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회사를 옮기고 얼마 안 돼서 부장 한 분이 회사 앞의 맛집에 가보자고 꼬드겨 한 세 명이 모였다. 소고기 구이로 유명한 곳이다. 소고기를 좋아하는 데다 여기가 일 인분에 5만 원은 한다고 하는데, 이게 웬 떡이람. (부장과의 식사임에도) 신나서 가겠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돼 삼삼오오 모여 다들 사무실을 떠나고 셋이서 느지막하게 사무실을 떴다. 사무실에서 3분 거리. 구내식당만큼이나가까웠다. 룸이 예약돼 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부실했던) 밑반찬이 이미 깔려 있었다. 이미 뭘 시켰다고 했다. 서비스 좋고. 앞에 놓인 샐러드나 집어 먹고 있는데, 웬 탕이 하나 도착했다. 샤부샤부인가,탕이 펄펄 끓는 게 아니고 저온으로 끓었다. 소고기는 팔팔 끓는 데에 넣는 게 제맛 아닌가? 그런 생각을 속으로 삼키고 있는데 소도둑 몸집을 가진 거대한 사장님이 갑자기 룸 안으로 들어왔다. 본인 팔뚝보다 더 큰 문어 한마리를 잡아들고. 대체 그 녀석은 왜 데려오셨나요? 휘둥그레눈이 떠졌다. 사장님은 살아있는 걸 봤으니 넣는다며 말릴 새도 없이 낙지를 눈앞에서탕에 집어넣었다.아니, 집어넣었다고 하는 표현은 옳지 못하다. 문어 다리의 절반도 잠기지 않았으니까. 문어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죽여서 오시면 안 될까요? 싱싱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손님들이 이런 걸 요청한단다. 나 외엔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토할 것 같았다. 그날 문어는 15분 넘게 고통당하다 사망했다. 나는 식사 시간 내내 덜덜 떨었다. 국물 한 입도 떠먹지 않았다. 밥도 반 그릇도 채 못 먹었다.
그 한 달 전에는 조개구이 집에서 타사 선후배와 저녁이 있었다. 조개구이가 메뉴인 줄 알았더라면 나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살아있는 죄 없는 생물을 뜨거운 불판 위에 올려놓고 뜨거워서 몸부림치고 결국에는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끓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고문이고 큰 심적 고통이었다. 나는 이거 못 먹어. 그랬더니 후배가 저는 할 수 있으니까 제가 할게요, 하며 조개를 척척 집어 올렸다. 그나마 내가 이날 늦게 도착해서 그 모습을 많이 못 봤고, 내가 갈 때쯤에는 이 집 조개가 덜 신선해서 이미 죽은 놈들이 많았던 게 다행이다.
지난해결혼 기념으로 남쪽 어드메를 여행하다 조개구이집을 갔을 때는 남편과 결국 싸움이 난 적도 있다. 사실은 내가 여기가 맛집이라며 가자 해놓고 이런 상황은 생각 못한 게 컸다. 아, 조개구이는 원래 살아있는 조개를 굽는 거였지. 이날 나는 손을 덜덜 떨면서 조개를 불판에 올리지도 못했다. 못 먹겠다며 젓가락을 내려놓자 도대체 이럴 거면 왜 조개구이를 먹으러 왔느냐며, 큰돈을주고도 먹는 내내 싸움이 났다.
그보다 전 해에는 강원도 동해안의 한 수산시장에 회를 뜨러 갔다. 지느러미 쪽을 찔러 죽인 뒤에 회를 뜨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한 할머님은 물고기를 세로로 세우고 으드득, 소리가 나게 목을 잘랐다. 뼈가 단단해 잘 잘리지 않았다. 1/3 쯤 뎅강 잘린 머리가 보였다. 물고기는 살아서 버둥거렸다. 앞에서 보는 모두가 이건 좀 너무 잔인하다고 수군거렸다. 할머니는 들은 체도 않고, 서너 번에 걸쳐서 물고기를 잔인하게 참수시키고 말았다. 몇 달 뒤엔가 동물단체에서 이런 모습을 고발하는 것도 봤다. 바뀌었기를 바란다.
내가 비위가 약한 건 아니다. 나는 작년도 수해 때 양계장이 폭우에 침수돼 닭들이 이미 죽었거나 다 죽어가는 현장에 간 적도 있다. 닭 죽은 냄새가 가장 지독하다. 세네 시간 동안 그 냄새를 맡고도 나는 괜찮았다. 심지어 똥이 불어나 가득 찬 계사 안에서 발이 빠져 30분 넘게 서 있어야 했어도 괜찮았다. (이날 감정이 북받쳐 닭 수만 마리가 '목숨을 잃었다'라고 했다가 '운명하셨다'라거나 '별세하셨다'라고 하지 그랬냐는 놀림을 받았다.)하지만 더 지독한 건 아직 살아있는데 죽은 친구들의 사체와 함께 사체 취급을 받는 닭들의 처지다. 닭은 물에 취약하다고 했다. 내가 키우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직 힘이 남아 있어서 비를 맞으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닭에게 우산을 씌워서 그나마 잠시 비라도 안 맞게 해주는 것뿐이었다. 아마, 곧 죽었을 테지만. 사체 밑에 깔려 꿈틀대던 아직 살아있던 닭들은 그대로 포대기에 담겨 처리 시설로 옮겨졌다.
어제 아침, 동물단체 케어에서 올린 한 게시물을 봤다. 서울에 있는 한 해산물 전문점이라는 것 같았다. 랍스터의 허리를 손으로 분지르고 아랫부분은 회로 뜨고, 윗부분은 살아있는 채로 다리에 꽃을 꽂아 부글부글 끓는 탕 위에 올린다는 거다. 랍스터는 살아있는 채로 허리부터 끓는 물에 익어 올라오다가 꽃을 든 채로 춤추듯 움직이다가 결국 죽는다고 했다. 그 식당에 온 사람들은 랍스터가 몸부림치는 것을 영상으로 찍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전날엔 살아있는 개를 매달아 불태워 잡아먹으려다 탈출해 도망친 개의 소식이 올라왔다. 구조를 하려 했는데, 온몸에 화상을 입고 도망 다니가 죽었다고 했다. 한 생명체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이건 마치 유럽에서 중세시대에 마녀 화형식을 구경하는 것, 참수된 시신을 구경했다는 IS와 뭐가 다른가.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잔혹하게 죽는 것만은 겨우 면했다.
이런 일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동물의 왕국이며 다큐멘터리며 무엇을 보아도 다른 동물에게 고통을 주며 죽이고 잡아먹는 걸 이렇게 즐기는 동물은 인간 외에는 없다. 목을 물어 죽이는 그 본능에 따르는 육식 동물들도 필요 이상으로 사냥을 하지는 않는다. 식탁 위에서만 생명을 봐서 그런가, SNS로 인기를 얻기 위해 별의별 생각을 다하다가 선을 넘어버린 걸까, 생명체가 아니라 '먹을 것'으로만 보는 이 시선들이 무섭다. 점점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다 그저 태어나서 사는 것들이다.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