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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못소 Jun 29. 2018

그.물.설. 3 에어컨

에피소드 3: 에어컨 (매주 토요일 연재)


그.물.설 (그 물건의 진짜 설명서)  

에피소드 3. 에어컨  



[행정안전부] 안전안내, 오늘 11시 00분 폭염주의보, 낮 동안 야외활동 자제 및 물놀이 안전등에 유의바랍니다. 


귀를 때리는 경보음에 문자를 확인하니 ‘폭염주의보 경고 문자’가 와있었다. 국가가 경고할 정도로 뜨거운 날이지만, 가난한 자취생 집에서 에어컨은 사치였다. 원룸에서 산 지 햇수로 5년이지만 에어컨을 켜본 적은 없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꺼내 물 적신 걸레로 먼지 쌓인 팬을 닦았다. 선풍기 청소하느라 온 몸에서 땀이 흘렀다. 미세먼지가 심해서 창문을 열지 못한 채로 청소했더니, 찜질방에 있는 것처럼 땀이 났다. 


벽에 붙은 에어컨을 두고 선풍기를 켰다. 혼자 사는 방이라 선풍기로도 충분히 시원했다. 침대에 누워 선풍기 바람을 맞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으악, 이게 뭐야! 

-우와 내가 날고 있어. 

-내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 어떡해 좀 해봐! 


선풍기 바람에 날릴 정도로 가볍지 않아서, 선풍기 바람이 위협적인 줄 몰랐다. 침대와 거실을 돌아다니며 놀던 그림들은 태풍 맞은 것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그림들은 바람을 꺼달라고 아우성쳤지만, 종이가 날아다니는 풍경이 웃겨서 좀 더 구경했다. 계속 부는 바람에 익숙해졌는지 어떤 그림은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파도 타는 서퍼처럼 누가 더 높이 나는지 대결까지 하고 있었다.  


-응? 이거 나랑 똑같네? 


가장 높이 난 그림은 벽걸이 에어컨 위까지 올라갔다. 위에 올라간 그림을 보니 [에어컨]이었다. 에어컨을 그린지도 몰랐는데, 예전에 그린 적이 있었나 보다.  



-여기 왜 이렇게 더러워! 여기 청소 좀 해. 


위에서 구시렁대는 소리에 에어컨 위에 모습이 상상되었다. 에어컨을 쓰지 않으니 청소도 하지 않았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몇 년 동안 쌓인 먼지가 뽀얗게 있을 것 같았다.  


-이 송, 이 지저분한 인간. 빨리 청소해!  


[에어컨]은 청소할 때까지 내려오지 않을 듯, 위에서 계속 소리쳤다. 무시하고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만끽하고 싶지만, 히스테릭하게 외치는 하이톤은 듣기 싫어도 귀에 꽂혔다. 


“그거 안 쓰는 거라, 청소 안 하는 거야.”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 [에어컨]을 회유하려고 했다. 그런데 [에어컨]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 하지 말라며, 더 시끄럽게 청소하라고 외쳤다. 


“그만 좀 말해! 아우, 종이인데 목청은 왜 이렇게 좋은 거야.” 


시끄럽게 소리치는 소리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 송은 일어나기 싫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에어컨을 청소하려고 했다. 




청소하려고 최대한 올라섰지만, 키 작은 이 송에게 에어컨은 너무 먼 당신이었다. 순간 키가 작으면 청소도 못하는 사실에 서글펐지만, 청소 못하는 명확한 이유가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손이 안 닿아서 청소 못해.” 


에어컨 위에서 이 송을 보던 [에어컨]은 고민에 빠졌다. [에어컨]은 자기와 똑같은 에어컨이 더러운 걸 보자, 자기 몸이 더러운 기분이었다. 더러운 걸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에어컨]은 이대로 청소를 포기하기 싫었다.  

[에어컨]은 고민 끝에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능숙하게 바람을 타고 이 송 앞까지 날아갔다. 


