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관계 속에서 길을 잃은 어른들
누군가 내게 부탁을 해올 때,
그 부탁이 아무리 벅차고,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나는 좀처럼 “싫어요”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입가에 걸린 건 억지웃음인데,
내 속은 이미 “그건 싫은데…” 하고 웅크리고 있다.
그렇다고 딱 잘라 거절하는 건 더 어렵다.
거절은 곧, 나쁜 사람이라는 낙인처럼 느껴진다.
나는 왜 이토록 '싫다'는 말을 무서워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 말을 한 후에 벌어질 관계의 균열이 무서운 것이다.
혹시 상대가 상처받을까 봐,
나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할까 봐,
아예 그 가능성을 차단하고
나는 늘 “괜찮아요, 해볼게요”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반복이 쌓이면
언젠가 관계 안에서 내가 점점 사라진다.
내가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못하면
상대는 내가 싫어하지 않는다고 착각한다.
결국 나는 원치 않는 부탁을 반복해서 받게 되고,
그 불편함이 서운함이나 분노로 바뀌어 혼자 마음을 다친다.
‘싫다’는 말은 사실, 관계를 끊는 말이 아니다.
그 관계 안에서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주는 말이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어야,
좋은 것도 진짜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진짜 감정이 오가는 관계는,
때때로 충돌하더라도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이제 연습하고 있다.
조금 불편해도, 조심스럽게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법.
그 말 한마디가 관계를 망치지 않을 거라고
나 자신에게 먼저 믿음을 주는 연습.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