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의 ⟪유령신부⟫는 유대 설화에서 서사의 뼈대를 빌려왔지만, 많은 화소와 등장인물을 새롭게 첨가된 작품이다. 영화 속의 시공간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 마을이 아니라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음울한 소도시이다. ⟪유령신부⟫는 세 인물--인간신랑, 인간신부, 시체신부—이 형성하는 ‘사랑의 삼각관계’에 큰 비중을 둔다. 여기에 시체신부를 살해한, 사악한 약혼남도 등장해서 서사가 다채롭고 드라마틱하다. 또한, 사건의 절반은 이승이 아니라 저승에서 펼쳐진다. 우선, 논의를 전개하기에 앞서, <유령신부>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간추리기로 하자 [1].
영화 속의 시공간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연상시키는 음울한 마을이다. 몰락한 귀족의 딸 빅토리아와 생선 통조림을 팔아서 부자가 된 졸부의 아들 빅터(Victor)는 결혼식 리허설을 할 때 처음 만난다. 소극적인 빅토리아(Victoria)는 피아노를 치고 있는 빅터의 음악 소리에 이끌려서 대화를 나누다가 반하게 된다. 빅터도 빅토리아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결혼 리허설에서 너무 긴장한 탓에 결혼 서약을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
사제에게 혼이 난 빅터는 혼자서 숲속을 서성이면서 결혼 서약을 외우다가 눈에 묻혀 있던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뼈에 결혼반지를 끼우게 된다. 그때,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묻혀 있던 시체신부 에밀리(Emily)가 땅속에서 출현해 빅터의 손을 잡아당겨서 죽은 자의 세계로 끌고 간다. 죽은 자의 세계는 뜻밖에도 즐거운 곳이어서 해골들이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노래하면서 활기차게 지내고 있었다.
빅터는 자기 약혼녀 빅토리아를 생각하면서 부모님을 뵙고 싶다고 에밀리를 속여서 산자의 세계로 되돌아온다. 나뭇가지를 타고 빅토리아의 방으로 올라간 빅터는 자신이 어떠한 곤경에 처했는지를 빅토리아에게 말하려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에밀리가 창문에 나타나서 빅토리아에게 반지를 보여주면서 빅터를 강제로 데리고 죽은 자의 세계로 돌아간다. 빅토리아는 흉측한 시체와 결혼한 빅터를 구해주기 위해서 사제를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지만, 사제는 빅토리아를 엄격한 부모에게로 도로 데려간다.
빅터에게 좋지 못한 일이 생긴 것을 짐작한 빅토리아의 부모는 그럴듯한 옷차림을 하고 마을에 새롭게 등장한 졸부 바키스(Barkis)를 사위로 맞이하려고 한다. 바키스는 부잣집 딸이었던 에밀리를 결혼하자고 유혹해서 숲속으로 끌고 가 살해한 후 보석을 빼앗아 부자가 된 범죄자이다. 빅터 부모의 마차를 몰다가 죽는 바람에 명부의 세계에 막 도착한 마부가 약혼녀를 그리워하는 빅터에게 빅토리아가 새 남자와 결혼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한편, 결혼 서약을 살펴보던 명부 세계의 사제(Elder Gutknecht)는 에밀리가 빅터에게 아내의 권리를 주장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결혼서약이란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만 효력이 있는 것이어서 산 자가 죽은 자에게 한 결혼 맹세는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절망에 빠져있는 에밀리에게 연민을 느낀 빅터는 산 자의 세계에서 독약을 마시고 죽은 자가 되어 결혼 서약을 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빅터와 에밀리가 결혼식을 올릴 때 빅토리아가 나타나서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본다. 빅토리아의 슬픈 표정을 본 에밀리는 새삼 빅터가 자기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빅토리아에게 빅터를 되돌려주려고 한다. 하지만, 그때 에밀리를 죽인 바키스가 나타나서 빅토리아를 빼앗아 가려고 한다. 빅터는 바키스와 싸워서 빅토리아를 구원해 주고 바키스는 독약을 포도주로 잘못 알고 마시다 죽는다. 마음속의 모든 한을 씻어버린 에밀리가 크게 숨을 들이쉬자, 몸이 수천 마리의 나비로 해체된다. 빅터와 빅토리아는 보름달이 밝게 떠 있는 하늘로 수천 마리의 나비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본다.
