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감정을 잃어버린 어른들
화를 낼 줄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화를 내도 되는 상황에서조차 내지 못한다.
마음속에선 “이건 아닌데” 싶은데, 입 밖으로는 그저 “괜찮아”가 먼저 튀어나온다.
상대방의 말에 억울하거나 무시당한 기분이 들어도, 그 감정을 꾹 눌러 삼킨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괜히 혼자 씻으면서 울컥한다.
분명히 억울했던 건 나인데, 왜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못 했을까.
나에게는 화를 내는 것이 곧 관계를 망치는 일처럼 느껴진다.
“화를 내면 상대가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내가 과민하게 반응한 건 아닐까?”
“그 사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
늘 내 입장을 뒤로 미루고, 상대의 상황부터 먼저 이해하려 애쓴다.
배려라 착각하며, 사실은 무서워했던 것이다.
거절당할까 봐, 미움받을까 봐.
어릴 적부터 나는 좋은 아이였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부모의 말에 반항하지 않는 아이.
‘화를 내면 안 된다’는 말은 듣지 않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 “왜 그렇게 인상을 쓰니?”,
억울하다고 말하면 “그 정도는 네가 참아야지”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배웠다.
화는 나쁜 감정이고,
화를 내는 나는 나쁜 사람일 수 있다는 걸.
그렇게 살아온 나는 어느새,
화를 낼 타이밍이 와도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감정은 여전히 나를 찾아오지만, 나는 그걸 표현할 언어를 잃어버렸다.
이제는 조금씩 다시 배우려 한다.
화는 나쁜 게 아니라, 중요한 신호라는 것을.
나의 경계가 침해됐을 때, 누군가의 말이 나를 상처 냈을 때,
화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건 관계를 망치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화를 낼 때 떨리고, 후회하고, 스스로를 점검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을 무시하지 않는 나를 만들고 싶다.
조용히 참는 것이 늘 성숙한 선택은 아니다.
때로는 나의 분노도, 나를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