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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희 Sep 13. 2021

2.한국문헌에 없는 여우각시담과 한중 신화서 속의 여우

비교문학자의 시각에서 여우 설화를 공부하다 보면, 한 가지 의문점에 부딪힌다. 일본과 중국은 풍부한 여우 각시 설화를 남겼는데, 왜 우리나라 고전 문헌에서 여우 각시 설화를 찾기 힘든 것일까? 중국의  ⟪태평광기⟫와 ⟪요재지이⟫에는  미모와 교태로 남자를 유혹해서 파멸로 이끄는 요부 여우,  가난한 남자를 성공하게 하고 병든 남자를 치유해주는 착한 여우, 인간 아내보다 더 지혜롭고 지조 있는 여우 따위의 다양한 여우 설화가 실려 있다. 일본의 ⟪금석물어집⟫과 ⟪일본영이기⟫에서도 인간 남자와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 착하고 헌신적인 여우 각시 설화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설화에서 여우와 이류교혼을 한 남자들은 자신이 사랑한 여자가 인간이 아니라 여우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여우를 퇴치하기보다는 함께 살거나 영혼을 구원해주려고 애쓴다. 그런데, 우리나라 문헌에서는 그러한 여우와 인간 남자의 애틋한 사랑과 결혼을 그린 이류교혼담을 발견할 수 없다.


한‧중‧일의 여우 여인 이야기를 비교한 이경미와 김지선의 논문을 읽어 보면[1], 여우 각시 설화가 풍부한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여우 각시가 주인공인 문헌 설화가 없는 것 같다. 이경미와 김지선이 공통으로 한국의 여우 각시 설화로 소개하는 이야기는 ⟨천년 묵은 여우와 팔백이⟩라는 설화뿐이다.[2] 그런데, 이 설화는 문헌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1983년에 대구의 구전 현장에서 최용국 제보자가 구연한 이야기이다.  ⟪태평광기⟫나 ⟪일본영이기⟫에 1000여 년 전에 기록된 여우 설화를 1980년대에 채록된 한국구전설화와 나란히 놓고 비교한다는 것이 타당하지는 않지만, 국내 학자들이 우리 고전 문헌에서 여우 각시 설화를 발견할 수 없어서 고육지책으로 그렇게 한 것 같다. 더군다나, ⟨천년 묵은 여우와 팔백이⟩는 독립적인 서사를 지닌 ‘여우 각시’ 유형이라기보다는 ⟨지네 각시⟩ 유형의 변이형에 해당한다.


한국과 중국의 친밀성을 고려할 때, ⟪태평광기⟫나 포송령의 ⟪요재지이⟫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널리 읽혔을 듯싶다. ⟪삼국유사⟫에 실린 ⟨김현감호 金現感虎⟩ 설화의 말미에 ⟪태평광기⟫에 실린 ⟨신도징 申屠澄⟩ 설화가 수록된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이미 ⟪태평광기⟫가 널리 알려졌을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옛사람들이 중국이나 일본의 여우 여인 설화와 유사한 이야기를 남길 만도 한데, 우리 고전 문헌에서 여우 각시가 등장하는 이류교혼담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리 옛사람들은 여우 여인과 인간 남자의 애절한 사랑이나 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지녔던 듯싶다. 여우 여인이 인간 남자와 교합하는 이야기 가운데서는 강감찬 탄생 설화가 상생의 관계를 맺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강감찬 부모의 이류교혼은 사랑이나 결혼이 아닌, 국가에 이바지할 아들을 생산하기 위한 교합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강감찬의 모계가 여우라는 설정은 구전설화에만 나타나는 것으로서, 문헌에서는 강감찬은 여우의 아들이 아니라 문곡성이 하강해서 탄생한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이외에는 한국 설화에서 여우 여인과 인간 남자의 이류교혼을 긍정적으로 서술한 문헌을 단 한 편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읽어본 한국 고전 문헌 가운데서 여우와 인간의 관계가 상생과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답게 서술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수록된 원광 법사 설화가 유일하다.  ⟪삼국유사⟫ 권4의 ⟨의해 제5권 원광서학 圓光西學⟩ 에 수록된 설화에서 원광  법사는 삼기산에서 수행할 때 어떤 신(神)의 소리를 듣는다. 신은 원광 법사에게 이웃에 있는 중이 주술을 익힌답시고 시끄럽게 구니 다른 곳으로 옮겨 가도록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법사가 이웃 중에게 말을 전달하지만, 그는 마귀에게 현혹되었다고 법사를 비난하면서 자신은 여우 귀신의 말에 근심하지 않는다고 거절한다. 그다음 날 원광법사가 그 중에게 가보니 산이 무너져 내려 절이 땅속에 묻혔다. 신은 법사가 그릇이 큰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중국으로 유학 갈 것을 권유한다. “나는 나이가 3천 년에 가깝고 신술(神術)도 최고로 장합니다. 이것은 작은 일이니, 무슨 놀랄 만한 것이 되겠습니까? 이 밖에 장래의 일도 모르는 것이 없고, 천하의 일도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법사가 단지 이곳에만 산다면 비록 자리(自利)의 행은 있어도 이타(利他)의 공은 없을 것입니다. 현재에 고명(高名)을 드날리지 못하면 미래에 승과(勝果)를 거두지 못할 것이니, 어찌하여 불법을 중국에서 배워다가 이 나라의 혼미한 무리들을 인도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다.[3] 원광법사는 신이 가르쳐 준 계책 덕분에 중국 유학을 무사히 다녀와서 감사 인사를 하러 신을 다시 만난다. 나중에 신이 세상을 떠날 때 그 모습을 보니 “칠빛처럼 검은 늙은 여우”(有一老狐黑如漆)였다.  


