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장 거북이 트랑퀼라⟫: 왜 사자굴에 간 것일까?

by 김환희

미하엘 엔데가 글을 쓰고 독일 화가 만프레드 쉴뤼터가 그림을 그린 ⟪끈기짱 거북이 트랑퀼라⟫는 글과 그림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보통 글쓴이와 그린이가 다르면 이야기가 겉돌기 마련인데 ⟪끈기짱 거북이 트랑퀼라⟫에서는 그림으로 인해 글이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책에서 미하엘 엔데는 꿈을 좇는 자들에게 있어서 느림과 끈기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말하고 있다. 자칫하면 독자에게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쉴뤼터의 유머와 재치와 동심이 넘치는 환상적인 그림으로 인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저절로 동화 속의 세계에 푹 빠져 들게 된다.


동화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거북이 트랑퀼라는 바닷가 기름 나무 밑둥에서 외롭게 혼자 산다. 어느 날 나무 가지 위에 앉은 비둘기 부부의 대화를 엿듣다가 동물나라의 사자 대왕 레오 28세가 혼인 잔치에 물과 뭍에 사는 모든 동물을 다 초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트랑퀼라는 밤을 꼬박 새우면서 고민한 끝에 수레에 짐을 싣고 머나먼 사자굴을 향해 길을 떠난다. 나무와 돌을 지나 모래와 숲을 지나 밤낮으로 여행을 하는 동안에 트랑퀼라는 다양한 동물들을 만난다. 트랑퀼라가 만난 동물들은 한결같이 그의 여행을 만류한다. 바느질 쟁이 거미 파티마는 사자굴이 너무 멀어서 갈 수 없을 거라고 말하고, 달팽이 쉐헤레자데는 트랑퀼라가 방향을 잘못 들어섰기 때문에 혼인 잔치에 참석하기에는 이미 늦었으니 자신과 함께 놀자고 유혹한다. 또 사막에서 만난 몽당다리 도마뱀 짜카리아스는 사자 대왕이 뾰족 이빨 호랑이와 싸우러 사자굴을 떠났기 때문에 그곳에 가봤자 결혼식은 열리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동물들이 여행을 중단하라고 유혹하거나 만류할 때마다 트랑퀼라는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못해요. 난 이미 결심했거든요”라고 말한다. 도마뱀 짜카리아스의 만류를 뿌리치고 트랑퀼라가 사막을 묵묵히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는 상상하게 된다. 트랑퀼라가 사자굴에 도착할 무렵에는 아마도 사자 대왕은 뾰족 이빨 호랑이와의 결투에서 이기고 돌아와서 결혼식을 올리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독자의 그 기대는 다음 장면에서 여지없이 깨진다. 을씨년스러운 바닷가를 지날 때 트랑퀼라는 검은 상복을 입은 까마귀 에취를 만난다. 에취는 트랑퀼라에게 레오 28세가 뾰족 이빨 호랑이와 싸우다 죽어서 이미 땅에 묻혔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전해준다. 그는 레오 28세의 결혼식은 없으니깐 이제 집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자신들과 함께 대왕의 죽음을 애도하자고 권유한다. 트랑퀼라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사자굴을 향한 여행을 중단하지 않는다. 그런 트랑퀼라를 향해 까마귀들은 말한다. “저런 고집쟁이 녀석 같으니라고! 이미 죽은 대왕의 결혼식에 참석하겠다고 저렇게 가고 있다니”라고. 레오 28세가 죽었는데도 여행을 중단하지 않고 나무와 돌과 모래와 숲을 지나 밤낮으로 사자굴을 향해 계속 기어가는 고집불통 트랑퀼라의 행동은 독자의 마음속에 여러 의문을 낳는다. 결혼식을 볼 수 없을 터인데 트랑퀼라는 왜 여행을 계속하는 것일까? 한번 결심한 것은 결과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실행에 옮겨야 된다는 우직하고 아둔한 천성 때문일까? 여태껏 여행에 쏟아부은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자굴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집으로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도 멀리 와버렸기 때문일까? 이미 사라져 버린 결혼식에 대한 부질없는 환상과 미련을 버릴 수 없어서일까? 등등. 미하엘 엔데는 트랑퀼라가 왜 여행을 끝까지 계속했는지 그 속내에 대해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다. 마치 트랑퀼라의 행동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모두 독자의 몫이라는 듯이.