⟪유령신부⟫가 보여주는 세계관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비너스 반지’ 유형의 유럽 설화나 유대 설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승 시기와 공간이 달라짐에 따라서 비너스, 성모, 악령, 시체로 다양하게 변모하는 ‘괴물 신부’는 인간 신랑을 소유하려는 강렬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다. 또한, 괴물 신부는 대부분 소유욕을 채우지 못한 채 인간계에서 영원히 추방당한다. 단지, 13세기 유럽에서 전승된 성모기적담에서만, 인간 신랑이 인간 신부의 곁을 떠나서 성모와 결혼한 수도승의 삶을 산다.
팀 버튼의 ⟪유령신부⟫에서 서사는 전통적인 괴물 신부 설화와는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다. 인간 신랑은 시체신부와 결혼하기 위해서 독배를 마실 결심을 하고, 시체신부는 인간 신랑을 인간 신부의 품으로 돌려보낸다. 팀 버튼이 창조한 시체신부는 인간 신부에게 연민과 동질감을 느낌으로써 자신의 소유욕을 극복한다. 이기적인 욕망과 집착을 타자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극복한 시체신부는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린 후 몸이 수많은 나비로 해체되어 천상계로 올라간다. 팀 버튼은 명부 세계에서 온 시체신부에게 생명력과 온기를 불어넣어서, 전통 설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괴물 신부를 창조하였다.
팀 버튼은 기존의 ‘괴물 신부’ 설화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저승 세계와 망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푸른 색조로 펼쳐지는 춥고 어두운 이승과는 달리, 화려한 색채로 표현된 저승에서 망자들은 음악, 춤, 술을 즐기면서 활기 넘치게 살아간다. 이승에서 빅터와 빅토리아는 권위와 도덕주의로 가득 찬 부모와 신부 밑에서 주눅 든 채 ‘죽은 자’나 다름없는 삶을 산다. 반면에 저승에서 춤과 노래가 있는 삶을 사는 에밀리는 ‘산 자’보다 더 생명력과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저승에 사는 해골 사제 구크네트[2]는 이승의 목사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합리적이어서, 시체신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언을 들려준다. 반면에, 이승에 사는 목사는 곤경에 처한 인간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더 큰 위기에 빠뜨릴 정도로 비정하기 짝이 없다.
이처럼, 괴물과 저승을 바라보는 팀 버튼의 시각은 ‘비너스 반지’ 모티프가 들어 있는 유럽 설화나 유대 설화와는 아주 다르다. 팀 버튼은 유대 설화를 새롭게 재해석해서 자기 삶의 체험과 독특한 미학, 그리고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독자적인 시각을 담아냈다. 기존의 설화에서는 ‘산 자’는 ‘죽은 자’를 추방하거나 위로할 수 있는 우월한 존재였지만, ⟪유령신부⟫에서 ‘죽은 자’는 ‘산 자’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니다.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연민을 느껴서 관용을 베풀고 양보한다. 또한, ⟪유령신부⟫에서 이승과 저승, 웃음과 슬픔, 희극과 비극, 아름다움과 추함, 빛과 어둠 등 서로 다른 두 세계가 교차하거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러한 설정은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저승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덜어준다.

[1] <유령신부>의 각본을 집필한 작가들은 존 어거스트(John August), 캐럴린 톰슨(Caroline Thompson), 파멜라 페틀러(Pamela Pettler)등이다. 이 셋 중에서 최종적으로 각본을 손질한 작가는 존 어거스트이다. 어거스트의 홈페이지 참조
[2] 구크네트는 영화에서 원로 또는 장로를 뜻하는 “Elder"로 불리는 데, 마법을 사용하고 혼례를 주재하고 판결하는 인물이다. 즉, 그는 마법사와 랍비의 역할을 두루 수행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