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책방 일단멈춤 소멸기
간혹 책방에서 화장실을 찾는 손님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도보 5분 거리의 이대역으로 가시면 됩니다”라고 태연히 안내했다. 없으면 없는 것이지 5분이나 떨어진 화장실을 다녀오라니. 예상 밖의 답변에 손님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사실 화장실이 없지는 않다. 책방을 나와 건물 오른쪽으로 돌면 마당 안쪽에 화장실 두 칸이 나란히 붙어 있는데 각각 책방과 지하의 봉제 공장용이다. 주인 할아버지가 처음 이곳을 보여줬을 때 속으로 크게 실망했다. 곳곳에 늘어진 거미줄은 그렇다 쳐도 바가지로 물을 퍼 용변을 흘려 보내야 하는 건 도무지 참기 어려웠다. 더구나 찌는 듯한 여름엔...
“그럼 사장님은 매번 이대역까지 간다는 말이에요? 어쩜, 불편하시겠어요.”
“전 오히려 화장실 갈 때가 좋더라고요. 산책 겸 슬렁슬렁 걷고요.”
변명이 아니다. 주변의 안쓰러운 시선과 달리 이대역을 왕복하는 10여 분 동안 나는 꿀맛 같은 휴식을 즐겼다. 하물며 그 시간을 알뜰히 사용하는 데도 점점 더 능숙해졌다. 허기가 질 때는 이대역 5번 출구 앞 만두 가게에서 김치만두를 포장하고, 이웃 카페인 밀랑스에 들러 안부 인사를 나누는 여유도 생겼다.
책방으로 돌아올 때는 평소 다니지 않는 길을 찾아다녔다. 짧은 거리나마 어제와 다른 방향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하루 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골목 모서리에 핀 화사한 라일락과 삐약삐약 우는 어린 고양이들의 은신처를 발견한 순간처럼.
화장실의 먼 거리보다 나를 더욱 괴롭게 했던 건 타이밍이다. 머피의 법칙처럼 밖을 나서는 순간 손님과 맞닥뜨리는 일이 빈번했다. 손님을 밖에 세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책방으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어떤 날에는 손님 세 팀이 뙤약볕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바람에 서로 멋쩍은 얼굴로 다 같이 입장한 적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버티고 버티다가 간신히 화장실을 다녀오는 게 일상이 됐다. 그러다 기어코 일이 터지고 말았다.
역시나 책방 앞에서 마주친 손님을 외면하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 있던 날이었다. 15분, 30분이 지나도록 나갈 기색 없이 꼼꼼히 책을 읽는 뒷모습에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생리 중인 데다 하필이면 남자 손님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의자에 꼼짝없이 앉아 있길 한 시간.
그가 떠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방석은 붉게 물들어 있고 여름용 리넨 바지는 당장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지경이었다. 급하게 책방 문을 닫고 택시에 올라탔다. 마침 상의가 엉덩이를 가릴 만큼 길어 천만다행이었다.
화장실도 제때 가지 못해 이런 사나운 꼴을 겪다니 스스로가 한심하고 어처구니없어 내내 화가 치밀었다. 혼자서 책방을 지킬 수 밖에 없는 현재의 환경을 탓하는 대신 나는 지금보다 좀 더 뻔뻔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날 이후 화장실만큼은 눈치 보지 않고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이게 뭐 그리 대수라고 다짐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지만 사소한 규칙 하나를 세우는 데도 나름의 결심이 필요했다. 나보다 손님이 우선인 소심한 자영업자 마인드가 여전히 내 안에 꿈틀대고 있다.
일단 결심을 세웠더니 이제는 책방에 손님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차라리 잘됐다 싶어 화장실에 다녀올 테니 잠시 자리를 지켜달라고 능청스럽게 부탁할 정도다.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나의 돌발 요청은 다행히도 손님들에게 뜻밖의 이벤트처럼 여겨지는 듯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다가도 금세 표정이 바뀌면서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얼른 올게요”라는 말에 “천천히 다녀오세요” 하고 다정한 대꾸가 돌아온다.
가끔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 일단멈춤을 검색해보곤 한다. 그러다 뜻밖의 후기를 우연히 읽게 됐다. 나를 대신해 잠시 일단멈춤을 맡아준 이들이 남긴 그날의 기억이었다.
“오히려 고마운 건 내 쪽이었다. 잠깐 공간의 주인이 된 것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별말씀을요, 저 역시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