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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e

by 김지숙

tale


아이는 자주 길을 잃는다. 부모는 여러 번 경찰서에서 아이를 찾는다 제 얼굴만 한 사과를 먹으며 의자에 앉아 다리를 까딱거리며 기다린다. 아이는 울지 않는다. 엄마가 잘 울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엉덩이를 맞으면서도 아이는 기대한다. 다음엔 더 멀리! 부모가 늘 말하던 망태 할아범을 정말 만날지도 모른다. 뜨겁고 부드러운 망태 할아범의 흰 머리카락을 상상하며 아이는 세계에서 사라지는 법을 배운다. 얼어서 죽은 새 희고 작은 돌멩이 흔들면 미친 듯 눈만 깜박거리는 인형은 모두 거기에서만 말한다.


검푸른 파도 위에서 아이는 까마득해진 해안을 본다. 부모가 발을 동동 구른다. 선생님, 얘는 가는귀먹었으니 앞자리에 앉혀주세요 엄마의 부탁으로 아이는 늘 맨 앞자리에 앉는다. 고개를 들지 않은 덕분에 다른 아이들도 선생님도 아이의 얼굴을 잘 모른다. 망태 할아범을 따라가는 발소리들이 복도 끝까지 이어진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당나귀 개 고양이 그리고 닭과 함께 브레멘으로 가 음악가가 되어야지 결심한다. 충분히 혼자였던 아이가 충분히 멀리까지 간다.


당나귀처럼 긴 속눈썹을 가진 아이를 만난다. 물에 잠긴 발목을 가진 아이에게 입맞춤하는 법도 배운다. 딸기 맛이 난다고 기억하기로 한다. 그러면 왠지 모를 슬픔이 짓이겨진 딸기 즙처럼 배어났지만 그저 눈 맞추며 이야기 나누는 게 좋아 아이는 자꾸만 이야기를 지어낸다. 주인공의 눈물과 고통은 언제나 겨울 눈꽃같이 아름다워서 길 잃어도 괜찮다 생각한다. 눈꽃에 눈멀어버리면 젖은 그림자 속에서 어둑어둑 사라지는 세계를 배웅한다. 부족한 건 망태 할아범이 다 가지고 있으니 걱정할 건 없다.

아이는 더 멀리 가보고 싶고 함께라면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다. 물에 잠긴 발목을 가진 아이는 돌아가는 길이라고 따뜻한 나무집을 짓고 발목을 말리고 싶다 한다. 당나귀처럼 긴 속눈썹을 가진 그 아름다운 눈을 아무리 바라보아도 아이는 그 집이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혼자 남았던 놀이터의 어스름만 켜켜이 쌓인다. 충분히 혼자였던 아이는 충분히 혼자 멀리까지 간다.


아이는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풀숲 바위에 묻는다. 풀숲 바위 뿌리의 성실과 고요를 믿기로 한다. 이건 어떤 예감 같은 거야 언젠가 나는 여기로 다시 오게 될 거야 그때 이 풀숲 바위 앞에서 오래 다정해질 거야 안녕, 아이는 걷기 시작한다. 어둠을 더듬으며 사라지는 세계가 남기는 반짝이는 이야기 부스러기를 주워 담으며, 망태 할아범이 마중 나와 있을 테니 걱정할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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