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The Last Samurai)’(2003)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일본 남규슈 사쓰마 번(지금의 가고시마 현)을 배경으로 하는 할리우드 영화지요. 주인공인 톰 크루즈(Tom Cruise)의 연기력과 멋짐이 폭발한 영화가 아닌가 싶은데요, 그는 이 영화 하나로 사무라이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일본인들의 국민적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일본 기념일협회가 ‘톰 크루즈의 날’(10월 10일)을 지정했을 정도니까요.^^;
일본도를 장착한 <라스트 사무라이>의 주인공, 톰 크루즈 모습이 조금 낯설군요.^^;
톰 크루즈는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일본의 근대식 군대를 훈련하는 미국 대위, 네이든 알그렌으로 등장합니다. 거센 서구화 물결에 밀려 와해될 위기에 처한 사무라이, 가쯔모토(와타나베 켄 분)의 무사도에 매료된 알그렌은 사무라이 반란을 진압해야 하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 오히려 가쯔모토와 함께 일본 정부에 반기를 들지요.
장대한 스케일의 전쟁신, 원시 자연을 품은 듯 아름다운 풍경과 영상미, 한스 짐머(Hans Zimmer)의 웅장한 음악이 어우러져 신비로움을 더한 영화입니다. 기교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불편한 부분도 있습니다. 서구인들의 일본 무사도에 대한 호기심, 경이로움과 함께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교묘히 버무려진 듯한 느낌, 문명화되고 우월한 서양에 비해 열등한 동양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인상을 떨쳐버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군을 신식 군대로 훈련하는 알그렌 대위와 갑옷과 칼로 무장한 무사 알그렌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두 장면이군요.
영화의 몇몇 역사 왜곡도 불편함을 주는 데 한 몫합니다만 내용 자체를 분석,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영화를 역사영화라 여기지는 않으니까요. 다만 영화를 통해 몇 가지 궁금증과 호기심이 몽글몽글 솟아오릅니다. 하나는 수백 년간 이어온 일본의 막부정권을 지탱한 것도, 가차 없이 무너뜨린 것도 바로 사무라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무라이 정신의 바탕인 ‘주군에 복종하는 충의의 마음’보다 근대적 국가로의 개혁이라는 시대정신이 앞섰기 때문일까요?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영화 속 최후의 사무라이, 가쯔모토가 실존 인물인 사이고 다카모리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후의 사무라이 '가쯔모토'는 실존인물인 '사이고 다카모리'를 모델로 하고 있지요. 부리부리한 눈이 닮았군요.^^
19C 중반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가 그랬듯 서양 열강의 통상 요구에 맞닥뜨려 막부의 실권자인 쇼군(將軍)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합니다. 무능한 막부를 쓰러뜨린 것은 오히려 막부를 지탱해 온 사무라이였지요. 그들은 일찌감치 서양 문물을 접하고 세상에 눈을 뜬 서남쪽 변방, 사쓰마 번(薩摩藩)과 조슈 번(長州藩)의 하급 사무라이출신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1828~1877)입니다.
이들이 옹립한 메이지왕은 마침내 쇼군으로부터 통치권을 넘겨받고 이듬해 메이지 유신을 선포, 신정부가 수립(1868)됩니다. 장장 700여 년간 이어온 군부정권인 막부(幕府, 12~19C)가 종식되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것이지요. 알다시피 일본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성공적인 근대로 나아갈 수 있었던 첫발이 메이지 유신입니다. 쇄국정책으로 일관했던 막부와 달리 메이지 정부는 서구 제국주의 국가를 따라잡기 위해 부국강병의 기치 아래 자본주의 육성과 군사력 강화에 주력해 재빠르게 근대 국가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 정부를 세운 장본인이자 일등공신인 사이고 다카모리는 신정부가 수립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도리어 신정부의 타도대상이 됩니다. 무슨 일일까요?
새 징병제 도입을 둘러싸고 의견 대립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국민개병제를 원하는 정부와 달리 그는 사무라이 전통을 살린 군대조직을 주장합니다. 애초에 근대국가를 지향하는 신정부와 사무라이의 공존은 불가능한 것이었는 지도 모르지요. 사무라이에 대한 모든 특권은 폐지되고 사무라이들은 비극적인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를 타계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이고가 내놓은 ‘정한론(征韓論, 일본 내 여러 문제의 해결책이나 성장의 방법으로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주장)'조차 개혁이 시급했던 정부에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모든 지위를 사임한 그는 고향인 규슈 사쓰마로 돌아와 군사학교를 설립합니다. 사무라이들이 모여들자 정부는 사쓰마가 반란의 중심지가 될 것을 염려해 강압적인 조치들을 취합니다. 화난 사이고의 제자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사이고가 동조하면서 영화의 배경이 된 세이난(西南) 전쟁(1877)이 시작된 것이지요. 사이고의 군대는 정부군에 패전을 거듭합니다. 결국 최후의 사무라이, 사이고는 며칠 동안 숨어 지낸 동굴에서 할복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양측에서 1만 2천 명의 사망자를 낸 세이난 전쟁을 끝으로 사무라이는 역사 속으로 영영 사라집니다. 그러나 정부에 반기를 든 반역자인 사이고 다카모리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랑은 유별나 보일 정도로 특별합니다. 그가 사무라이 정신의 상징이자 근대 일본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지요. (정한론을 주장한 만큼 한국에서의 그에 대한 평가는 냉랭할 수밖에 없겠습니다마는.)
사쓰마(가고시마) 곳곳에 자취를 남긴 사이고 다카모리. 가고시마 역사문화거리에 세워진 그의 동상과 비극적인 자살 동굴은 인기 관광지이지요.
사이고 다카모리와 함께 오쿠보 도시미치(1830~1878), 기도 다카요시(1833~1877)를 '메이지 유신 3 걸'이라 부릅니다. 조슈 번 출신인 기도 다카요시를 제외하고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는 죽마고우이자 사쓰마 출신입니다. 사쓰마의 자랑이기도 하지요. 남규슈 사쓰마 위치를 한번 볼까요?
일본의 최남단, 우리로 치면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 정도 되겠습니다. 270여 개 번 중 일본 중심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변방 중의 변방, 사쓰마 번 출신들이 일본의 근대사를 뒤집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사쓰마의 무엇이 이러한 인재들을 키워냈을까요? 그 답을 찾아 사쓰마(가고시마)로의 여행을 시작하려 합니다.
메이지유신의 주역은 일본 서남쪽 변방 중의 변방, 사쓰마와 조슈 번의 하급 사무라이들이었습니다.
오늘 글은 남규슈 사쓰마(가고시마)로의 여행을 위한 사전 오리엔테이션이라 볼 수 있겠네요. 지역의 인물과 풍토를 아는 것이 답사 여행의 시작이니까요. 재미와 열심을 담아 발로 뛰고 글로 옮길게요. 함께해 주실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