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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마 Nov 15. 2022

야요이 문명의 현장, 요시노가리에 가다

규슈에 새겨진 한국사 7

ttps://brunch.co.kr/@storybarista/35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요시노가리(吉野ヶ里)는 ‘좋은 들판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마을 이름이 무색하지 않습니다. 멀리 산을 배경으로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들판 옆으로 다데가와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날씨도 따뜻해서 지금까지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풍광의 농촌 마을입니다.


한해 70만 명이 찾는 청동기 마을로 거듭난 규슈 사가현 간자키군의 요시노가리입니다.


역사공원센터를 통과해 요시노가리 유적 안으로 들어서면 대문처럼 도리이(鳥居, 일본에서 신성한 곳이 시작됨을 알리는 관문)가 우뚝 서 있습니다. 나무 기둥 위에 새 조각을 올려놓은 모습이 우리네 시골 마을 입구에 세워진 솟대와 닮았습니다. 예로부터 새는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자의 상징이었습니다. 


도리이 양 옆으로는 외부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둘러 판 도랑인 해자와 끝이 뾰족한 나무 말뚝을 촘촘히 세운 울타리가 있습니다. 요시노가리를 비롯한 북규슈는 일본에서 야요이인에 의해 논농사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입니다. 해자와 목책은 벼농사를 시작하면서 생겨난 잉여 생산물을 지키기 위한 방어물로, 요시노가리보다 앞선 B.C 850 ~ 400년에 형성된 우리나라 청동기 대표 유적인 충남 부여 송국리 유적에도 그 흔적이 뚜렷합니다.       


해자와 날카로운 방어용 말뚝이 유적지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도리이에 앉은 나무로 만든 새가 관람객을 맞고 있군요~ 도리이를 통과하면 본격적인 탐방이 시작됩니다.


이곳을 지나면 내곽(內廓)이라 불리는 또 다른 울타리와 해자로 둘러쳐진 특별한 구역이 나타납니다. 남쪽과 북쪽에 하나씩 있어 남내곽, 북내곽이라 불립니다. 남내곽에는 왕과 그의 가족들이 살던 움집과 망루가 들어서 있습니다. 야요이인의 살림집은 대부분 반지하 움집입니다. 움집의 바닥 평면은 둥근 모양이나 네모 모양이지요. 둥근 모양의 경우 가운데에 타원형의 얕은 구덩이가 있고 그 양쪽에 1개씩의 기둥이 세워지는데 이는 우리나라 송국리형 움집과 같습니다. 양쪽 모두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네모 모양 바닥으로 바뀌어갑니다. 공간을 넓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겠지요.     


남내곽에 있는 움집과 망루입니다.
남내곽에 있는 '왕의 집'입니다. '왕의 집'(궁궐?)을 복원해 놓은 것이 어쩐지 좀 작위적이란 느낌이 드는군요.^^;  
요시노가리(왼쪽)와 송국리(오른쪽)의 둥근 움집터는 가운데 타원형으로 얕은 구덩이를 파고 양쪽에 기둥을 세운 같은 형태입니다.   


북내곽은 당시 지배층이 모여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회의를 하거나 제사의식을 행하던 특별한 공간입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인 주제전(主祭展)과 재당(齋堂), 망루 등이 있습니다.  


북내곽의 주제전(主祭展)에서는 지배층이 모여 마을의 공동 사안을 결정하는 회의를 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실감을 위해 인형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북내곽의 북서쪽으로 이동하면 대형 항아리가 두 줄로 묻혀 있는 독무덤 열(甕棺墓列)이 나타납니다. 독무덤이 주욱 늘어서 있는 모습에 놀랍니다. 독무덤은 흙으로 구워 만든 항아리에 시신을 넣어 매장하는 장례 방식으로 요시노가리 유적에서 3천 기 이상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동기시대 이래 초기 철기시대까지 남부지방에서 널리 이용되었던 장례 문화입니다. 송국리에서도 독무덤 여러 기가 발견되었고, 특히 영산강 유역의 마한 지역에서는 B.C 3C ~ 기원 전후에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해, 3 ~ 5C 경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대형 독(옹관)도 대거 나타납니다.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독무덤입니다(왼쪽). 목이 없는 전사의 인골이 담긴 독무덤(오른쪽)이 인상적이군요. 전쟁이 시작된 모양입니다.

