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나쁜데 이유를 모르겠어

1장. 감정을 잃어버린 어른들

by 일상온도

“기분이 안 좋아?”

누군가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대답하지 못한 채 애매하게 웃는다.

기분이 나쁘긴 한데,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기 때문이다.


분명히 무언가가 마음에 걸리는데,

슬픈 건지, 외로운 건지, 짜증이 난 건지...

감정의 얼굴이 너무 희미해서 도무지 붙잡히지 않는다.


이유 없는 감정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그 이유를 무시한 채 살아간다.

눈앞에 당장 닥친 일들, 해야 할 책임들,

“감정은 나중에 다루면 되겠지”라는 말로 자꾸 미룬다.

그러다 보면 감정은 말이 아니라 기분이 된다.

막연한 무기력,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 알 수 없는 짜증.

그리고 끝내, “나 왜 이러지?”라는 말만 반복하게 된다.


감정을 제대로 느끼려면, 시간과 언어가 필요하다.

하지만 바쁜 어른의 삶 속에서 우리는

그 시간도, 그 언어도 충분히 허락하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누군가가 “지금 속상해?”라고 물어봐주었고,

“괜찮아, 울어도 돼”라는 말이 따라왔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묻는 사람도,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건네는 법도 사라졌다.


그래서 감정은 점점 모호해지고,

우리는 감정이 아닌 기분만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나는 이제 감정을 모호하게 넘기지 않으려 한다.

‘짜증’이라는 단어로 모든 걸 퉁치지 않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외로움, 억울함, 피로감 같은 감정의 결을 더듬어보려 한다.

감정의 이름을 찾아줄 때, 그 감정은 비로소 나를 덜 괴롭힌다.


기분이 나쁜 날,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지금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 물음은 때로 어떤 위로보다도 큰 힘이 된다.


감정은 적이 아니다.

제때 알아봐주지 못한 감정이,

조용히 마음을 아프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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