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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May 18. 2020

시작은 잘하는 사람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냐고 묻는 당신에게


프리랜서로 자리 잡기 전까지 직업이 네 차례 바뀌었다. 애써 버티지 않은 건 ‘여기보다 나은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 심리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전직을 때마다 마냥 신이 났던 아니다. 직장에서 근면성실하게 경력을 쌓는 이들을 볼 때면 저들은 견뎠고 나는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이 종종 마음을 괴롭혔다. 이것은 끈기의 문제일까, 절박함의 차이일까.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그저 나의 성격적 결함을 겸허히 받아들이자는 허망한 결론을 내리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다른 각도로 나의 궤적을 톺아볼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난 선택들이그저 철없는 도피만은 아니었을 거라는, 내 삶을 어떻게든 책임져 보려는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새로운 시작은 나의 모자란 부분을 매번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동시에 감춰져 있던 재능과 욕구를 깨닫는 기회이기도 했다. 나는 타인의 글을 다듬기보다 직접 쓰고 싶은 사람이었고, 불합리한 조직 문화를 바꿀 용기는 없지만 그곳을 박차고 나와 내 자리를 미련하게 찾아 나서는 무모한 사람이었다. 낯선 근무 환경과 시스템에 자신을 끼워 맞추느라 마찰이 일때면 내 안에 작은 균열이 생겨났다.이전에 없던 생각들이 그 틈에서 자라났다. 일과 생활의 균형에 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어느 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할지 자문했다. 돈과 시간의 함수관계라는 인생 최대의 난제와도 맞닥트렸다. 직업이 바뀔 때마다 발견한 것은 비단 적성이나 성향만이 아니었다. 


그렇다.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그저 맛만 본 것일지도 모른다. 각각의 직업을 충분히 경험했다기엔 근무 기간도 짧고 전문성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 취업시장에선 이런 식의 잡다한 경험이 오히려 감점 요소라고 들었다. 무쓸모에 가까운 실패한 이력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말의 경험 덕분에 적어도 나는 ‘시작은’ 잘하는 사람이 됐다. 호시탐탐 가능성을 엿보되 뒷일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혀 외상을 입더라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숱한 실패의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지인 중 한 사람은 ‘중도 포기할 바엔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주의다. 시작은 잘하는 내 입장에선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과정조차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긴 틀린 말도 아니다. 좋은 경험이었어, 라고 웃으며 수습하기엔 세상은 너무나 바쁘게 움직인다. 우리의 외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성과로 이어지지 않은 시도라면 더더욱 냉정하다. 결국은 기회비용을 줄이기 위해 완벽한 시작을 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완벽한 타이밍이란 대체 언제인 것일까. 무엇보다 완벽하게 준비된 내가 가능하긴 한 것일까. 나는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가끔 SNS를 통해 작가가 되기 위한 방법을 묻는 메시지를 받곤 한다. 당연하게도 그 질문 속의 작가는 회사를 다니지 않는 프리랜서인 듯하다. 알다시피 소설가와 시인은 등단이라는 공식 데뷔 절차를 밟는다(물론 이것은 선택이다). 하지만 보통은 글 쓰는 자격을 얻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공인된 기관의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다. 작가로 활동하고 싶다면 일단 글을 쓰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면 일단 그림 부터 그리면 된다. 나아가 온라인 플랫폼에 작품을 공개하거나 독립출판물과 같은 물리적 형태로 세상에 자신을 소개할 수도 있다. 만약 회사원이라면 이러한 시도를 창작자로서의 가능성을 안전하게 확인해 볼 기회로 삼으면 된다. 말하자면 ‘프리랜서’ 작가로서의 상태는 자신이 그 시점을 직접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너무 뻔한 조언인가. 


플리마켓에 출점한 창작자들에게서 전해 듣는 하소연 중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런 건 나도 만들겠다”며 흘깃거리는 사람들의 손쉬운 평가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결국 당신은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거 잖아요.’ 그 차이는 아주 크다. 


이건 내 경험이기도 하다. 책방을 운영할 땐 글 쓸 시간이 없다며 매일같이 투덜거렸다. 그런데 그건 회사원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의욕만 앞설 뿐 상황을 탓했다. 결국 악순환을 끊기 위해 내가 떠올린 방법은 자체 연재였다. 목표는 일주일에 한 번, A4 한 장 분량의 에세이를 써서 브런치에 올리는 것. 일단 시작하면 다음 스텝이 보일 것이라 믿고 당장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 월급과 의무가 사라진 자발적 마감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세 번째 에세이를 업로드했을 즈음 출판사로부터 정식 출간 제의가 왔다. 짐작조차 하지 못한 결과였다. 누구도 원하고 기다린 적 없던 글이 작가로서의 첫 경력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도서 <저는 이 정도가 좋아요>의 본문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전문은 종이책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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