⟪끈기짱 거북이 트랑퀼라⟫를 읽는 독자의 반응과 평가는 다양할 것 같다. 이 책은 비판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흠을 잡을 수 있는 소지가 많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트랑퀼라가 레오 28세가 죽었는데도 험난한 여행을 계속한다는 설정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또 ‘속도’와 ‘유연성’과 ‘역동성’이 키워드인 인터넷의 시대를 헤쳐 나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파는 외골수 트랑퀼라가 과연 바람직한 인물인지 망설여졌다. 변화무쌍한 세상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트랑퀼라처럼 앞뒤도 재지 말고 ‘한번 결심한 것은 끝까지 밀고 나아가라’라고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교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트랑퀼라처럼 승산이 전혀 없어 보이는 싸움에 ‘올인’한다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짓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끈기짱 거북이 트랑퀼라⟫는 책을 덮고 나서도 이상스럽게 내 마음속에 깊은 반향을 일으켰다. ‘레오 28세가 죽었는데도 왜 트랑퀼라는 미래가 불확실한 그 힘든 여행을 계속한 것일까?’ ‘뜨거운 사막과 춥고 을씨년스러운 바닷가를 홀로 여행하는 내내 트랑퀼라의 마음속에는 과연 그 어떤 회의도 들지 않았을까?’ 등의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쉴뤼터의 그림을 꼼꼼히 다시 읽어보니 왜 엔데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꾸몄는지 이해가 갔다. 트랑퀼라에게 레오 28세의 결혼식은 단순한 결혼식이 아니다. 그 결혼식은 “몸이 크건 작건, 늙었건 어리건, 뚱뚱하건 가냘프건, 사는 곳이 물이건 땅이건 동물이란 동물은 모두 초대” 받은 결혼식인 것이다. 외톨이 트랑퀼라에게 그 결혼식은 그가 꿈꾸어 온 이상향인 것이다. 모든 동물들이 거북이걸음으로는 갈 수 없다고 말하는 그 세계에 닿기 위해서 트랑퀼라는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꿈을 좇는다는 것은 남들 눈에는 승산 없어 보이는 싸움에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믿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하는 것 아니던가. 어쩌면 트랑퀼라는 설령 그 꿈이 실현되지 않을지라도 꿈이 없는 무미건조하고 안정된 삶보다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힘들고 무모한 삶이 더 견딜만하다고 생각했을는지 모른다. 트랑퀼라는 곧 엔데이고 쉴뤼터이며, 자신의 꿈을 좇는 모든 자들인 것이다.

트랑퀼라2.jpg 출처: ⟪끈기장 거북이 트랑퀼라⟫, 미하엘 엔데 글, 만프레드 쉴뤼터 그림, 유혜자 옮김, 보물창고, 2005

쉴뤼터의 그림은 엔데의 글이 말하지 않는 트랑퀼라의 심리상태를 보여 준다. 그림책의 처음 부분에서 외톨이 트랑퀼라의 고독한 삶과 비둘기 부부의 화사한 삶은 대조를 이룬다. 쉴뤼터는 기름 나무 밑동의 그늘진 곳에서 홀로 살아가던 트랑퀼라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온기와 햇살과 사랑으로 충만한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을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와 새의 비상을 통해 보여준다. 트랑퀼라의 사자굴 여행은 즉흥적인 호기심 때문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혼자만의 고립된 ‘섬’에서 벗어나서 모든 동물들이 어우러져 사는 이상향에 이르고 싶은 트랑퀼라의 강렬한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다. 트랑퀼라가 까마귀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자굴을 향해 험난한 여행을 계속해 나간 것은 죽은 레오 28세의 결혼식을 볼 것이라는 헛된 바람 때문이 아니라 그 결혼식이 상징하는 사랑과 평등의 세계에 대한 열망 없이는 자신의 삶을 버티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쉴뤼터는 트랑퀼라의 불가능해 보이던 꿈이 실현되는 기적을 보여준다. 새로운 세상에서 레오 29세가 결혼식을 올리는 날 트랑퀼라는 각양각색의 외톨이 동물들과 한 마음이 되어서 축제를 즐긴다.


⟪끈기짱 거북이 트랑퀼라⟫에서 그림은 단지 글의 내용을 보조하는 수동적인 도구는 아니다. 글에 쓰여 있지 않은 이야기들이 그림 곳곳에 숨어 있다. 엔데의 글과 쉴뤼터의 그림은 서로를 지배하지 않으면서 평등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이룬다. 이 사실을 잘 느끼게 해주는 예를 하나 들자면, 트랑퀼라가 여행을 떠날 때 수레에 실은 ‘leo'라는 이름표가 붙은 혼례 선물을 꼽을 수 있다. 그 혼례 선물은 여행 내내 수레에 놓여 있다가 사막을 지날 때 분실된다. 아마도 사막의 거친 모래 바람에 날아간 것이리라. 트랑퀼라는 그 사실도 모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사막을 힘겹게 기어가는 데, 지나던 새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지 선물을 집어다가 수레에 다시 실어 준다.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한 그 선물 상자는 레오 29세와 그의 신부에게 무사히 전달된다. 첫 장면에 묘사된 새와 거북이 사이의 간극이 뜨거운 사막에서 줄어드는 아이러니에 화가의 따뜻한 마음씨가 담겨 있다.


⟪끈기짱 거북이 트랑퀼라⟫는 글과 그림이 모두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어린이와 어른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이다. 글은 단순하지만 그 글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독자의 삶의 체험에 따라서 글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또 글 속에 숨은 이야기와 그림 속에 숨은 이야기가 풍부해서 독자는 머릿속으로 한 편의 동화를 쓰는 상상의 즐거움 내지 암호 해독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굳이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을 꼽자면, 제목에 시류에 영합한다는 느낌을 주는 수식어 ‘끈기짱’을 붙인 점이다.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 독자들의 시선을 끌고자 하는 기획자 내지 번역자의 전략인지는 몰라도 책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주제를 지나치게 한정하는 제목이 아닐까 싶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어린이의 마음속에 때로는 아날로그적인 발상이 훨씬 더 신선하고 지속적인 울림을 가져다 줄 수도 있을 터인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이 책은 끈기를 가르치기 위한 단순한 우화는 아니다. 우리네 삶에서 꿈을 좇는 일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독자에게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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