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 자, 7만 자, 10만 자... 60만 자, 100만 자....
장편 소설을 쓰려면 위의 숫자에 무던해져야 한다. 최소 6만 자 정도(공백 포함) 써야 단행본 1권으로 출판할 수 있는데, 사실 6만 자인 책 두께를 보면 꽤 얇다.
장르 소설의 경우 1권에 10만 자~20만 자이고, 완결은 로맨스는 2권 / 판타지, 무협은 5권 이상이라서 최종 완결 분량은 20만 자를 훌쩍 넘는다.
그래서 처음 장편 소설을 쓸 때 분량에 겁을 먹는다. '내가 10만 자 이상의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시도조차 하기 어려워한다.
분량은 왜 줄거나 늘어날까?
위의 질문에 답을 알고 있다면, 이미 분량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고 있을 것이다.
분량 조절을 [맛있다 / 지금까지 먹어 본 음식 중에 가장 맛있다]처럼 단순하게 문장 길이로 하는 건 아니다.(*문장길이는 작가의 글 스타일에 따라 달라진다.) 오히려 분량을 늘리기 위해 억지로 문장을 늘리고 불필요한 수사를 넣으면, 독자가 지루해 할 수 있다.
소설에서 분량을 조절하는 건 사건 수이다. 나는 소설 스토리를 짤 때, 사건과 장면 두 가지를 구분해서 정리한다. (*여기서 설명하는 내용은 전문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닌, 혼자 소설을 쓰면서 터득한 노하우이다.)
[사건 / 장면]
(*아래 정의는 개인적으로 소설을 쓸 때 사용하는 정의일 뿐, 전문 교육 과정에서 설명하는 용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사건 : 스토리 흐름에 변화를 주는 내용
장면 : 걸어가는 장면/사람과 대화하는 장면 등등 소설에서 가장 작은 단위.
먼저 완결 분량을 확인한다. 만약 3권 완결 분량이라면, 1권 당 몇 만자인지 확인한다. 전체 분량을 먼저 확인하는 이유는 분량에 적절한 스토리를 구성하기 위함이다.
한 번 코스 요리를 상상해보자. 코스 요리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요리를 구성한다. 메인이 나오기 전 전채요리는 메인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군침이 돌게 하는 음식이어야 한다. 군침이 돌려면 보기에 좋아야 하기에 플레이팅에 신경을 쓰고, 맛은 짜고 시고 자극적이다. 메인 이후 후식은 입가심을 위한 요리로, 입 안을 상큼하게 하거나 달달한 음식으로 기분 좋게 식사가 마무리되도록 돕는다.
그런데 코스 요리를 구성하는 요리사가 즉흥적으로 요리를 낸다고 생각해보자. 전체 구성을 고려하지 않고, 지금 당장 스테이크를 만들고 싶어서 스테이크를 주고, 갑자기 눈에 오렌지가 보여서 과일을 중간에 내놓는다. 그럼 코스 요리를 다 먹은 다음에 과연 기분이 좋을까?
과하게 많은 양을 전채요리로 주면, 배불러서 메인 요리를 못 먹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달달한 음식을 주면, 미각이 둔해져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줘도 고객은 맛없다고 느낄 것이다.
이처럼 소설을 쓸 때도 지금 당장 내가 쓰고 싶은 내용을 쓰는 게 아니라, 소설 전체를 즐길 수 있도록 조절해야 한다.
그래서 1단계는 완결 분량과 권당 분량을 확인한다.
1단계 : 전체 분량 확인
ex) 예상 완결 분량 30만 자
10만 자 / 10만 자 / 10만 자
총 3권 목표
전체 분량을 정했다면, 권당 주요 사건을 정한다.
2단계 : 주요 사건 분배
1권 : 10만 자 - 여자 A와 남자 B가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
2권 : 10만 자 - A가 원수의 딸인걸 알게 된다.
3권 : 10만 자 -갈등을 극복하고 사랑하게 된다.
권당 주요 사건을 정했다면, 이제 1권에 집중한다. 우선 분량이 10만 자이니, 사건이 10개가 필요하다고 가정하자.(*분량에 따라 필요한 사건수는 글 쓰는 스타일마다 달라진다.) 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 질문을 계속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Q. A와 B가 왜 만나지?
