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회사, 흐름, 프리지어
5월 2주차 글쓰기
5/6(월)
요즘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 더 자주 돌아다닌다. 특히 우산을 쓰고 빗소리를 들으며 정처 없이 떠도는 걸 좋아한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 속으로 우산을 펼치고 입장한다. 가느다란 철사 사이에 얹혀진 천 조각은 비로부터 나를 막아준다. 떨어지는 빗소리는 우산 안쪽에서 더욱 크게 들려와 마치 비 오는 날 텐트 속에 있는 것 같은 아늑한 느낌이다. 예전에 ‘우중 캠핑’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비 오는 날 무슨 캠핑을 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텐트 안은 쉴 새 없이 빗소리가 울려 퍼지고, 빗물에 젖은 풀 내음은 은은하게 전해지고, 멍하니 비가 떨어지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 같다.
비 오는 날 길거리의 사람들은 나비가 날개를 펴듯 형형색색의 자신만의 텐트를 펼치고 돌아다닌다. 바다에서 파라솔을 쓰거나,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려면 돈을 내야 하는 각박한 세상에 무료로 자신만의 공간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그런 비 오는 날이 참 좋다.
5/8(수) 06:42 ~ 06:52
늦게 퇴근을 하고 소파에 코를 박는다. 요즘 이게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유독 나에게 너무 과도한 업무량을 요구한다.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내가 지쳐있다는 걸 어떻게 아는지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게 하나의 영상을 보여준다.
영상에서는 일본 드라마에서 나온 구절을 소개하고 있었다.
'뭘 해도 잘되지 않을 때는 그냥 신이 주신 긴 휴가라고 생각하는 거야.'
'무리해서 뛰지 말고, 조급해 하지도 말고, 너무 열심히 하지도 말고, 그냥 흐름에 몸을 맡기는 거야.'
그냥 흐름에 몸을 맡기는 거야... 흐름에 몸을 맡기는 모습을 상상하며 가만히 천장만을 바라본다.
움직이는 파도에 유영을 하듯 자신의 에너지가 아닌 다른 에너지가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는 것. 어쩌면 내게 정말 필요했던 말인 것 같다. 그리 애쓰지 않아도 될 일에 너무 애쓰며 살아가고, 주어진 일을 다 못해도 그냥 못하는 건데.. 왜 안절부절못하는 걸까.
예전에 걱정이 없었던 나는 어디 가고, 걱정만 하며 사는 나만 남을 걸까.
5/10(금)
’프리지어’라는 꽃을 받은 적이 있다. 꽃을 선물받은 건 생에 처음이라 기억에 남는다.
투박하면서 세련된 노란 꽃.
꽃을 준 사람은 꽃말이 '천진난만'이라고,
내게 어울린다며 꽃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모습은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말과 어울리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프리지어 꽃을 보고 생각나서 이 글을 썼다.)
요즘 진지하게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생각 중이다. 작년에 계획했던 퇴사 일자가 올해 6월이었고 별생각 없이 그냥 다니다 보니 어느새 그 날짜가 다가왔다. 원래 계획은 그전에 집 한 채를 더 장만해서 일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만 하는 것이었는데, 안일하게 지내다 보니 집을 알아보지 못했다. 핑계를 하자면 요즘 부동산 시장이 뒤숭숭해서 무턱대고 집을 샀다가 낭패를 볼까 걱정이 돼서 찾아보지 않은 것도 있다. 한번 시간 될 때 현시점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퇴사하면 뭘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