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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유형⟫, 드디어 저작권에서 풀려나 우리에게 오다

by 김환희 Dec 13. 2020

 “민담은 문화적, 민족적 차이 너머에 있기 때문에 쉽게 경계를 넘어 이동할 수 있다. 민담의 언어는 국제적 언어인 듯하다-그것은 모든 시대와 문화를 이어준다.”(마리-루이제 폰 프란츠, ⟪민담의 심리학적 해석⟫, 42면, 한국융연구원).


디지털 유목민들이 인터넷의 바다에서 옛이야기 여행을 하려면 항해 지도를 지닐 필요가 있다. 전 세계에서 전승되는 옛이야기들은 태평양이나 대서양에 비유할 정도로 많다.  그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서 어떤 나라의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와 비슷한지, 우리 것이라고 여겼던 이야기가 과연 우리 것이 맞는지, 내가 읽고 있는 옛이야기가 전래된 것인지 아니면 창작된 것인지 따위를 알기 위해선, ⟪설화 유형⟫ (The Types of the Folktale)이란 두꺼운 책을 펼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간의 경계를 초월해서, 우리 옛이야기와 외국 옛이야기를 비교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반드시 소장해야 할 책이 설화 유형이다.  나는 이 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옛이야기 공부법(창비, 2019)의 제4장에서 자세히 설명한 적이 있다. 그 책의 중요성을 ‘신데렐라’(Cinderella)를 예로 들면서 설명하기로 하자.  ‘신데렐라’에 대한 정보를 가장 빨리 얻을 수 있는 사이트는 영문판 위키백과(en.wikipedia.org)이다. 프랑스나 독일의 위키백과도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세 나라의 위키백과에서 ‘Cinderella’ 항목을 찾아보면 설화 유형이란 책의 중요성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우선, 영문판과 프랑스판의 위키백과로 들어가서 ‘신데렐라’ 항목을 찾아보면 첫 화면의 첫 번째 삽화 밑에 기호와 숫자가 하나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왼쪽에 있는 영문판에는 ‘ATU 510A 박해받는 여주인공이라고 쓰여 있고, 오른쪽에 있는 프랑스판에는 ‘AT 510A 박해받는 여주인공이라고 쓰여 있다. 독일판 위키백과에서 ‘신데렐라항목을 찾아보면, 영문판이나 프랑스판과는 달리 삽화 밑에 자세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항목의  문단을 살펴보면,  “신데렐라는  알려진 옛이야기이다 (ATU 510 A).”라고 적혀 있다.

세 나라의 위키 백과에 쓰여 있는 ’ 510A’라는 숫자는 신데렐라나 콩쥐팥쥐 유형의 이야기가 어떠한 나라에서 전승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의 보편적인 서사는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열쇠에 해당한다. 1910년에 안티-아르네(Antti Aarne)라는 핀란드 학자가 유럽에서 전승되는 설화의 유형을 분류하기 위해서, 동식물의 학명에 비유할 수 있는, 공통 체계를 마련하였다.  그 이후, 스티스 톰프슨(Stith Thompson)이라는 미국 설화 학자가 아르네 체계를 토대로 전 세계의 설화를 유형별로 분류할 수 있는 아르네-톰슨 체계를 확립하였다.  톰프슨이 쓴 ⟪설화 유형⟫이라는 책이 처음 출간된 해는 1928년이지만, 톰프슨은 지속적으로 체계를 보완해서 1961년에 증보판을 다시 편찬하였다. 그리고 2004년에 한스요르그 우터(Hans-Jörg Uther)라는 독일 설화학자가 전 세계 설화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아르네-톰슨 체계를 대폭 수정하고 보완한 아르네-톰프슨-우터 체계를 확립하였다.


프랑스 위키백과에 쓰여 있는’ AT’라는 기호는 아르네-톰프슨(Aarne-Thompson) 분류 체계를 뜻한다. 영문판과 독일어 판에 쓰여 있는 ‘ATU’는 아르네-톰프슨-우터(Aarne-Thompson-Uther) 분류 체계를 지칭한다.  두 체계의 뼈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아르네-톰프슨의 분류 체계를 수록한 책이 ⟪설화 유형⟫이고, 아르네-톰프슨-우터의 분류 체계를 수록한 책이 ⟪국제 설화의 유형들⟫ (The Types of the International Folktales)이다.  인터넷 바다에서 옛이야기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 또는 외국인들과 옛이야기 정보를 교환하고 싶은 사람들은 반드시 이 두 책 가운데 한 권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설화 유형⟫ (The Types of the Folktale)은 학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설화 유형⟫을 소장한 대학도 십여 군데뿐이다.  우리나라 학자들이 그동안 설화의 비교 연구에 얼마나 무관심했는 지를 잘 알 수 있다. 그 책을 구입하기 어려워서 나는 이십여 년 전에 성균관대 중앙도서관을 방문해서 책을 몇 시간에 걸쳐서 힘겹게 복사했다. 그런데, 이제 그 책을 그 누구나 저작권 걱정 없이 <인터넷 아카이브>(archive. org)에서 직접 내려받을 수 있다 ( https://archive.org/details/ffcommunications0000unse/mode/1up).  전자책이 무료인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화질도 좋고 검색도 가능하다. 그 책을 다운로드하여서 177면을 펼치면, ‘510A 신데렐라’라는 항목이 나온다.  


⟪설화 유형⟫의 177면과 175면에서 발췌한 내용


붉은색으로 칠한 내용이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전승되는 ‘510A’ 설화의 개요이다.  초록색으로 칠한 분석 기호들을 이해하려면 상위 범주인 ‘510 신데렐라와 골풀 모자’의 개요가 정리된 175면으로 거슬러 올라가 해당 기호를 자세히 살펴보면 된다. 왼편에 위치한 개요와 분석표 아래 쓰인 잡다한 책명이나 이름은 ‘510A 신데렐라’ 이야기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참고문헌이고, 각 나라의 언어 옆에 이태릭체로 쓰인 숫자는 1960년까지 그 나라의 설화학자들이 채록한 각편들의 수이다.  그 내용을 잘 살펴보면, 신데렐라 이야기는 핀란드에서 141편, 독일에서 47편, 프랑스에서 37편이 채록된 것을 알 수 있다. 1960년까지는 AT 분류 체계를 만드는 데, 주로 유럽 학자들이 많이 참여하였기 때문에 <신데렐라> 설화의 전 세계적인 전승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럽의 수많은 나라에 <콩쥐팥쥐>와 유사한 서사 내용을 지닌 신데렐라 설화들이 전승된다는 사실을 잘 알 수는 있다.


 설화 유형 대해서  이상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가는 독자들이 달아날까  두렵다. 문학이나 예술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숫자와 기호에  약한 편이다.  역시 숫자와 기호만 보면 어지럽거나 골치가 아파서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이나 물리 시간에 자주 졸았던  같다. 수학이나 물리 선생님의 눈치가 보여서 졸지 않으려고 교과서 속에 소설책을 살짝 끼워 놓고 딴짓을 자주 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벗어나서 해외로 옛이야기 여행을 떠나려면 톰프슨의 유형집에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  브런치 매거진을 구독하는 독자들이 숫자, 기호, 영어가 주는 울렁증을 극복하고설화 유형  활용해서 진정한 '이야기 덕후 되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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