-> 1. 우연히 길에서 만난다.
Q. 왜 호감을 느끼지?
-> 2. 외모가 이상형이라서 서로 첫눈에 반한다.
Q. 왜 사랑에 빠지지?
->...
위의 질문에서 건질 수 있는 사건이 1개밖에 없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 첫눈에 반하는 상황이라서, [우연히 길 가다가 첫눈에 반하는 사건]이 끝이다. 둘이 번호 교환하고, 사귀기로 하면 끝인 상황. 그럼 목적인 사건 10개가 되지 않는다. 사건 10개에서 1개로 줄어서, 분량 역시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이럴 경우 사건을 일부로 늘려야 한다.
Q. A와 B가 왜 만나지?
-> 1. 우연히 길에서 만난다. 핸드폰을 떨어트린다.
-> 2. A가 핸드폰 찾아주려고 연락한다.
Q. 왜 호감을 느끼지?
-> 3. 외모가 이상형이라서 서로 첫눈에 반한다. (A가 애인이 있어서 연애까지 이어지지는 못한다)
-> 4. 업무상으로 재회한다.
-> 5. A는 어떠한 이유로 애인과 헤어진다.
-> 6. B는 헤어진 A를 위로한다.
Q. 왜 사랑에 빠지지?
-> 7. A와 B는 이야기가 잘 통하는 술친구가 된다.
-> 8. B는 집에서 결혼하라고 재촉해서, 가짜 애인이 필요하게 된다.
-> 9. A는 친구로서 B를 도와주려고, 가짜 애인 행세를 한다.
-> 10. 부모님 앞에서 가짜 애인 행세를 했지만, 둘은 진짜 사랑하게 된다.
사건을 늘어나면, 쓸 내용이 많아지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글을 간결하게 쓰거나 묘사를 잘 못 한다고 해서, 장편 소설을 못 쓸 이유가 없다. 1만 자에 사건 1개가 필요하다면 사건 10개(10만 자 기준)를 만들면 되고, 3만 자에 사건 1개가 필요하면 사건 3개(10만 기준) 정도만 만들면 된다.
주요 사건을 정리하고 원고를 쓰면, 생각보다 내용이 길어지거나 짧아지게 된다. 나는 1만 자가 나올 줄 알았는데, 막상 쓰면 1천 자로 끝날 수도 있다. 그래서 본문 쓰는 틈틈이 사건과 장면을 추가, 삭제해야 한다.
우선 장면 추가, 삭제부터 이야기해보자.
위의 주요 사건 중에 [업무상으로 재회한다]가 있다. 이 하나의 사건에는
1)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하는 장면
2) 미팅 장소에 나가는 장면
3) 상대방을 보고 아는 척하는 장면
4) 미팅하는 장면
5) 미팅 끝나고 연락처 교환하는 장면
여러 가지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만약 생각보다 내용이 너무 길어졌다면, 장면을 삭제할 수 있다. 1)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하는 장면을 없애거나, 4) 미팅하는 장면을 10줄로 서술하는 게 아니라 한 문장으로 끝낼 수도 있다.
반대로 분량이 적어서 더 늘려야 한다면, 장면을 추가할 수 있다. 미팅 장소 가기 전에 회사에서 상사와 이야기하는 장면 / 연락처 교환하고 상사와 같이 회사로 복귀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장면을 추가, 삭제로 긴 분량 조절은 힘들지만, 1만 자 정도는 조절할 수 있다.
사건 추가, 삭제로 긴 분량 조절
긴 분량은 권수에 지장을 줄 정도의 분량이다. 처음 목표는 3권이었지만, 4권으로 늘리고 싶거나 또는 2권으로 줄이고 싶을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사건 수로 분량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
분량을 자유자재로 조절하기 힘든가요?
그렇다면 글 쓰는 것보다 기존에 썼던 내 원고를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기존 원고를 보면 내가 1개의 사건을 어느 정도 분량으로 썼는지 보일 테니 말이다. 내 글 쓰는 스타일에 맞춰 사건수를 조절하면, 몇 십만 자 원고를 써도 분량에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