-그럼 내가 청소할 수 있게 팔, 다리를 그려줘. 


[에어컨]은 이 송의 팔, 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같이 방을 쓰면서 관찰하니 이 송은 팔, 다리가 있어서 청소가 가능했다. 다리가 좀 더 길었다면 에어컨까지 청소했겠지만, 아쉽게도 이 송의 다리를 늘릴 방법이 없었다. 


“그건 어렵지 않지.” 


이 송은 자기 대신 청소한다는 말에 신이 나서, 바로 펜으로 팔, 다리를 그려줬다.  



팔, 다리가 생긴 [에어컨]은 다시 바람 타고 올라가 에어컨 위를 청소했다. 이 송은 공짜 가정부가 생겨 기분이 좋아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이 송은 계속 침대에 누워있을 수 없었다. 에어컨에서 떨어진 먼지가 그대로 침대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 송은 이불에 먼지가 묻기 전에 얼른 걷었다.  


“야, 먼지가 밑으로 떨어지잖아. 살살 청소할 수 없어?” 


이 송은 먼지를 계속 밑으로 밀고 있는 [에어컨]에게 따졌다. 그래도 [에어컨]은 에어컨이 청소하는데만 집중했다. 다른 건 지저분해도 상관없지만, 자기와 같은 모습인 에어컨이 더러운 건 참을 수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건 치울 수 있잖아. 그건 네가 치워. 


[에어컨]의 말에 반박할 수 없어, 이 송은 강제로 대청소를 시작했다. 이 송은 선풍기를 끄고 창문을 다 열었다. 미세먼지가 심해서 창문을 닫고 있었지만, 방을 떠다니는 먼지를 마시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선풍기가 꺼지자 바람 타고 놀던 그림들이 칭얼거렸다. 이 송은 그림을 모두 모아 서랍에 넣었다. 대청소할 때 종이를 밞거나 실수로 버리는 것보다 잠깐 가두는 게 나았다. 


[에어컨]은 청소를 다 했는지, 위에서 에어컨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자기와 같은 모습이라 무엇에 쓰는지 궁금한 것 같았다. 이 송도 갑자기 하게 된 대청소를 끝내고 창문을 닫았다. 다시 선풍기를 쐬며 쉬려고 하는데, ‘삐빅-‘소리와 함께 에어컨이 가동되었다.  


“그거 켜면 안 돼.” 


이 송은 전기세 폭탄 맞을 까 봐 에어컨을 끄고 싶었지만, 안 쓰던 에어컨이라 리모컨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리모컨 찾는 사이 [에어컨]은 계속 버튼을 누르면 놀고 있었다. 


-이건 뭐야? 공기가 상쾌한데. 


마음에 드는 기능을 찾았는지, [에어컨]은 에어컨 바람 위를 둥둥 날아다녔다. 이 송은 짐을 다 뒤져 비닐도 뜯지 않은 리모컨을 찾았다. 집에 여분의 건전지를 넣고 리모컨을 켜자, 지금 에어컨이 냉방이 아니라 공기청정으로 켜진 걸 알았다.  


“에어컨에 이런 기능도 있었어?” 


에어컨에 관심이 있어서 공기청정 기능이 있는지도 몰랐다. 이 송은 에어컨을 끌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아까 청소하느라 방에 먼지가 가득한 기분이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 창문까지 열어서, 기분상 방의 공기가 텁텁할 것 같다. 


“에이 모르겠다. 오늘 하루만 켜면 괜찮겠지.” 


이 송은 선풍기를 치우고 에어컨 바람을 즐겼다. 전기세가 무서워 매일 켜지는 못하지만, 오늘 하루 정도는 켜도 좋을 것 같다. 



그.물.설. 세 번째 

이름 : 에어컨

그 물건의 진짜 설명서 : 청소쟁이 (부업 : 공기청정 기능)








그림작가 이송련님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song_r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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