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란 가면을 쓰고...
나는 글 못 쓰는 소설가이지만,
처음부터 소설을 쓰려고 한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에세이나 자기계발 서적을 쓰려고 시도했었다.
이 시도는 시도에만 그쳤었다.
그때에도 나는 글 못 쓰는 사람이었으니,
뻔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에세이 쓰는 것을 실패한 나는
소설로 눈을 돌렸다.
왜냐하면 에세이를 못 썼던 가장 큰 이유가
"부끄러움"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삶을 드러낸다는 부끄러움
나의 잘못, 치부를 공개한다는 부끄러움
내 생각을 노골적으로 말하는 부끄러움
모든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소설로 눈을 돌렸다.
소설이 주는 매력적인 허구라는 가면은
모든 부끄러움을 없애주는 탈출구였다.
"이건 소설입니다. 모두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허구라는 달디 단 가면을 쓰고,
소설에 나를 쓰기 시작했다.
당당하게 말하기 부끄러운 나의 과거
차마 내뱉지 못한 찌질한 나의 감정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짜 나의 생각
허구라는 가면을 쓰고
소설 속에 나를 쓰기 시작하자,
나만의 대나무 숲을 만난 기분이었다.
가면을 벗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에는
말 못 해서 생긴 답답함,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
누구에게도 보이지 못했던 찌질한
나를 공개했다는 사실에.
참 후련하고, 머리가 개운해진다.
지금은 에세이를 못 써서
대신에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일부로 모든 것을 소설로 쓰고 싶다.
허구라는 가면을 쓰면,
에세이에서는 끝까지 밝히기를 고민한 것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소설을 쓴다.
그 속에는 항상 내가 있다.
하지만 나는 말한다.
"이건 소설입니다. 모두 꾸며낸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