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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란도나츠 Sep 25. 2024

위 사진에서 귀여운 점을 찾으시오

고양이 팔불출


정답을 찾았는가? 심정지 세계에 온 걸 축하한다. (의료인들이 이 문장을 싫어하겠다.)


그젠가 침실에 찾으러 들어갔는데, 돌돌 말린 이불속에 뭔가 거먼 게 튀어나와 있었다. 이불속이 더웠는지 뒷발 두 개만 이불속으로 내놓은 거다. (고양이는 따뜻한 곳을 좋아하고, 강아지들처럼 발바닥으로 체온조절도 된다고 알고 있다.) 아니, 이렇게 귀엽게 일인가. 나는 홀린 허둥대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찾았다. 빨리빨리, 느터진 나를 속으로 채근하며 덜덜 떨리는 손을 붙잡아가며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셔터 소리가 번 났더니 소리에 깼는지(귀찮아서 나오지는 않는다.) 조마난 발가락 네 개를 사방으로 뻗었다. 우리 고양이는 무려 3초나 발가락을 뻗어줬다. 하지만, 사진은 없다. 그래도 사진이 안 나오는 검은 고양이의 발가락 젤리를 찍어보겠다고 흥분해 초점을 맞추다가 셔터를 제때 누른 내가 한심할 뿐이다.


고양이를 키우다 보면 이번처럼 심장이 멎는 듯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주로 너무 귀여울 때다.


고양이가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 박치기가 있다. 고양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러울 행동이지만, 머리를 다리나 아니면 사람 얼굴께로 가져와서 쿵, 하고 살짝 박치기를 하는 게 그들의 애정표현이다. 저들끼리도 하는 행동인데, 온몸을 비비고 가면서 자신의 냄새를 묻히는 거라고 한다. 얼굴 쪽에 자신의 냄새가 나는 주머니 같은 게 몰려 있어서, 이 사람에게 자신의 체취를 가장 강하게 묻히기 위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셈이다.) 박치기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보통 부들부들한 털이 덮인 얼굴이 쿵, 하고 내 볼에 박치기하는 걸 느끼며 심장이 아픈 걸 느낀다. 세게 부딪혀봤자 하찮은 고양이의 힘으로 하는 거라, 부딪힌 곳이 아프지는 않다. 이것도 중독이라 외려 내가 박치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고양이는 아플 수 있다.)


이불 안에 들어가서 자는 것도 내 심정지 버튼이다. 이불을 잘 펴놓고 퇴근해 보면, 꼭 이불 한가운데가 불룩해져 있다. 그러면 그 위를 이불과 함께 안아주면 '냐-'하고 소리를 낸다. 동그랗게 말아서 자고 있는 부들부들한 고양이 몸이 한 품에 안겨 극락을 맛볼 수 있다. (고양이 입장에서 사실 이건 위험한 행동인데, 얼마 전엔 커튼을 걷으려고 조심조심 이불 위를 걷던 내 발에 밟혔다. 세게 밟은 건 아니라서 고양이가 다치진 않았고, 나도 사정사정을 해서 달래 놓기는 했는데, 또 밟힐까 봐 그랬는지 며칠간 이불 안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 외에도 공부라도 할라치거나, 책이라도 읽으려고 하면 어디선가 나타나 기가 막히게 훼방을 놓는다. 남편과 아직 썸 타는 사이였을 때 고양이를 맡긴 적이 있는데, 아마 6개월짜리 교육을 받으러 가야 해서 예습을 좀 해야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책만 펴면 고양이가 (그때는 4개월쯤으로 지금보다 더 조랭이떡 같이 생겼다.) 책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는 통에 한 글자도 제대로 못 보고 고양이만 일주일 쓰다듬다가 교육에 들어갔다고 했다. 남편은 구전설화처럼 그때 얘기를 아직도 반복하면서 아마 고양이만 아니었다면 공부를 아주 많이 한 뒤에 들어갔고, 성적도 더 잘 받을 수 있었을 거라고 호언장담하지만 나는 크게 귀담아듣지 않았다. 어차피 버렸을 시간, 그 시간에 고양이나 잘 만졌으면 된 거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들의 이 못된 버릇은 만국 공통인 것 같은데 다행히 책이나 종이를 찢지는 않아서 귀여운 방해꾼 수준에서 이해받는 듯하다. 아참, 공부하는 책 말고 다른 책으로 어그로를 끈 뒤에, 내가 볼 책은 따로 펴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는 분이 있을 거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한두 번쯤 시도해 봤는데 고양이는 펴둔 책 가운데 내가 읽으려는 책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아무래도 글자를 읽을 줄 아는 것 같다. (실제로 집에 사는 고양이들은 시계를 볼 줄 안다고 한다. 그래서 규칙적으로 움직인다고도 한다. 주인이 출근하는 시간, 퇴근하는 시간, 밥시간 이런 거.)


