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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희 Jul 08. 2023

인터넷 민담 ⟨시체신부⟩ 속의 인간신부

⟪유령신부⟫가 개봉된 이후 몇 년간 영문판 ⟪위키백과⟫와 ⟨팀 버튼 콜렉티브⟩에서 공통으로 저본으로 소개한 이야기가 한 편 있다. 그 이야기는, 제1장에서도 언급했듯이, 19세기 제정 러시아에서 자행되었던 유대인 대학살과 관련이 있는 러시아-유대 민담으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출처가 불분명해서 지금은 더 이상으로 저본으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현재 영문판 ⟪위키백과⟫는 ⟪유령신부⟫가 ’17세기 유대인 민담’에 바탕을 둔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현재 공식적으로 알려진 ⟪유령신부⟫의 저본은 슈워츠의 ⟨손가락⟩ 뿐이다. 하지만, 출처와 제목이 밝혀지지 않은 ’19세기 러시아-유대 민담’은 인터넷상에서 아직도 팀 버튼 애니메이션의 저본으로 회자된다. 이 이야기에 ‘악령’이 아니라 ‘시체’가 신부로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슈워츠의 개작본 ⟨손가락⟩을 그 누군가가 또다시 개작한 이야기가 인터넷 민담으로 유포된 듯싶다.  편의상, 이 글에서는 제목과 출처가 없는 그 인터넷 민담을 ⟨시체신부⟩로 지칭하기로 한다. [1]


⟨시체신부⟩는, 그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이야기 자체만을 놓고 평가할 때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이야기이다. ⟨시체신부⟩는, 우리가 앞서 살펴본 옛이야기들과는 달리, 민담적인 특성을 잘 보여준다. 우선, “옛날 옛적에 러시아의 어느 마을에 결혼을 얼마 앞둔 청년이 살았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들머리가 민담적이다. 시간과 공간의 배경이 특정되지 않는 것이, 전설과 차별화할 수 있는 민담의 특징인데, ⟨시체신부⟩에서 공간적 배경은 팔레스타인의 사페드가 아니라 러시아의 어느 마을로 설정되어 있다. 이외에도, 등장인물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것, 서사가  전설적인 랍비의 뛰어난 행적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보통 사람들’의 시련과 극복을 다루고 있는 것도 민담적인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시체신부⟩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인간신부가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12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유사 설화에서 인간신부가 비중있게 등장하는 이야기는 아직 단 한 편도 없었다.  반지를 악령(비너스, 성모, 악령, 시체신부)의 손가락에 잘못 끼운 남자의 불행을 다룬 이야기에서 정혼녀 또는 인간신부는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었다. ⟨시체신부⟩에서 랍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신랑 앞에 시체신부가 갑자기 나타나서 첫날밤을 치르겠다고 하는 대목까지는 기존의 이야기와 유사하지만, ⟨시체신부⟩의 후반부는 아주 다르다. 


이 끔찍스러운 말을 듣자, 젊은이는, 비록 따스한 여름날이었지만, 온몸의 털이 모두 곤두섰다. 랍비들이 의논하는 동안, 진짜 인간 신부가 도착해서 무슨 소동인지 알고 싶어 했다. 약혼자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자, 신부는 울기 시작했다. “아, 내 인생도 끝났어요. 내 모든 희망과 꿈이 산산이 부서졌어요. 나는 이제 영원히 결혼도 못 하고 가족도 갖지 못하게 되었어요.” 


바로 그때 랍비들이 나와서 “정말로 손가락에 금반지를 끼고 그 주변을 춤을 추면서 세 번 돌고 결혼 서약을 모두 말했나요?” 하고 물었다.  두 젊은이는 한쪽 구석에 웅크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랍비들은 다시 회의를 진행했고, 어린 신부는 쓰라린 눈물을 흘렸다. 시체신부는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혼 첫날밤을 꿈꾸면서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잠시 뒤 랍비들이 엄숙하게 성큼성큼 걸어 나와서 의자에 앉아 공표했다. “당신이 시체신부의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우고 결혼서약을 하면서 그 주변을 세 번 맴돌면서 춤을 추었다면, 우리는 그 결혼식을 적법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결의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죽은 자는 산 자에게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한숨 소리와 중얼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 어린 신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시체신부는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 주어진 삶의 기회가 사라졌어요.  나는 이제 결코 꿈을 이루지 못할 거예요. 난 영원한 패배자예요.” 그녀는 바닥에 폭삭 무너져 내렸다. 너덜거리는 웨딩드레스 속에 생명이 없는 뼈가 수북이 들어 있는 것이 보기에 너무도 참담한 정경이었다.


시체신부에게 연민을 느낀 어린 신부는 무릎을 꿇고 낡은 뼈 더미를 잘 매만지고 너덜너덜한 비단옷을 잘 입힌 후 꼭 껴안고, 마치 우는 아기를 달래듯이, 반쯤 노래 같기도 하고  반쯤 웅얼거림 같기도 한 말을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당신을 위해 당신의 꿈을 살겠어요. 나는 당신을 위해 당신의 희망을 살겠어요. 나는 당신을 위해 당신의 아기를 갖겠어요. 나는 우리 둘 모두를 위해 많은 아기를 갖겠어요.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이 잘 자라서 우리를 잊지 않을 거예요.”


