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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못소 Oct 16. 2018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소설

요즘 원고 두 개를 쓰고 있다. 각각 다른 장르, 다른 내용이고 내가 과거에 써 본 적 없는 내용이다. 처음 써보는 글이라, 쓰면서 꽤 재미있고 작가인 내가 봐도 흥미롭다. 그래서 소설 쓰다 보면 어느새 시곗바늘 침이 어느새 반대편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 쓰는 글은 200% 픽션이다. 내가 경험한 적 없는 내용이라, 자료 수집을 해야 했다. 두 개의 원고 중에 하나는 자료 수집을 끝내고 원고 집필에 들어갔지만, 하나는 여전히 자료 수집 중이다.


소설을 쓴 지 2년 남짓. 처음 소설 쓸 때를 떠올리면, 지금의 내가 낯설다. 처음에는 설정 없이 글을 썼고, 자료 수집도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내가 쓰기 편한 내용을 다뤘고, 그러다 보니 소설인 듯 에시이인듯한 자전적 소설을 주로 썼다. 




흔히 소설을 시작하면, 머릿속에 <내가 봤던 책>을 떠올린다. 로맨스, 판타지, SF, 문학 등 내가 재미있게 봤던 책을 머리에 그리는 것이다. 나의 경우엔 3-4권 분량의 장편 소설 + 사건 구조가 복잡한 내용이었다. 평소에 단편보다는 장편을 읽고, 단조로운 내용보다는 독자의 허를 찌르는 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책 취향이 그대로 옮겨진 것이다.


글 쓰는 방법에 대한 아무런 지식 없이, 나는 '장편소설, 사건 구조가 복잡한 것'만 생각했다. 처음부터 내 취향인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소설을 쓰려고 하니, 뭐부터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흰 종이를 보며, 아이디어를 끄적였지만, 아이디어를 소설로 옮기지 못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었다. 




몇 달을 흰 종이만 보다가, 문득 내가 너무 어려운 글만 시도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이제 옹알이가 끝난 아기가 바로 소설책을 읽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말이다. 당시 내 욕심, 내 취향을 다 내려놓고, 소설 완성에만 집중했다. 재미보다는 내가 쓸 수 있는 소설에 집중한 것이다. 주인공 설정은 '나'로 했고,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하는 고민은 '내'가 실제 했던 고민이었다. 주인공이 여행 간 장소는 실제 '내'가 갔던 곳이었다. 여기에 픽션 요소는 주인공 나이와 주변 인물 정도일까.


내 취향인 소설을 쓰려고 했을 때는 몇 달 내내 종이 한 장도 못 썼는데,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소설>을 썼을 때는 쉬지 않고 손가락을 움직여 원고를 채웠다. 어려웠던 소설이 하루아침에 쓰기 편한 글이 된 것이다.


첫 번째 소설을 쓰고, 뒤이어 쓴 책도 모두 내 취향은 아니었다. 당시 내가 쓸 수 있는 소설이었고, 그 범위를 점차 넓혀갔다. 



자전적 소설 > 써보지 않은 장르 > 써 본 적 없는 긴 분량 > 취재하면서 쓴 소설...



나에게 소설을 쓴 다는 건 연습의 연속이었다. "이번에는 이런 걸 써볼까?"하며, 내 역량을 조금씩 늘렸다. 그래서 현재의 내가 되었다. 현재의 나는 10만 자 원고가 두렵지 않고, 복잡한 사건 구조를 짜고, 어떠한 원고든 완결까지 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2년 전 나처럼 종이만 보면 멍해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2년 전 나처럼 재미 보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소설>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걸 권한다. 처음에는 사소한 이야기지만,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소설>의 범위는 자연스럽게 거대해지니까 말이다.





당신은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소설은 어떤 내용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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