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일라씨 Feb 03. 2021

과거의 나에게 멱살


과거에 이휘재 나왔던 그 라떼 프로그램, 인생극장에서 그래! 결심했어라고 하면

선택지가 A,B로 나뉘어 두번의 인생을 살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늘 하나만을 선택하게 되고, 그 선택들이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든거겠지.


요즘 나는 과거의 나의 선택에 굉장히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왜 방송작가 생활을 길게 유지하지 못했는가.이다.

이것이 과거의 나에게 멱살을 잡고 싶은, 메인 멱살 되겠다.

그리고 라떼 시절을 회상하며 소소한 서브 멱살들을 정리해 보려한다.






사실 방송작가가 되는 것은 (요즘엔 또 바뀌었나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 시작한 2005년 즈음만 해도 루트가 거의 정해져 있었다.


MBC 방송 아카데미 등 방송사 아카데미에 약 300만 전후 정도 되는 돈을 내고 강의를 듣고

실전에 투입된다.

거기서 막내작가로 시작해 메인 작가가 꾸린 팀에 들어가게 된다.

메인 작가 마음에 들면 계속 같이 다른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아니면 알아서 일을 찾는 방식이었다.


왜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돈 때문) 나는 아카데미에 가지 않았고 (멱살1)

휴학 때문에 또래보다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졸업한 나는 어디 막내로 들어가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홈쇼핑 회사에서 처음 작가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래도 방송을 하고싶다고 여기저기 들이민 결과, 방송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부분 교양, 시사, 경제 프로그램으로 일을 했는데 (멱살2)

사실 나는 예능이 너무 좋아서 그쪽 일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탄탄하게 입지를 꾸린 그 팀들에게 들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이런 프로그램들.

이 얘기 하면 정말 못나 보이는데...  같은 과 후배들은 그 유명한 무도 작가 출신들도 있었으니 은근 (사실 많이) 배가 아팠지.



어찌어찌 일을 하다보니 많은 일을 겪게 되었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하다가 기업체와 출연진한테 온갖 협박과 시달림도 받아보고

같은 나이의 메인작가에게 마음의 상처 꽤나 받아보고

같은 여자이고, 같은 스탭인데도 불구, 자기들은 피디고 우리는 작가라는 이유 하나로 알 수 없는 텃세도 받아보고... 뭐 여튼?

사실 대본보다 섭외가 더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인데, 당일날 펑크내거나 그런 사연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적기도 힘들다.


철없던 20대, 첫 사회 생활이 방송일을 하다보니 좀 터프한 시작이긴 했다.

그래도 견뎠어야 하거늘 나도 남들처럼 편하게 일하고 싶다는 감정이 휘몰아쳤고

결국 방송 일을 관두고 홍보영상을 만드는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멱살 3)






사실 좀 감정이 격앙이 되서 이렇게 쓰고 있는데

인생 자체가 막 드라마틱하거나 구구절절하지 않다.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이 짙었던 나는 늘 편한 선택을 많이 해왔고

지금 그래서 아이 둘을 낳고 멋진 남편을 만나 잘~~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 마흔 넘어 드는 생각은 좀 더 힘들어도 됐을텐데?

당시엔 힘들고 짜증나고 때려치우고 싶어도,

리스크가 큰 일이라고 해도,

나중에 '특이한 경험과 인맥'이라는 자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노마드 말고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요즘,

나는 매일 과거의 나에게 멱살을 잡고 있다.

'니가 그때 좀만 버텼으면 지금 이렇게 저렇게 도움이 됐을거 아냐!'



하지만 어쩌겠는가.

멱살 좀 더 덜 잡힐만할 미래를 꾸려가는 수 밖에.


지금부터라도, 잘 선택하고 견디자!









매거진의 이전글 저기요, 마음 사이즈 좀 늘려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