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브라운의 행복한 미술관⟫(서애경 옮김, 웅진주니어 2004)은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과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이 내게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예전에 브라운이 출간한 그림책에 담긴 문제, 즉 ‘인생이란 감옥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과연 없는 것일까?’라는 질문의 답을 넌지시 알려주는 듯싶기 때문이다. 브라운의 많은 그림책에 나타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이는 1992년에 발표된 ⟪동물원⟫(장미란 옮김, 논장 2002)이란 그림책에서 가장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어린이가 읽기에는 내용이 너무 무겁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동물원⟫은 인간과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행복한 미술관⟫과 ⟪동물원⟫을 비교해서 읽으면 브라운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뚜렷하게 알 수 있다.
⟪행복한 미술관⟫은 ⟪동물원⟫의 속편 내지 동일한 가족사진의 음화와 양화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통점이 많아서 두 작품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선 이 두 작품의 인물 설정이 같다. 가족은 모두 넷이다. 고릴라같이 생긴 아버지는 썰렁한 농담을 즐기고 스포츠를 좋아한다. 내성적인 성격의 어머니는 동물 또는 약자의 고통을 예민하게 느끼는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이다. ⟪행복한 미술관⟫과 ⟪동물원⟫이 맺고 있는 유기적인 관계는 세 남자가 입은 의상에서 잘 알 수 있다. 두 그림책에서 어머니를 제외한 세 남자가 입은 의상은 동일하다. 아버지는 색동 줄무늬 티셔츠를, 형은 초록과 빨강으로 된 티셔츠를, 동생은 파랑과 노랑으로 된 티셔츠를 입고 있고, 세 남자는 모두 청바지를 입고 있다. 특히 두 작품에서 두 아들이 신은 신발의 모양이 똑같다. 이외에도 대칭을 이루는 이야기의 서사적 구조에서 두 작품의 유기적인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두 작품에 등장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대조적인 성품 때문인 듯 갈등의 골이 깊어 보인다. 이들은 삐걱거리는 부부 관계를 개선하려는 시도인지 두 아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간다. 브라운은 두 작품에서 나들이 가는 길에 있었던 일, 동물원과 미술관의 입구에서 있었던 일, 각 장소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들, 관람 도중에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들을 대칭적으로 펼쳐 보여 준다.
⟪동물원⟫에서 교통정체로 인해 지루해진 아이들은 서로 싸우고 아버지는 무료함을 해소하기 위해 썰렁하기 짝이 없는 농담을 내뱉는다. 동물원 매표소에 이르러서도 아버지는 입장권을 조금이라도 싸게 구입하기 위해 막내아들의 나이를 속이다가 직원과 야수처럼 승강이를 벌인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향해 야유와 조롱을 퍼붓는 사람들과 동물처럼 싸우는 가족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머니는 외로운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하고 있다.