그런데 전시되어 있는 독무덤 옹관의 상태가 매우 말끔합니다. 요시노가리 유적은 발굴된 그 장소에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를 복원하여 전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복원, 정비 기술이 대단한 것은 인정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정작 일본 내에서는 최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유적에 지나치게 손을 대는 바람에 마치 놀이공원 같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상상은 배제하고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최근의 고고학 트렌드이기에 그렇습니다.    


요시노가리 유물전시관의 옹관(왼쪽)과 송국리 옹관(국립 부여박물관 소장, 오른쪽)은 아가리가 살짝 벌어지는 매우 닮은 모습입니다.
영산강 유역에서 대거 쏟아지는 대형 옹관들은 대체로 3~5C 경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국립 나주박물관 소장)


토기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요? 송국리에서는 토기를 구워 그릇으로 사용하고, 좀 더 큰 것은 옹관으로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송국리형 토기’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요, 토기의 아가리는 바깥쪽으로 살짝 벌어져 있고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좁아져, 납작 바닥에 좁은 굽을 가진 민무늬토기입니다. 볼록한 배의 곡선은 마치 새의 알처럼 생겼습니다. 요시노가리의 토기는 형태가 이러한 송국리 토기와 매우 흡사합니다.  


요시노가리 토기(왼쪽)와 송국리 토기(국립 부여박물관 소장, 오른쪽)입니다. 송국리형 토기는 한반도 남부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을 뿐만 아니라 일본 규슈까지 전해집니다.

    

요시노가리 유적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북분구묘(北墳丘墓)입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언덕에 서로 다른 종류의 흙을 겹겹이 쌓고 다져 만든 하나의 분구에 14기의 옹관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옹관들 안에서 한반도형 세형동검이 8개나 발견되었습니다. 또 한반도 초기 철기시대 유리와 동일한 납-바리움계의 유리대롱옥이 함께 출토된 옹관도 있습니다. 


한반도형 세형동검은 검몸의 폭이 좁고 끝이 뾰족하며 자루를 따로 만들어 결합하는 직선적인 동검으로 B.C 4C 충청도 지역에서 처음 나타나는 한반도 고유의 청동기입니다. 이러한 한반도형 세형동검과 유리대롱옥은 당시 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위세품으로써 이 무덤의 주인은 지배세력이었을 것이고, 그들은 한반도 도래인이거나 후손 혹은 최소한 한반도로부터 위세품을 수입한 세력이었음이 드러납니다. 


거대한 북분구묘의 외관입니다. 오른쪽에 입구가 보입니다.
북분구묘의 내부 전경(왼쪽)과 한국형 동검(세형동검), 유리대롱옥이 출토된 북분구묘의 옹관입니다(오른쪽).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요시노가리에서 출토된 한국형 동검(세형동검, 왼쪽)과 송국리에서 발견된 세형동검(오른쪽)입니다. 성분과 형태가 동일합니다.
요시노가리 북분구묘(왼쪽)와 송국리(오른쪽)에서 출토된 같은 성분의 유리대롱옥 목걸이입니다.

 

이외에도 요시노가리 유물 전시관에는 반달돌칼, 돌낫, 홈자귀, 자귀, 끌 등 한반도계 석기들과 잔무늬 거울, 청동방울, 덧띠토기, 검은 간토기 등 한반도 고유의 유물이 셀 수 없이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요시노가리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하나같이 한반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들입니다. 심지어 이곳에서 출토되는 야요이인의 유골을 살펴보면 조몬인 남자의 평균 신장이 150cm인 것에 비해 10cm정도 더 큽니다. 얼굴 모양도 깊이 팬 조몬인과는 달리 길고 기복이 적은 평면적인 얼굴을 하고 있지요.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이제 유물이 말해주는 진실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됩니다. 요시노가리 유적은 일본의 야요이 문명의 시작과 끝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반도 도래인의 벼농사와 청동기 문명이 전수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증언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일본의 길고도 긴 신석기 시대를 끝내고 문명의 서광을 비춰준 한반도 도래인은 대체 어디에서 간 사람들일까요? 그들은 왜 고향을 등지고 바다를 건넜을까요?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부여 송국리 유적과 영산강 주변 독무덤을 둘러보고 저만의 북규슈 답사 루트도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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