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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마 Apr 25. 2022

일본 도자의 신, 이삼평을 찾아서.

규슈에 새겨진 한국사 4

유럽에서 히트 친 일본 도자기-이마리야키 (brunch.co.kr)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일본 규슈 사가현의 구로카미산(黑髮山) 남쪽 자락에 위치한 첩첩산중, 오지 중의 오지 마을 아리타에 큰 변화가 찾아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 번주인 나베시마 나오시게에게 끌려온 조선 도공 이삼평(李參平,?~1655)이 1616년 이즈미야마(泉山)에서 백자의 재료가 되는 고령토(백토) 광산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삼평은 광산 건너편 사라카와(白川) 계곡가에 ‘덴구다니(天狗谷) 가마’를 열고 일본 최초의 백자를 생산해 냅니다. 이것이 아리타야키의 시작입니다. 조선 도공 이삼평이 일본으로 끌려오지 않았던들, 그가 백토 광산을 발견하지 못했던들, 또 자기 제작에 성공하지 못했던들 아리타야키는 시작조차 불가능했겠지요.    


오지마을 아리타는 일본 사가현 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두피디아 제공)

    

인구 2만의 이 작은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도잔신사(陶山神社)에 도착합니다. 신사 입구에서부터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일본의 그 허구한 신사들에서는 볼 수 없는 청화백자 도리이(鳥居, 일본 신사의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를 나타내는 문)가 무척 이색적입니다. 도리이뿐만이 아닙니다. 고마이누(狗犬 또는 高麗犬, 신사 앞에 벽사를 위해 쌍으로 마주 보게 놓는 사자 모양 개의 상), 도로(燈籠, 봉헌으로 세워진 석등 또는 청동등), 데미즈야(手水舍, 신사 한쪽 귀퉁이에 물을 담아 둔 곳) 등 모든 것이 독특하게 청화백자로 만들어져 본전으로 향하는 길 양편에 늘어서 있습니다.               


도잔신사 입구는 나무 도리이(鳥居)로 되어 있습니다.
저 멀리 계단 끝에 매우 독특한 청화백자 도리이(鳥居)가 보입니다.
청화백자 고마이누(狗犬 또는 高麗犬)와 대형 청화백자 등 다른 신사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풍광을 자랑하는 도잔신사입니다.  


원래 도잔신사는 1658년에 일본 오진(應神, 재위 270~310) 왕을 모시는 신사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다 1917년 아리타 요업 300주년을 맞이하면서 이삼평을 도조(陶祖)로 추앙하고, 사가 번의 초대 번주로서 아리타의 도자산업 육성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나베시마 나오시게와 도조 이삼평을 오진왕과 함께 모시게 됩니다. 그리고 도잔신사 뒤쪽 언덕에 ‘도조 이삼평 비’를 세웁니다. 이삼평의 비가 세워진 곳을 사람들은 ‘도조의 언덕(陶祖坂)’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도자 마을로서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아리타는 일본 자기의 조상인 도조(陶祖) 이삼평의 노고와 공을 잊지 않았습니다.  비가 오락가락 흩뿌리는 궂은 날씨에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이삼평 비는 신비스럽고 장엄해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됩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아리타 마을의 경치는 옹기종기 참 정겹습니다. 

            

도잔신사 뒤편 오솔길로 잠시 오르면 '도조(陶祖)의 언덕'이라 불리는 곳에 우뚝 세워진 '도조 이삼평 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차가운 돌이 이토록 따뜻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지요. 오래도록 그 따뜻함을 느끼고 싶은 순간입니다.
'도조의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아리타 마을은 오밀조밀 참 정겹군요.


이삼평이 연 최초의 백자 가마인 덴구다니 가마터를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큰 가마터입니다. 경사진 산비탈을 이용해 만든 노보리 가마(登り窯)로 이는 우리말로 오름 가마(登窯)입니다. 지표면을 굴착해 경사면을 만드는 일본의 아나 가마(穴窯)와 달리 10도 이상의 경사면에 터널 모양으로 축조한 우리나라 전통의 가마 방식입니다. 이는 내부 공간이 넓어 대량생산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이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이용하기에 가마의 온도를 쉽게 올리고 내리는 것이 가능한 탁월한 방식입니다. 

이곳 일본 땅 아리타에 조선 도공들에 의해 ‘오름 가마’와 속도가 매우 빠른 ‘발로 차는’ 물레의 비법이 전수된 것입니다. 이로써 일본 자기는 획기적인 기술의 발전을 보게 됩니다.


1630년부터 1660년 무렵까지 약 30년 동안 덴구다니 가마는 다섯 번의 개축이 있었습니다. 한 가마에 계속 불을 때면 나중엔 가마 벽이 터져서 이를 헐고 새로 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보는 가마터 유적은 다섯 개의 가마가 겹겹이 엉켜 있는 형태입니다.          


산비탈을 이용해 만든 우리 전통 방식의 오름 가마, 덴구다니 가마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어 반갑습니다.


가마터 아래 골목길에 단아한 흰 들꽃이 꽃망울을 피웠습니다. 고요한 시골마을의 여유로움처럼 한가롭게 살랑입니다. 한 다발 꺾어 묶습니다. 그리곤 곧장 근처의 마을 공동묘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윗부분이 약간 잘려나간 이삼평의 묘비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소박한 들꽃이지만 비석 앞 백자 꽃병에 담는 마음은 감격으로 부풀어 오릅니다.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의 오프닝 구절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놓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는 어두운 시대에도 희망은 존재하고 우리에겐 그것을 극복할 힘이 있다는 것을 전하는 작가의 강력한 메시지일 것입니다.


들꽃 한 다발 꺾어 바칩니다.
일본 최초로 자기를 구운 이삼평의 묘비를 발견한 내력을 전하는 기념비 내용이 한글로도 적혀있어 고맙습니다. 


그러나 경의를 표하고 싶은 조선 도공은, 도조로 추앙받고 있는 이삼평뿐만은 아닙니다. 아리타 도업(陶業)의 어머니로 불리는 여자 도공 백파선(百婆仙)을 비롯해 가라쓰야키의 우칠(又七), 구마모토 아가노야키의 존해(尊楷), 야마구치 하기야키의 이작광(李勺光)과 이경(李敬) 형제, 오이타 다카토리야키의 팔산(八山), 가고시마 사쓰마야키의 심당길과 박평의, 이외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십, 아니 수백의 조선 도공 모두입니다. 이들의 후손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대를 이어 가마를 운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조선 도공 도래 이후 400년간 일본의 도자 산업은 발전을 거듭해 지금까지 세계적 명성을 이어갈 수 있게 됩니다. 


수백 명의 조선 도공들이 이뤄낸 일본 도자기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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