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군인으로 산다는 것
넋두리 : 죽은 사람의 억울한 사연을 해소하기 위해 그의 넋을 대신하여하는 말
군인 신분을 벗게 되면
언젠가 꼭 쓰고 싶었던 글이 있었다.
군인이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겪었고,
글을 써서 그 억울함을 해소하고 싶었지만
군인으로서는 쓸 수 없는 글이었다.
그래서 민간인의 신분으로
3개월 전 군인의 넋두리를 해보고자 한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군인 신분만 벗으면 두고 봐라.' 하는 마음이었다.
용변이 급해 바지 지퍼를 내리고
화장실로 뛰어가는 사람처럼
군복을 벗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전역을 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군인으로서 겪었던 고충과 어려움이
현재의 나를 조금도 힘들게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첫째로,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더는 군인의 삶을 공감하지 못할 것 같았기에
내 모든 경험과 기억이 휘발하기 전에
글을 써야 할 것만 같았고
둘째로,
아직도 군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선·후배들
존경받아 마땅한 상급자들을 위함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모 공군부대에서 복무 중인 공군 중위였다.
5월 1일부로 전역을 할 예정이었으니,
전역을 한 달 남짓 남긴
말년 중위라고 표현하면 더 정확할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군에서 말년 중위는 우스갯소리로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최종 보스라고 불린다.
상급자 입장에서 초급장교를 바라볼 때
군대 안에 있을 때야 내 꼬붕(부하의 일본어식 잘못 표현)이고
언제든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하일 뿐이지만
전역을 하게 되면 입장이 달라지게 된다.
갑을관계의 역전현상이라고나 할까.
전역하고 군대에서 겪은
어두운 이면을 폭로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말이 좋아 어두운 이면인 거지
자신의 가혹행위나 폭언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자신의 진급 길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지.
진급은커녕 군복을 벗게 되지는 않을지.'를
걱정할 것이다.
말년 병장보다도 더 무서울 수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병사들은 잠깐 거쳐갔다 가는 정도로 생각하지만
장교의 경우 사무실 직속 후배로 여기기에
막 대함에 있어서 조금의 거리낌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더 많은 비위행위가 발생할 여지가 더 많이 생긴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할 때는
말년 중위였던 그 당시에도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글귀를 되뇌며
전역하기 하루 전날까지도
혹여나 다른 이들에게
불필요한 짐을 주고 가진 않을지를 염려하며
뒷정리를 깔끔하게 했다.
(업무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무실 안에 있던
내 모든 흔적을 지우고자 했다.)
3개월 전의 나는
전역을 앞두고
군인으로서의 기억과 경험을
추억하기 위해서
브런치에 막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리고 3월 20일에는
운이 좋게도 내가 쓴 글 중 하나가
다음 메인에 오르게 되어
약 3일 동안 조회수가 15000이 넘는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현재 05:57, 06:00까지 집합하는데 5분 준다."는
제목의 글이었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그저 훈련을 받았을 당시 기록을 토대로
내용을 재구성해 적은 글이었다.
'특별 내무 기간'이라고 하여
소위 말하는 사회 물을 빼는 기간의 기록이었고
모든 일을 '빨리빨리'
불가능에 가까운 빨리를 요구하는 나날이었다.
https://brunch.co.kr/@stophun/68#comment
다음 메인에 노출되어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조회수 폭증을 겪으며
행복한 감상에 젖어 있는데
'띠링' 댓글 알림이 떴다.
어떤 댓글이 달렸을까
기쁜 마음에 내용을 확인하는데
'그렇게도 군사 권력이 좋냐
권력 남용으로 고소미먹어봐야 정신 차릴래
군.바.리.야.'
누가 봐도 기분이 좋지 않을
불쾌한 댓글이 하나 달렸다.
내 글을 제대로 읽었다면
내가 당하는 쪽이었음을 알았을 텐데.
보아하니 제목만 보고
무작정 나를
아니 군인을 비난할 생각이었을 테다.
이제 곧 군대를 떠날 몸이었기에
큰 타격은 없었지만
단지 '군인'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비난받고 욕먹는다는
불편한 사실에 마음 아팠다.
더 마음 아픈 건
내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저 댓글에 어떠한 내 감정 표현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신고'버튼을 활용하여
댓글을 신고하는 것뿐이었는데
수 차례 신고를 했음에도
댓글이 처리가 되지 않음은
브런치 신고 기능이 있으나 마나 한 것이거나
저 댓글이 표현의 자유를 인정받는
'정당한' 댓글이기 때문이겠지?
불행하게도 이 일은
대한민국 군인의 비참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3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군인이기 때문에 겪은 불쾌한 일만 하더라도
한 시간 분량은 족히 나오는데
30년 군 생활한 분들은 오죽하겠는가.
존경심이 절로 나온다.
군에서 휴가 장병 교육을 할 때
가장 강조하는 게
'대민 마찰'을 주의하라는 것이다.
누가 욕하면
누가 때리면
누가 시비를 걸면
'무조건'
도망가라는 게
교육 내용의 주된 골자다.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주라.'는
성경 말씀이 있지만
군대에서는
'오른뺨을 맞으면
분명 왼뺨도 맞을 테니
그전에 도망가라.'는
말씀이 있다.
술자리에서
까까머리를 한 군인이 보이면
일면 부지의 남성이
다짜고짜
'군바리네~'하고
시비를 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면
시비가 붙기 전에
도망가야 한다.
단지 군인이라는 이유로
오른뺨도 왼뺨도
맞을 테니깐.
그뿐인가.
군대, 군인 키워드로
뉴스를 검색했을 때
'당나라 군대'
'군바리'
'휴대폰 쓰는 게 군대냐.'
'요즘 군대 편하다. 나 때는~'
군인의 명예나
군대의 기강을
무시하는 비난투의 댓글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군대가 개선되고
군인들이 각성해야 할 필요도 분명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군인'이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무시받고
욕먹는 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군인으로 사는 건
참 고달프다.
대한민국 모든 군인들
파이팅이다.
길 가다가 군인을 보면
'애쓴다.'
'고생한다.'
정도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 군인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 될 소지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