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다 보면 예전에는 스쳐 지나갔던 주제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나게 된다. 구미호 설화에 내가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2019년 여름에 열렸던 어느 북페스티벌에서 만난 곽재식 작가와의 토론 때문이었다. 작가스테이지를 기획한 주최 측이 토론자로 곽재식 작가와 나를 초청한 것은 우리 둘이 생각하는 구전설화의 가치와 위상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곽재식 작가는 ⟪한국 괴물 백과⟫(워크룸 프레스 2018)의 ⟨서문⟩에서 “19세기 이후에 기록되거나 작자가 불분명하거나 소설 속에만 나오거나 기록 없이 구전된 괴물은 되도록 배제하였다.”라고 말한다(17면). 그는 무속 신화 대부분이 1930년 이후에 채록된 자료를 근거로 하므로 “이런 자료들이 어떤 형태로 언제부터 내려온 것인지 알기가 어렵다는 한계는 뚜렷하다.”라고 보았다. 더군다나, ⟨창세가⟩가 1923년에야 함흥에서 채록되었기 때문에 “먼 옛날부터 전해진 세계의 창조에 대한 뿌리 깊은 신화가 아니라 그저 1920년대에 창작된 이야기일 수도 있다”라고 의심하였다.
이러한 의심은 구비문학자들의 논문이나 책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어서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같은 해 여름, 북페스티벌에 초청받기 일주일 전에 나는 국문학자들이 많이 참여한 어느 학회에서 발표한 적이 있다. 그 학회에서 나는 제주도 특수본풀이로 여겨지는 ⟨삼두구미본풀이⟩가 제주도의 전통적인 무속신화가 아니라 방정환의 번안 동화 ⟨요술왕 아아⟩가 제주도 무당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쳐서 형성된 이야기일 수 있다는 요지의 발표를 했다. 발표문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모티프 분석표까지 만들면서, 내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1] 하지만 제주도 무속신화의 신성성과 제의성을 향한 토론자의 굳건한 믿음을 흔들어 놓기는 어려웠다. 구전 서사문학과 기록 서사문학, 옛이야기와 대중매체의 쌍방향적인 영향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던 시기에 읽어서인지, ⟪한국 괴물 백과⟫의 ⟨서문⟩에 쓰인 ‘구미호’에 관한 대목이 내게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따라서 1970~80년대에 채록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로부터 수천 년간 내려온 한국의 전통을 연구한다는 방향에 무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대 대중문화의 영향은 막강하다. (중략) 예컨대 어느 지역 사람들에게 여우 전설을 조사했더니 다들 여우가 요사스러운 여자가 변했다고 이야기하기에 한국의 전통은 여우를 요사스러운 여자에 비유하는 경향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하자. 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그 동네에서 며칠 전 한혜숙이 여우로 변신하는 TV 연속극이 인기를 끌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한혜숙은 1979년 7월 10일 ⟨전설의 고향⟩에서 여우로 변신하는 연기를 보여준 적이 있었고 ⟪한국구비문학대계⟫에 포함된 전설에는 그 뒤에 채록된 것이 상당수다. (16면)
곽재식 작가의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구미호’에 관한 각종 논문과 채록 자료를 찾아서 읽어 보았다. ⟨전설의 고향: 구미호⟩와 유사한 구미호 설화는 1979년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구전설화집에서 찾기 어려웠다. 꼬리가 아홉 달리 여우인 ‘구미호’는 중국의 ⟪산해경⟫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한·중·일 삼국의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괴물이고, 1920년대 이후에도 구전 현장에서 적지 않게 채록되었다.
문헌설화집이나 구전설화집에 수록된 구미호 설화는, 기록 또는 채록 시기와는 상관없이, 대중매체가 제작한 구미호 전설과는 매우 달랐다. ⟨전설의 고향: 구미호⟩가 1979년 이후 구전 현장에 미친 영향은 예상한 것과는 달리 그다지 크지 않았다. 1980년 이후에 출간된 각종 구전설화집을 두루 살펴보았는데, ⟨전설의 고향: 구미호⟩와 줄거리와 인물 구성이 비슷한 각편을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다.