다정하게 시체신부의 눈을 감겨준 후 시신을 가슴에 안고서 천천히 균형 잡힌 발걸음으로 또박또박 강가를 향해 걸어가서 시체신부를 내려놓았다.  어린 신부는 얕은 무덤을 파고 그 속에 시신을 놓은 채 뼈만 앙상한 가슴에 뼈만 앙상한 팔을 포개 얹고 반지를 낀 손과 다른 손을 꼭 맞잡게 하고서 혼례복을 잘 매만져 주면서 속삭였다.  “평화롭게 쉬세요. 내가 당신 꿈을 대신 살아 드리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을 거예요.”


새 무덤에 누워있는 시체신부는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마치 이 어린 신부를 통해서 그녀의 꿈이 실현될 거라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듯이. 어린 신부는 얕은 무덤에 누운 시체신부 위를, 너덜너덜한 웨딩드레스 위를, 흙으로 잘 덮어 주고, 그 위를 온통 들꽃으로 덮어주고 주변을 돌로 감싸주었다.


어린 신부는 약혼자에게 되돌아가서 아주 엄숙한 결혼식을 올리고, 수십 년 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다. 그들의 모든 자식, 손자들, 증손자들이 항상 시체신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를 잊지 않았고,  그녀가 가르쳐 준 지혜와 연민도 잊지 않았다.


⟨시체신부⟩의 대단원에서 인간신부는 랍비의 판결로 인해 시체신부가 다시 해골로 변하자, 그 참담한 모습에 연민을 느껴서 시체신부의 영혼을 위로하고 장례를 정성껏 치러 준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극한 갈등과 랍비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데 그친 팔레스타인 유대 전설과는 달리, ⟨시체신부⟩에서는 인간신부가 시체신부에게 보인 연민과 관용으로 인해 두 여성의 갈등관계는 극복되고 화해가 이루어진다. 


대단원에서 이야기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감상성이 짙어지는 것, 특히 인간 신부가 시체신부의 해골을 매만지면서 위로의 말을 늘어놓는 것에서 개작의 흔적이 느껴지기는 해도, 전반적으로 ⟨시체신부⟩는 이야기의 짜임새가 탄탄하고, 좋은 옛이야기에서나 발견되는 ‘약자 또는 망자에 대한 관용과 연민의 정신’을 담고 있다.


⟨시체신부⟩가 20세기 후반에 창작된 옛이야기일 가능성은 크지만, 조 랜프트가 프로듀서에게 지적해 준 원전(original fable)의 세 가지 특징에 부합된다.[2] 그 세 가지 특징은 (1) 빅토리아(인간신부)의 시각이 중요한 것, (2) 시체신부가 괴물스럽고 심술궂은 존재로 그려진 것, (3) 시체신부가 빅터(인간신랑)를 포기하더라도 인간신부가 자신의 몫까지 사랑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랑의 패배자가 아닌 것으로 간추릴 수 있다. 


이렇게 세 인물 사이에 ‘사랑의 삼각관계’가 존재하고 서사의 전개에서 인간신부가 맡은 비중이 크다는 점은 ⟨시체신부⟩에만 나타나는 특징이다. 팔레스타인 전설이나 슈워츠의 ⟨손가락⟩에 등장하는 인간 신부는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어서 ‘사랑의 삼각관계’로 발전하기 어렵다. 


⟨시체신부⟩가 보여주는 가장 큰 장점은 기존의 유사 설화에서는 존재감이 없던 인간신부를 ‘관용과 연민’을 지닌 여성, 나이는 어리지만, 랍비 못지않게 강인하고 담대한 성품을 지닌 인물로 살렸다는 데에 있다. ⟨시체신부⟩에서 랍비들은 시체신부를 죽음의 세계로 내쫓지만 인간 신부는 무참하게 두 번 죽은 시체신부의 뼈를 매만지고 망자의 한을 풀어 주고 넋을 위로하는 말을 한다. 이러한 모습은 망자를 위해 씻김굿을 하는 고대 사제 또는 무당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인간신부의 모습이 유대 민담 전통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랍비의 공적을 기리는 유대 전설과는 달리, 유대 민담에는 강인하고 담대하고 지혜로운 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독일에서 살았던 유대인들이 전승한 민담 가운데 ⟨나무에 사는 악령⟩과 ⟨여자 악령과 결혼한 남자⟩라는 민담에서는 연민과 지혜를 지닌 인간신부가 등장해서 악령과 협상해서 가족을 보호한다. 이 두 설화를 소개하다보면 이 글의 논점이 산만해 질 우려가 있어서, 다른 브런치 매거진을 통해 소개할 생각이다. 



[1] 이 이야기는 인터넷상으로 널리 퍼져 있어서, 아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https://friggasgirl.livejournal.com/348997.html>

[2] Salisbury(2005), Mark. Tim Burton's Corpse Bride: An Invitation to the Wedding. New York: New Market Press, 200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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