하지만, ⟪삼국유사⟫에 수록된 다른 설화에 등장하는 여우는 원광법사 설화 속의 여우신과는 많이 다르다. ⟪삼국유사⟫ 권2의 ⟨기이 제2권 진성여대왕 거타지⟩에는 서해약이라는 해신이 거타지에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사미승을 활로 쏘아달라고 부탁한다. 사미승이 자기 자손의 간과 창자를 취해 다 먹어버려서 부부와 딸이 남았을 따름이라고 말한다. 이튿날 동쪽에서 사미승이 내려와서 늙은 용의 간을 취하려고 하자 거타지가 활을 쏘아 맞히니 늙은 여우로 변했다. 이외에도, ⟪삼국유사⟫에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닌 여우들이 등장하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 비형랑이 진평 대왕의 집사로 추천한 길달이 여우로 변해서 도망갔다는 이야기, 백제가 망하기 전에 의자왕의 궁중으로 여우 여러 마리가 들어왔는데 그중 한 마리가 좌평의 책상 위에 올라앉았다는 이야기, 선덕왕이 병이 나서 밀본법사가 ⟪약사경⟫을 읽으니 육환장이 침실 안으로 날아들어서 늙은 여우 한 마리와 승려 법척을 찔러 뜰로 내던지니 왕의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 따위가 전해진다. 


김관의가 편찬한 ⟪편년통록⟫에 수록된 ⟨고려세계⟩에[4]도, 용왕을 괴롭히는 늙은 여우가 등장한다.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에 관한 설화는 거타지 설화와 매우 흡사하다. 작제건은 아버지인 당나라 숙종이 남긴 활과 화살을 가지고 부친을 만나러 당나라 상선을 탔다.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선원들은, 양패 공이 꾼 꿈의 계시대로 순풍을 기원하며 신궁(神弓)이라 불리는 작제건을 섬에 내려놓고 가버린다. 그러자,  한 늙은이가 나타나 자신은 서해 용왕인데 치성광여래상으로  변신한 늙은 여우가 하늘에서 내려와 풍악을 울리면서 옹종경을 외우면 머리가 아프니 여우를 쏘아 달라고 부탁한다. 작제건은 약속한 대로 늙은 여우를 쏘아 죽이고, 서해 용왕의 딸 저민의에게 장가들어서 칠보와 양장(楊杖)과 돼지를 얻어 인간계로 돌아온다. 


