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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희 Dec 23. 2023

팀 버튼의 옛이야기 철학과 자기 서사, '미녀와 야수'

팀 버튼은 옛이야기를 입말이나 문헌이 아니라 영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꾼이다. 팀 버튼이 보여주는 옛이야기 세계는 월트 디즈니의 ⟪백설공주⟫ 나 ⟪신데렐라⟫가 보여주는 세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화, 전설, 민담(folktale), 요정담(fairy tale) 등 옛이야기의 숲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데, 월트 디즈니는 그 숲속에서 어둠을 되도록 제거하고 빛의 세계만을 뚜렷이 부각했다. 다시 말해, 디즈니는 아이들의 정서와 사고를 고려한답시고 어른들에게 껄끄럽게 느껴지는 많은 요소를 제거한 옛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팀 버튼의 영화 속의 옛이야기 세계는 삶의 부조리와 잔혹성, 인간의 야수성과 이기적인 욕망, 공동체에서 소외된 존재의 꿈과 아픔을 형상화한다. 그의 영화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균질하고 달콤하게 만들어 버리기 이전의 옛이야기와 아주 유사하다. 팀 버튼이 만든 영화를 보면 그 독특한 상상력의 근원에 옛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는 유명 감독이 되기 전에 ⟪헨젤과 그레텔⟫과 ⟪알라딘의 램프⟫를 영화로 만들었다. 그 이후에 만든 영화인 ⟪가위손⟫, ⟪크리스마스 악몽⟫, ⟪슬리피 할로우⟫, ⟪빅 피쉬⟫, ⟪유령신부⟫ 등은 팀 버튼의 옛이야기 상상력을 잘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우리가 삶에서 부딪히는 위험을 해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인생의 시련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서, 옛이야기의 힘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1](Fraga 66). 그 인터뷰에서 팀 버튼은 자기의 옛이야기 철학을 들려준다. 


내 생각에 옛이야기는 싱그러운 충동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부를 수 있는 모든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창조되었을까? 저 바깥세상에는 뭐가 있을까?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이 모든 것은 알 수 없지요. 삶이란 원래 알 수 없는 것 아닐까요? 모든 것이 삶과 죽음과 미지(未知)의 그늘에 있지요. 선과 악, 웃음과 슬픔의 결합이지요. 한꺼번에 모든 것이 일어나지요.  모든 것이 이상스럽게 복잡하지요. 저는 옛이야기가 그 점을 인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옛이야기는 그 부조리를 인정하지요. 그 현실성을 인정하지요. 하지만 현실을 넘어선 방식으로 인정하지요. 그런데 그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Fraga 66)


옛이야기를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은 옛이야기를 물활론적 사고를 하는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단순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확연히 다르다. 팀 버튼은 옛이야기를 삶의 입체성과 부조리를 사실주의가 아니라 상징주의 미학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는 지성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면서 인물과 사물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과장법을 즐겨 사용하는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유령신부⟫가 ‘비너스 반지’ 유형에 속하는 기존의 설화와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괴물 신부’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유령신부⟫ 이전에 전승된 유사 설화에서 괴물 신부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는 단 한 편도 없었다. 그런데, 팀 버튼은 에밀리의 심리 변화와 삶의 내력을 펼쳐 보여주면서, 괴물 신부를 관객이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는,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로 형상화한다. 


이러한 개작이 전통 설화를 비틀어서 새 옛이야기를 창작하려는 욕구보다는 야수나 괴물 캐릭터에 대한 동질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팀 버튼은 괴물 영화를,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는 다를지라도, “요정담과 우화가 속해 있는 오랜 전통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였다(Fraga 173). 또한, 괴물 영화를 일종의 ⟨미녀와 야수⟩ 이야기라고 보았다.


“모든 괴물 영화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이야기이지요. 즉 ⟨미녀와 야수⟩ 이야기입니다. 괴물영화는 내 신화 형식, 내 요정담[fairy tales] 형식입니다. 내 생각에 민담의 목적은 삶에 대한, 즉 헤쳐 나가야 할 삶에 대한 일종의 극단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인 것 같습니다”(Fraga 48). 


팀 버튼이, 가위손 에드워드나 ⟪크리스마스 악몽⟫의 샐리와 같은, 내면적인 아름다움, 포용력, 순수성을 지닌 매력적인 괴물 캐릭터를 창안할 수 있었던 것은, 팀 버튼의 유년 시절과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다. 팀 버튼 어릴 적부터 가족과 사회에서 소외된 채, 또래 친구가 없는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다. 그는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는 자신을 괴물과 다름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크리스티안 프라가가 편집한 인터뷰 모음집을 읽어보면[2], 팀 버튼은 자신이 유년기를 보냈던 버뱅크 교외 지역을 “지옥의 구덩이”라고 부를 정도로 싫어했다. 팀 버튼이 유년기를 보낸 부모의 집에는 “깊고, 어두운 불행’이 스며 들어 있었고, 우울증에 걸린 듯한 부모는 반항적인 아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열 살 때 부모와 함께 살기 싫어서, 특히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싫어서, 할머니의 집으로 들어가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살았다. 그는 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을 성소(聖所)에 비유하였는데, 할머니가 먹을 것만 챙겨주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어서이다(Fraga 167). 


팀 버튼의 학교생활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부터 자신이 아주 늙었다고 생각해서 또래 친구를 거의 사귀지 못한 채 외톨이로 지냈다. 그는 학창 시절에 느꼈던 외로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토로한 적이 있다.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나? 사람들이 나보고 이상하다고 하니까 아마도 그게 맞겠지? 하지만, 난 전혀 이상한 것 같지 않은데? 라고 생각하면서 길거리를 헤맨 적도 있었어요. 돌이켜 보면,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괴짜 취급을 당하는 사람들은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었어요. 아마도 개인적인 힘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이 그것을 가진 사람들을 괴롭히고 싶기 때문이겠지요. (Fraga 175) 


가족과 사회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채 외톨이로 지낸 팀 버튼을 살아 숨 쉬게 해준 창조적 출구가 그림 그리기와 괴물 및 공포 영화였다. 팀 버튼은 빈센트 프라이스가 출연한, 에드가 알랜 포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어셔 가의 몰락⟫이나 ⟪까마귀⟫와 같은 공포 영화를 보면서, 유년기의 외로움을 달랬고, 죽을 것만 같은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러한 공포 영화와 애드거 알랜 포와 빈센트 프라이스가 유년기의 우울한 삶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Fraga 33). 또한, 텔레비전에 대한 팀 버튼의 사랑도 그가 얼마나 외로운 삶을 살았는지를 잘 말해준다. 


 제게 영향을 준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저는 텔레비전의 아이예요. 저는 괴물 영화들, ⟪트와일라잇 존⟫와 ⟪아우터 리미츠⟫를 보면서 자랐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텔레비전에서 따스한 불빛을 느낄 수 있어요. 저한테 텔레비전은 언제나 난로, 부모님, 자궁, 친구예요. 그래서 텔레비전을 켜놓는 것을 좋아해요. (Fraga, 169)



[1] Fraga, Kristian, ed., Tim Burton: Interviews. Jackson: UP of Mississippi, 2005.

[2] 프라가의 인터뷰 모음집을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 ⟪고딕의 영상시인 팀 버튼⟫(김현우 옮김, 마음산책 200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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