또 어느샌가 보면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데, 이 모습도 귀여운 포인트로 소개한다. 아래 사진처럼 냉장고 위는 물론이고 평평한 침대라면, 배게 위라도 올라가 양팔을 쭉 뻗고 잠을 잔다. 방문 위에 올라간 적도 있다. 손잡이 달린 여닫이 문 위를 말하는 거다. 한 번 문 위에 서 있는 걸 보고 대체 어떻게 올라가는 건가 궁금했는데, 문을 활짝 열어둔 방향에 낮은 책장을 밟고 뛰는 거였다. 보통 가만 두면 한 시간도 넘게 홀로 흔들다리 놀이를 한다. 아찔한 높이를 즐기다가 밥 먹을 때가 되면 내려온다. 고양이는 스릴을 즐기고, 나는 고양이의 기행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거나 사진처럼 발바닥을 내밀고 잘 때면, 발바닥에 귀엽게 박힌 초코 젤리를 구경하면 되니까 윈윈인 셈이다.

"Do you ever look at someone and wonder, what's goining on inside their head?"

누군가를 보고,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든 건지 궁금했던 적이 있나요?


영어라곤 뻑, 쒯 밖에 하지 않는 내 남편이 (뻥튀기를 조금 해서) 백만 번은 읊조려댄 한 영화 대사다. 무려 10년 전에 픽사에서 만든 대작 <인사이드 아웃> 첫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에서는 기쁨이, 슬픔이, 까칠이, 소심이, 버럭이라는 다섯 개의 감정 요정이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살고 있다는 전제를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등장시킨 것이지만, 고양이의 기행(귀행이라고 적고 싶다. 귀여운 행동)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을 딱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이거 만큼 들어맞는 문장을 아직 보지 못했다. 


이 대사를 이 영화 팬도 아닌 내가 어째서 외우고 있느냐면, 다른 의미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엔가 이 대사에 흥겨운 음악을 붙여 깔고,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의 이해 못 할 행동들을 찍은 영상을 여럿 잘라 붙여 만든 웃긴 영상이 인스타그램에서 큰 히트를 쳤다. 수천만 명이 시청했고, 여러 패러디 영상도 줄이었던 것으로 안다. 인스타그램의 웃긴 짤들에 중독된 내 남편이 이걸 내게도 백 번쯤 내게 보여줘서 이젠 눈감고도 영상이 그려진다. 몇 초쯤 어떤 영상이 나오는 지도 알 정도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원작자가 올린 영상을 첨부한다. 한 번 보기가 어렵지, 여러 번 보는 건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https://www.instagram.com/reel/Cg7JlNcAQO7/?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꽤나 조회수도 잘 나온다고 해서, 우리 고양이를 패러디 영상에 출연시켜 볼까 했지만 영상을 만들어보니 딱히 웃기지도 않아서 올리진 않았다.


맞다, 나는 이 정도로 고양이 팔불출이다. 평생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가 고양이를 먼저 키우게 된 사람으로서 고양이에게 마음이 먼저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니, 그런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공부를 방해해도 예쁘고, 잠만 자도 예쁘고, 성을 내도 예쁘고, 짜증을 내도 예쁘다. 옷장에서 잠자는 걸 발견하면 심장이 아프고, 선반 위에 올라가 있는 걸 보면 물떡 같아서 귀엽다. 맨날 끌어안고 자고, 없으면 찾고, 집에 오면 가장 먼저 부르고 집에서 나갈 때 작별 인사를 한다. (요새는 고양이가 강아지에게 밀리다 못해 침실에서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보통 침대 위에나 옷장 속에서 눈만 똥그랗게 뜨고 앉아있는데, 나는 그걸 꼭 불러댄다. 그럼 또 자다 깬 눈을 비비적대며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일 년 전에야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고양이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해준 적이 없다는 거다. 고양이가 사람말을 알아듣긴 하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고양이는 내가 이름을 부르면 '냐-'하고 대답하고 밥 먹었어? 오늘 기분이 좋아? 잘 놀고 있었어? 오빠가 괴롭혔어? 따위의 질문을 하면 꼬박꼬박 '냐-'하고 대답해 준다.(남편은 동물에게 말 거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고 했다.) 어쨌든 내가 하는 말을 80%쯤 알아듣는다고 생각한다. 혼자 너무 충격을 받아서 가슴이 아팠다. 그날부터 생각날 때마다 얼굴을 비비적대며 "언니가 많이 사랑해" 해주고 있다. 표현 않고 지나간 그간의 세월이 너무 아까울 지경이다. 이 글을 남편이 여기까지 읽었다면 십중팔구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을 거다.


"고양이가 어느 날 딱 한마디만 사람 말을 할 수 있게 됐어. 그런데 '언니, 왜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 안 했어?'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이렇게 말을 하면 꼭 꿀밤을 때려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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