몇 개월 동안 구미호 설화를 공부해보니, 1979년에 방영된 임충 작가의 ⟨전설의 고향: 구미호⟩는 옛사람들이 전승한 전설이 아니라 임충 작가가 창작한 전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작 전설이기는 하지만, 모든 모티프가 임충 작가의 개인적인 상상력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한국과 외국의 다양한 유형의 설화에서 모티프를 끌어와서 서사를 새롭게 짠 이야기였다. 특히 ⟨전설의 고향: 구미호⟩는 일본으로 귀화한 아일랜드 작가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의 ⟨설녀⟩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일문학자 노성환 교수는 헌의 ⟨설녀⟩를 원작으로 삼은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영화와 ⟨전설의 고향: 구미호⟩의 유사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2]
전체 내용의 전개에 있어서 한국의 구미호와 일치성을 보이고, 또 한국의 전래 설화에는 없고, 일본의 요괴담에만 보이며, 또 장면에서도 일본의 ⟨설녀⟩ 와 거의 같은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77년도 KBS가 제작한 ⟨전설의 고향⟩ 구미호는 69년 고바야시 마사키의 괴담 ⟨설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일본의 설녀가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건너와 구미호로 재탄생한 것이었다.
이러한 노성환 교수의 주장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라프카디오 헌과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설녀⟩가 ⟨전설의 고향: 구미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날 79년에 방영된 ⟨전설의 고향: 구미호⟩는 구미호 전설의 표준텍스트로 자리매김하였고, 많은 후속 작가와 대중매체가 임충 본에서 모티프를 차용해서 새로운 구미호 이야기를 확대 재생산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옛사람들이 전해준 다양한 구미호 설화는 무대 밖으로 밀려나서 학자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이 브런치북은 ⟨전설의 고향: 구미호⟩가 내 마음에 싹트게 한 여러 의문점을 풀어가는 여정이 될 듯싶다. 우리 옛사람들이 들려준 구미호 이야기는 어떠한 내용일까? ⟨전설의 고향: 구미호⟩와 ⟨설녀⟩의 유사성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임충 작가가 새롭게 창작한 구미호 이야기가 옛사람들이 전승한 구미호 설화를 물리치고, 지난 몇십 년간 버젓이 한국의 대표 옛이야기로 자리 잡게 된 힘과 매력은 무엇일까? 임충 작가의 구미호 이야기에서 옛것과 새것, 우리 것과 외국 것은 어느 정도로 섞여 있는 것일까? 따위의 의문을 풀기 위해서 공부한 내용을 적어 볼 생각이다.
✻ 이 챕터의 내용은 처음 매거진에 발표했던 내용과 조금 다르다. 전체적인 논지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독자의 가독성을 고려해서 중간 부분을 많이 편집하였다.
[1] 구비문학자들이 ⟨삼두구미본풀이⟩ 유형에 넣고 있는 ⟨와라진 귀신⟩같은 구전 각편이 ⟨요술왕 아아⟩와 서사 내용이 매우 흡사하다는 점, ⟨삼두구미본풀이⟩는 무속 현장에서 연행된 적이 없는 무가로서 채록된 무가가 단 2편뿐이라는 점, ⟨요술왕 아아⟩가 수록된 ⟪사랑의 선물⟫이 1920년대의 베스트셀러인 데다 라디오 방송으로 방영된 적이 있어서 직간접적으로 구전 현장에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따위를 언급하였다.
[2] 구미호나 여우를 연구한 학자들의 논문을 읽어 보면, 노성환 님처럼, ⟨전설의 고향: 구미호⟩가 1977년에 방영되었다고 잘못 쓴 학자들이 있다. ⟨전설의 고향⟩ 시리즈가 방영되기 시작한 것은 1977년이지만, ⟨구미호⟩ 편이 방영된 것은 곽재식 님의 말처럼 1979년 7월 10일이다. 노성환, ⟨한국의 구미호와 일본의 설녀⟩, ⟪일어일문학⟫ 72집, 2016, 273-292면.
✽ 제목의 배경으로 넣은 삽화는 서왕모가 사는 곤륜산의 정경과 서왕모 옆에 있는 구미호 그림을 결합한 것이다. https://www.wikiwand.com/zh-sg/昆仑山_(神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