⟪삼국유사⟫나 ⟪편년통록⟫과 같은 고려 문헌에 등장하는 여우는 용왕의 적대자이다. 고려 왕조를 세운 왕건은 용왕의 자손이어서 여우와는 적대 관계에 있다. 이러한 고려 건국 신화를 고려할 때, 당대의 사대부 계층이 여우를 긍정적인 동물로 묘사한 이야기를 쓰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고려 문헌에 수록된 여우 설화들 가운데 유독 ⟨원광서학⟩에 등장하는 여우만이 지혜롭고 선한 산신으로 그려진 것은, 일연이 원광법사 설화를 쓸 때 통일신라 말기에 저술된 고본(古本) ⟪수이전⟫을 저본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원광법사가 살았던 6세기에는 여우가 인간을 돕는 산신으로 여겨졌고, 토속 신앙과 불교가 조화와 상생의 관계를 유지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일연의 ⟨원광서학⟩에 등장하는 ‘칠빛처럼 검은 삼천 년 묵은 여우’는 중국의 고대 신화서 ⟪산해경⟫(정재서 역주, 민음사 1996)의 구미호와 유사한 속성을 지닌다. ⟪산해경⟫에서 구미호는 청구국의 청구산에 사는 신령스러운 힘을 지닌 여우로 그려진다. ⟪산해경⟫의 ⟨남산경⟩에는 “이곳의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여우 같은데 아홉 개의 꼬리가 있으며 그 소리는 마치 어린애 같고 사람을 잘 잡아먹는다. 이것을 먹으면 요사스러운 기운에 빠지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56면). ⟪산해경⟫을 주해한 곽박은 ⟨대황동경⟩ 속의 “청구국이 있는데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가 산다”라는 구절에 붙인 각주에 “세상이 태평하면 출현하여 상서로움을 보인다는 여우”라는 설명을 달았다(288면). 중문학자 김지선에 따르면[5], ⟪시경⟫과 ⟪산해경⟫에 등장하는 구미호에는 “악마적인 이미지가 내재되어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흰 여우는 길조, 즉 상서로움의 상징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라고 한다. 조엽(25년-56년)의 ⟪오월춘추⟫에 수록된 ⟨월왕무여외전⟩에 등장하는 하나라 우왕이 도산씨와 결혼하기 전에 만난 하얀 구미호도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징조이다. 김지선 님은 중국 고대 문헌 속의 구미호는 “궁극적으로 다산과 풍요, 상서로움에 대한 상징을 의미하는 존재였다.”라고 말한다 (123면).


 ⟪산해경⟫에서 언급한 구미호는 모두 청구산에 살고 있다. 청구(靑丘)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예전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이르던 말.”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학자들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청구’라는 단어는 청색이 동쪽을 뜻하기 때문에, 중국의 동쪽에 위치한 우리나라 또는 신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그렇다면, ⟪산해경⟫에서 언급한 구미호가 원래 살던 곳은 한반도이고, 고대 한국의 옛사람들은 구미호를 신령한 힘과 상서로운 기운을 지닌 동물로 섬겼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타가와 쿠니요시가 그린 구미호 그림. 


하지만 한‧중‧일에 널리 알려진 구미호는 ⟪산해경⟫, ⟪오월춘추⟫, ⟪수이전⟫ 같은 고대 문헌에 등장하는 상서로움과 신성성을 지닌 여우신이 아니라 한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요부이다. 중국 상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의 애첩 달기와 서주의 마지막 왕인 유왕의 애첩 포사, 일본 도바 상황이 총애하던 여관 타마모노마에 등이 구미호가 변한 요부로 알려졌다. 이러한 요부 유형의 구미호는 명나라 때 장편소설 ⟪봉신연의⟫를 통해서 잘 알려졌지만, 중국문학자들은 원대의 화본 소설 ⟪무왕벌주서⟫가 달기와 구미호를 연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했을 거라고 보고 있다.[6]  이러한 달기 유형의 요부로 변신하는 여우 여인 설화는 고려 시대 이후 시와 소설을 쓴 사대부 계층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서, 유독 우리나라 고전 문헌 속의 ‘늙은 여우’ 또는 구미호는 무자비하게 퇴치해야 할 절대 악의 상징이 되었다.






[1] 이경미, ⟨한중일 고전문학 속에 보이는 여성과 여우⟩, ⟪석당논총⟫ 51집, 2011; 김지선, ⟨한중일 여우 이야기에 대한 비교학적 고찰⟩, ⟪중국어문논총⟫ 29, 2005

[2] ⟪한국구비문학대계⟫ 7집 13책, 639-645면. 이외에도 유사 설화가 두 편 정도 더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실려 있기는 한데, 방언이 너무 심하거나 서사가 단편적이어서, 학자들이 인용하지 않는다.

[3] 강인구 외 3인, ⟪역주 삼국유사 IV⟫, 이회문화사 2003, 43-45면

[4] ⟪국역 고려사 : 세가⟫, ⟨고려세계 高麗世系⟩, 네이버 지식백과.

[5] 김지선, ⟨동아시아 여우 설화를 통해 본 신의 문제⟩ , 121-122면

[6] 배병균, ⟨중국문화 속의 여우 형상⟩, ⟪인문학지⟫27권, 충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03.


✽우타가와 쿠니요시의 구미호 그림 ⟨三国妖狐図会 蘇妲己駅堂に被魅⟩의 출처

https://otakinen-museum.note.jp/n/n9cebaaec4e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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