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를 위해 다시 쓰는 [엄마기억] #. 9

#최근통화 2

by 봉년

#. 9


[으...... 가아지.]

'응도 아니고 뭐 왜 으야?'


엄마는 평소 빠른 속도로 입에서 문장들을 뱉어냈는데, 경상도 특유의 높낮이가 있으며 딱딱 끊어지는 정확한 말투였다. 애이는 벌처럼 쏘듯 날카롭게 되물었다.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으...... 조올려서 그러지......]


순간 긴장했던 애이는 안심이 되었다.


"그럼 자!"


걱정 뒤에 다시금 화가 올라온 애이는 건조하게 한마디 하고는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엄마가 지난번 그러했듯 수화기를 던지는 소기가 나도록 끊어버릴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일방적으로 통화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엄마가 화가 나면 늘 하던 방식대로 오늘은 애이도 보란 듯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순간 '아침나절부터 왜 졸려?' 하는 의문이 남았다. 머릿속에서 엄마 생각을 털어내려 하면 할수록 곰곰이 올라오는 느낌은 '이상하다'였다. 승리의 기쁨을 잠시 접어두고 애이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참을 갔는데 평소 엄마답지 않게 늦다. 막내네 집에 올라가서 올케가 해주는 밥 편안히 받아먹고 집안일은 당연히 거들지도 않을 터. 게으름이 넘치다 못해 이제 점심때도 안되었는데 낮잠을 주무신다고? 멀쩡히 살아있는 큰 놈 놔두고 자기 편한 대로 무조건 만만한 막내에게만 짐이 되려는 것도 얌체같아 얄미운데, 이제는 낮잠까지 청하느라 신호가 끊어질 무렵에야 겨우 전화를 받은 엄마에게 더욱 화가 나 소리를 지르듯 내뱉었다.


"지금 몇 신데 낮잠이야?"

[......]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지금 할머니가 약을 드셔 가지고는 졸리시는가 봐요. 나중에 전화하세요.]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그 말투에 들어간 익숙한 억양은 분명 애이의 머리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었다.


"네? 약이요? 누구세요? 거기가 어딘데요?"

[여기 요양병원이에요.]

"네?...... 지금 통화도 못 할 만큼 독한 약을 먹고 있나요?"


그제서야 알았다 애이는. 엄마는 막내 집에서 편안하게 올케가 해주는 밥을 받아먹고 게으름에 겨워 낮잠에 빠져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요양병원에서 약에 취해가고 있다는 것을.

정신이 갑자기 나가버린 애이를 다시 끌어당긴 것은 그 익숙한 말투였다. [ㅅ] 발음이 강한, 그러나 익숙한 느낌을 소름 돋게 느끼면서도 쓸데없이 이십팔 년 전 번역사무실에서 타자가 느리다며 애이를 구박했던 조선족 여자가 떠올랐다.


[지금은 약을 드시고 주무시려고 하니까 나중에 다시 전화하세요.]


'졸린다고 어눌하게 말한 것이 약 때문이라고? 병원이라니......'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애이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누구 맘대로 아픈 거야......'

반전이다.

갑자기 가엾다.

한없이 가엾다.

덜컥 겁이 내려앉는다.

보고 싶다.

갑자기 보고 싶다 엄마가.

처음이다.

정말 처음으로 보고 싶어 진다.

어깨가 들썩거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