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의 유대 설화 개작은 전통 설화를 비틀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려는 미학적 욕구보다는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팀 버튼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팀 버튼은 메리 셸리의 소설이나 제임스 웨일의 영화에 등장하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디즈니영화사에서 일하던 1984년에 팀 버튼은 ⟪프랑켄슈타인⟫의 서사를 차용해서 ⟪프랑켄위니⟫라는 실사 영화를 만들었다. 또한,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약 삼십 년이 지나서 다시 장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을 정도로 팀 버튼은 ‘프랑켄슈타인’ 모티프에 남다른 애착을 지녔다. ⟪프랑켄위니⟫에서 죽은 애견을 살리는 소년 발명가의 이름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으로서, 메리 셸리의 소설 속 주인공 이름과 똑같다[1]. ⟪유령신부⟫에도 '프랑켄슈타인' 모티프가 삽입되어 있다. 주인공 이름이 빅터인 것, 시대적 배경이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연상시키는 것, 빅터가 시체신부를 저승에서 이승으로 소생시키는 것 따위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팀 버튼이 ‘프랑켄슈타인’ 모티프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던 이유 중의 하나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프랑켄슈타인의 실험과 유사한 속성을 지녔다고 생각해서이다. 팀 버튼에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근본적으로 “무생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예술”이다. 그는 그러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속성이 프랑켄슈타인이 시체를 부활시킨 행위와 유사하다고 보았다(Salisbury 2006, 252).
조 랜프트가 ‘시체신부’가 등장하는 옛이야기를 처음 들려주었을 때, 팀 버튼은 그 이야기로 ‘정서적인 울림’을 지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Salisbury 2005, 18). 그는 ⟪유령신부⟫에 등장하는 세 인물--빅터, 빅토리아, 에밀리--의 삼각관계를 잘 형상화해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실사 영화 못지않은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요정담”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다시 말해, “무섭고 소름 끼칠 것 같은 이야기를 낭만적인 사랑, 얄팍하지 않은 사랑의 진실을 담은 이야기”(19)로 만들려 한 것이다. 또한, 팀 버튼은 ‘시체신부’라는 캐릭터를 엘자 란체스터가 연기한 ‘프랑켄슈타인의 신부’(1935)에 필적할 만한, 감정이 살아 있는 여성 괴물로 만들고 싶어 하였다.
‘프랑켄슈타인’ 모티프가 들어 있는 팀 버튼의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괴물과 발명가의 관계,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가 기존의 ‘프랑켄슈타인’ 창작물과는 다르게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메리 셸리의 소설에서 발명가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한 괴물을 증오하고, 괴물은 무책임한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에게 복수심을 불태운다. 메리 셸리의 소설에서 괴물은 자기를 낳은 부모나 다름없는 창조자에게 분노에 찬 절규를 내뱉는다.
“사람들 누구나 추한 것들을 미워하지. 그러니 어떤 생명체보다도 추한 내가 얼마나 혐오스러울까! 그대 나의 창조자여, 하물며 당신까지도 자신의 피조물인 나를 혐오하고 멸시하고 있소. 그래도 그대와 나는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풀릴 끈으로 묶여 있소. 당신은 나를 죽이려 하지. 어찌 생명을 가지고 그렇게 놀 수 있는 거요? 나에 대한 의무를 다하시오. 그러면 나도 당신과 다른 인간들에 대한 내 본분을 다하겠소. 당신이 내 조건을 수락한다면 난 순순히 인간들과 당신의 곁을 떠나겠소. 하지만 거절한다면 죽음의 뱃속을 다 채울 때까지 당신의 남은 친구들의 피를 실컷 마셔대겠소.”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임종기 옮김, 문예출판사 2008, 125~126면)
창조자에게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은 괴물의 외침은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와 스필버그의 ⟪A.I⟫와 같은 SF 영화에서도 메아리친다. 자신의 피조물을 이용만 하고 폐기 처분하려는 ‘비인간적인 창조자-인간’과 그러한 창조자를 향한 그리움과 복수심으로 갈등하는 ‘인간적인 피조물-안드로이드’는 많은 SF 창작물이 보여주는 프랑켄슈타인적인 설정이다.
이러한 ‘프랑켄슈타인’ 유형의 창작물과는 다르게, 팀 버튼의 영화는 ‘피조물과 창조자’ 간의 갈등을 ‘동화적이고 낭만적인 방식’으로 풀어간다. 창조자는 자신이 생명을 불어넣어 준, 참담한 몰골의 피조물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돌본다. 또한, 추한 외모의 피조물도 그러한 창조자를 위해 아름다운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가위손⟫에서 에드워드를 창조한 발명가는 자상한 아버지처럼 식탁 예절을 가르쳐주고, 시를 읽어주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한다. ⟪프랑켄위니⟫에서 빅터는 흉한 모습으로 소생한 스파키를 애지중지한다. 또한, ⟪유령신부⟫에서 빅터는 저승에서 재회한 해골만 남은 스크랩스를 여전히 아끼고, 시체신부 에밀리에게 연민과 책임감을 느껴서 독약을 마시고 결혼하려고 한다.
이렇게 팀 버튼의 영화에서 창조자와 피조물이 밀월 관계를 보이는 것은, 앞글에서도 말한 바 있듯이, 팀 버튼의 유년기와 관련이 있을 듯싶다. 유년기에 부모의 사랑과 이해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또래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던 팀 버튼은 괴물 캐릭터에 연민과 동질감을 느꼈다. 유년기에 느꼈던 결핍과 소외의 감정을 예술과 판타지를 통해 치유하고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작용한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회에서 피조물과 창조자의 관계는 팀 버튼의 영화가 보여주는 동화적이고 낭만적인 밀월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팀 버튼의 영화가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은 테크놀로지가 우리를 지배하는 세상에서 창조자인 인간이 피조물에 대한 책임감과 윤리 의식을 지니지 못한다면 디스토피아의 도래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빅터라는 이름은 보리스 칼로프가 출연한 영화 ⟪프랑켄슈타인⟫ (1931)에 등장하는 발명가 이름은 아니다. 영화에서 발명가의 이름은 헨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