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벼락같은 일
어떤 소원이든
한 가지는 들어준다는 갓바위는
팔공산 관봉에 위치하고 있다.
공영 주차장에 주차한 후
2km의 등산코스를 오르면 만날 수 있는데
갓바위를 만나기 10m 정도 전에
소원을 이루어 줄 것 같은 수십 가지
아이템을 먼저 만나게 된다.
기념품을 파는 곳의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반지, 목걸이, 팔찌, 손수건 등
종류가 다양하다.
소원의 집으로 들어가 둘러봤다.
벽조목으로 만들었다는
팔찌가 눈에 들어온다.
팔찌를 들고 유심히 보는데
사장님이 천장에서 내려온 와이어에
긴 막대기로 상품을 걸려다 실패하고 계셨다.
무심히 손을 뻗어 상품을 걸어드리며
대화를 시도했다.
"이 벽조목 진짜 벼락 맞은 대추나무 맞아요?"
"(풋~ 하시더니) 요즘 그런 게 어딨어요?
벼락 대신 전기 충격 먹였어요."
"오! 뭐라도 맞았네요! 이거 하나 주세요."
사장님은 유쾌하게 웃으시더니
만원인데 팔천 원만 달라고 하신다.
벽조목 팔찌를 손목에 차고
진짜 벼락 맞은
대추나무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는 벼락 삼킨 대추나무다.
모두가 나를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알고 있는데
나는 벼락을 맞은 적이 없다. 벼락을 삼켰다.
사실 처음에 벼락처럼
벼락이 닥쳤을 때는 나도 아찔했다.
씨앗일 때부터 줄기내고 가지를 뻗고
열매 맺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아, 이게 죽는 거구나 싶더라.
그 찰나의 순간 빌어먹을 벼락이
왜 하필 내게 닥쳤는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벼락처럼 닥친 벼락은
나에게 시련만은 아니었다.
벼락이 나를 친 이후 내 안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며
숨겨져 있던 거대한 힘이 깨어났다.
벼락이 내 안에 스며들면서
수억 볼트의 에너지가 나와 융합되었고,
그로 인해 나는 더욱 단단한
‘벽조목’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귀하게 대접하며 받들어 모시더라.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벼락이었다.
그러니 나는 벼락을 맞은 게 아니라
벼락을 삼킨 것이다.
그 짜릿한 맛을 꿀떡꿀떡 삼켰더니
벼락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하여
가치를 높여 주었다.
피할 수 없다면 삼켜라.
벼락같은 시련이 닥친다면
그것을 삼켜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해라.
그래서 더욱 단단해지고, 가치 있게 거듭나라.
벼락같은 일에
그보다 더 좋은 반응은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이전과 달라질 수 없다.
벼락이든 전기든 시련의 과정을 겪은 후
더 강해졌다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뭐라도 맞은 것에 기뻐하며 팔찌를 샀다.
시련은 강해지는 과정이어야 한다.
시련이 곧이곧대로 시련뿐이라면
그저 고통만 경험하게 되니 억울하다.
시련을 겪었으면 본전 뽑듯
뭐라도 얻어 내야 한다.
죽도록 얻어맞고 죽기 직전에 살아나면
전투력이 대폭 상승하는 사이어인처럼.
꼭 반드시 기필코 그래야 한다. 왜냐면
내가 지금 시련을 겪고 있는 것 같으니까.
#2. 벼락보다 벼락같은 일.
콜로라도 주 어느 곳에
4백 년 된 거목의 잔해가 있다.
4백 년 동안 14번의 벼락을 맞고도 버텼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잔해가 되어 버렸다.
14번의 벼락은 버텼지만
딱정벌레는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딱정벌레는 티도 안 날 만큼 찔끔찔끔
나무껍질을 파먹어 들어갔다.
그렇게 티도 안나는 것들이 티도 안 나게
야금야금 파고들어
내부를 모두 파먹어 버리자
거목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티도 안나는 것들이 티도 안 나는 일로
벼락 14개를 이겼다.
거목은 벼락보다 벼락같은 일로
영원히 쓰러졌다.
겉으로 아무리 강해도
내부가 약하면 무너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여기엔 또 다른 메시지도 있다.
벼락같은 큰 일보다 티도 안 나는
사소한 일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거다.
티도 안나는 것들의 대역전 같은 반전.
알게 모르게 나빠지는 몸
알게 모르게 줄어드는 돈
알게 모르게 추해지는 나
티도 안 나게 진행되던 것들이
티가 나기 시작하면
벼락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거다.
티도 안나는 일이
벼락보다 더 벼락같은 일이 된다.
이건 의외로 좋은 소식이다.
티도 안나는 내 노력도 벼락같은 일이 되어
벽조목처럼
나를 거듭나게 할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