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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숙 Dec 05. 2023

우리들의 집

우리들의 집 

                                           집은 한 사람이 시작되는 곳이다. -T.S엘리엇       


 

계절마다 물빛이 변하는 걸 본다

묘지를 순례하며 또 시인의 부고를 들으며

어느 저녁이든 해안 끝자락에는 늦게까지 서성이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돌아와서는 갈피마다 장미꽃잎과 구름이 납작하게 말라있거나 

오래되었어도 여전히 칼날을 숨긴 책을 읽는다

어두운 회랑 끝자락에 서서 돌아보는 사람들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우리를 돌려세운다   

우리는 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서로의 목소리를 더듬는다 

속삭임처럼 비명처럼       

거짓말이야말로 진실이지, 펼쳐보려 하지만 

어느새 돌멩이가 되어 버리고

펼칠 수가 없는 돌멩이는 나중에 온 너를 아프게 한다 

우리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소실점 속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거면 어떡하지?

얼굴과 문장의 잔해들이 엉기면

비로소 기억이 된다

어느 날은 완전히 텅 비어 보통의 오후로 대체된다

그러므로 해변으로 쓸려와 반쯤 모래에 파묻힌 개의 털빛은 검고

방금 누군가 나에 대해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아무도 마음먹지 않는다 

다른 집을 원하지도 않는다

내일이면 다시 죽어버릴 아이를 한 명씩 안고 

곧 범람할 파도를 기다린다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을 테고 멈추지 않을 테지만

그림자들이 먼저 눕고 먼저 젖는다

뒤에 남겨질 것들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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