⟪행복한 미술관⟫에서 나들이는 ⟪동물원⟫과는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다. 텔레비전에서 중요한 스포츠 경기를 보고 싶은 아버지와 형은 어머니의 생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술관 나들이를 따라나서긴 했지만 영 못마땅한 표정이다. 미술관은 소란스러운 동물원과는 달리 얼음같이 냉랭하고 고요한 분위기로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고풍스럽고 위풍당당해 보이는 미술관 건물에 주눅 들어 있는 아버지와 형은 미술관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듯 보인다. 동물원이란 공간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존재는 어머니이고, 미술관에서는 아버지와 두 아들이다. 미술관에 입장한 어머니는 다른 관람객과 더불어 미술의 세계에 빠져들고, 가족들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가족들이 입은 의상이 칙칙하고 단조로운 갈색의 톤으로 처리된 반면에 그림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의상은 화려한 색조를 띠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서 가족이 동물원과 미술관이라는 대조적인 공간에서 체험하는 세계는 매우 달라진다. 동물원 나들이가 가족 간의 갈등 및 고립감을 더욱 심화시킨 채 끝나는 반면에 미술관 나들이는 가족들이 갈등을 극복하고 조금 더 화목해지도록 돕는다. 동물원에서는 어머니가 느끼는 소외감이 더욱 커지지만, 미술관에서 세 부자가 느끼는 소외감은 그림을 구경하는 동안에 점차로 극복된다. 아버지와 두 형제는 미술관에 입장했을 때 느꼈던 어색한 감정을 극복하고 점차로 그림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동물원⟫과 ⟪행복한 미술관⟫이 보여주는 세계의 차이는 겉표지와 속표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두 작품의 표지는 모두 액자 속에 들어 가 있는 인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물원⟫의 표지에서 감옥의 창살을 연상시키는 흑백의 커다란 줄무늬 바탕 화면에 놓인 흑백 액자 속의 가족 그림은 영정이라도 되는 듯 음산한 느낌을 준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세 남자와 함께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유령처럼 파리하고 우울하다. 반면에 ⟪행복한 미술관⟫의 표지에 등장하는 액자는 초록과 빨강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바탕 위에 놓여 있는데다 어린이의 다채로운 동물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생명감이 넘쳐 보인다. 주인공이 입고 있는 밝은 옷과 초록빛 배경, 얼굴에 군데군데 묻어 있는 하얀 물감 얼룩 등이 그림 속의 인물에 생명감을 불어넣는다. 이러한 대조성은 속표지에서도 그대로 찾아 볼 수 있다. ⟪동물원⟫의 속표지는 우리에 갇혀 쳇바퀴와 더불어 홀로 지내는 햄스터의 외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행복한 미술관⟫의 속표지는 그림 속의 남자가 감옥의 철문과 같은 액자로부터 벗어나 현실세계로 발돋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동물원⟫의 속표지는 구속의 이미지를, ⟪행복한 미술관⟫의 속표지는 해방의 이미지를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동물원⟫에서 구속된 삶을 사는 존재는 우리에 갇힌 동물들만이 아니다. 그림책을 읽다 보면 우리에 갇힌 존재가 동물인지 인간인지 헷갈리게 된다. 브라운은 싸움을 하고 있는 비비를 철창 너머로 쳐다보면서 두 아들을 떠올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동물의 위치에서 포착함으로써 우리에 갇힌 자가 동물이 아니라 어머니인 것처럼 묘사한다. 또 관람객을 등진 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오랑우탄을 향해 유리창을 거칠게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에게 동물의 속성을 부여한다. 킹콩의 목소리를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는 아버지와 가족들을 서글픈 시선으로 근엄하게 쳐다보는 고릴라가 오히려 인간보다 더 품위 있어 보인다. 동물원 나들이를 통해 주인공이 깨닫게 된 것은 인간 속에 내재된 동물적인 속성과 인간 역시 동물원의 동물과 다름없이 우리에 갇힌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는 ⟪동물원⟫의 마지막 두 장면에서 잘 알 수 있다. 꿈속에서 우리에 갇혀 참담하게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주인공의 모습과 보름달임에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놓여 있는 동물원의 모습을 담고 있는 마지막 두 장면에서 그 어떤 희망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 없다. 이 그림책을 덮고 나면 마음속에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이러한 ⟪동물원⟫과는 달리 ⟪행복한 미술관⟫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행복한 미술관⟫에서 브라운의 작품 세계가 밝아진 것은 어머니의 지혜와 예술의 힘에 대한 작가의 믿음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행복한 미술관⟫의 어머니는 ⟪동물원⟫의 어머니처럼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이 어머니는 나약하거나 수동적이지 않다. 