기긍정명상과 자기부정명상이다.      

몸이 아픈 환자로 예를 들어보면, 몸이 심하게 약한 환자에겐 바로 수술을 할 수가 없다. 처음엔 체력을 회복하고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회복된 후에야 비로소 수술이 가능하다. 자기긍정명상은 체력을 회복하는 것과 같다. 삶에 찌들리고 상처를 입고 약해진 상태인 사람들에게 마음의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명상법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니다. 이렇게 마음의 체력이 회복된 후에는 마음의 수술이 필요하다. 이것이 자기부정명상이다.     

서양의 마음챙김의 개념은 ‘자기긍정’의 명상을 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런 자기긍정명상은 자아를 강화한다. 그런데 ‘비판단’은 ‘무념’의 개념이고 ‘탈중심’은 ‘무아’의 개념과 맞닿아 있기때문에 비판단과 탈중심, 즉 무념(無念)과 무아(無我)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기부정’의 명상이 필수적이다. 자아가 있는 상태에서는 무념과 무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비판단과 탈중심은 자기부정명상의 결과인데, 비판단과 탈중심을 마음챙김의 조건으로 놓아 자기긍정명상을 한다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서양의 ‘자기긍정명상’ 자체에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괴로워서 힘든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자기부정명상’을 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안 그래도 마음이 힘이 드는 상황에서 자기부정은 보통 사람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 자기긍정명상도 필요하다.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명상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이런 마음의 상처가 나은 후에 자기긍정명상은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자기긍정’을 버려야 한다. 다시는 괴로움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기부정명상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이것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 후에는 배가 필요하지 않은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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