어머니는 자신의 생일날 가족들이 원치 않는 것을 알면서도 가족들을 이끌고 미술관에 갈 정도로 주관도 뚜렷하고 능동적이다. 미술관에 가서도 어머니는 미술관의 엄숙한 분위기에 기가 죽어 있는 가족들에게 그림을 보는 법을 설명하고 그림 속의 세계가 현실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우면서 그림을 친숙하게 느끼도록 이끈다. 어머니는 “이거 보니까 우리가 아는 누구네 집이 생각나지 않니?”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우리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상상해봐. 어떻겠니?” “이걸 보니 뭐 생각나는 것 없니?”라고 말하면서 아이들로 하여금 그림 속의 세계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어머니의 안내를 받으면서 그림을 보는 동안 가족들은 조금씩 활기를 되찾게 된다. 브라운은 그림 감상이 가져다준 가족들의 내면적인 변화를 옷 색깔의 변화를 통해 표현한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그림을 단순한 수용자의 입장에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림을 창조하는 능동적인 생산자가 되도록 이끈다. 어머니는 귀가 길에 선물가게에 들러 아이들에게 스케치북과 색 볼펜 두 자루를 사준 후에 아이들에게 그림놀이를 가르쳐 준다. 어머니가 가르쳐 준 그림 놀이는 주인공이 홀로 그리는 놀이가 아니라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형상을 완성시키는 놀이이기 때문에 화합과 협동을 필요로 한다. 그림 감상이 되찾게 해 준 가족 간의 사랑과 어머니의 세심한 배려에서 시작된 그림놀이는 주인공의 앞날을 결정짓는 계기가 된다. 어린 시절의 브라운을 연상시키는 주인공은 “그때부터 나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 쭉 그림놀이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술회한다.
⟪동물원⟫과 ⟪행복한 미술관⟫은 동일한 가족 그림의 음화와 양화처럼 대조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두 작품에 면면히 흐르는 브라운의 작가 정신은 한결같다. 브라운은 한 인터뷰에서 동화작가 내지 그림책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로 아이들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진실의 힘’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중앙일보 2003-04-06). ⟪동물원⟫에는 가족 간의 갈등, 인간의 이기성과 야수성, 우리에 갇힌 동물의 불행 등 삶의 어두운 모습들이 사실적으로 담겨 있다. ⟪행복한 미술관⟫에도 브라운의 그러한 세계관이 담겨 있다. 이 그림책에서 브라운이 가장 비중 있게 소개한 그림은 가족의 위기를 소재로 삼은 오거스터스 에그(Augustus Egg)의 <과거와 현재 제1번>이라는 그림이다.² 브라운은 이 수수께끼 같은 그림을 구성하는 다양한 상징과 모티프를 책 속에서 상세하게 설명한다. 충격을 받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어머니와 그 옆에 놓은 다른 남자의 초상화, 아내에게 버림받고 넋을 잃은 채 앉아 있는 아버지, 아이들이 쌓았던 카드로 만든 집의 해체 등등 이 그림은 한 가족의 위기를 실감 나게 묘사한다. 더군다나 브라운은 이 그림을 감상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누는 의미심장한 대화를 통해 그림 속의 가족이 처한 위기와 유사한 상황에 주인공의 가족이 처한 적이 있음을 암시한다.
브라운은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의 그 많은 그림 가운데 무엇 때문에 어린이에게 부적합한 소재를 다룬 이 복잡한 그림을 소개했는지를 묻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답한다. “이 그림은 내가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 상근 작가로 머물러 있는 동안에 아이들이 실제로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진 작품이기 때문이다”라고.¹ 브라운의 그림책이 다루는 무겁고 복잡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어린이들이 그의 책을 사랑하는 이유는 아마도 어린이의 안목과 분별력, ‘진실의 힘’에 대한 그의 믿음 때문일 것이다. 브라운의 책이 세계 여러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특히 불우한 환경에 처한 어린이들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주는 것은 브라운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린이가 우리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한 존재, 인간의 복잡한 생각과 삶의 복잡한 결을 이해할 능력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¹ Rabinovitch, Dina. “Parents: Off the shelf: Our monthly pick of the best in childrens literature: Author of the month: Anthony Browne, ” The Guardian London (UK) 27 Aug 2003: 2.17.
² Augustus Egg - 1./2. Unknown source3. Tate Britain,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