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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못소 Jul 07. 2018

그.물.설. 4 전신 거울

에피소드 4: 전신 거울 (매주 토요일 연재)



그.물.설 (그 물건의 진짜 설명서)  

에피소드 4. 전신 거울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이 송은 어릴 때 들었던 동요를 흥얼거리며 그림을 그렸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은 쉬고 싶다고 계속 눈이 감겼다. 매일 펜 드로잉 한 장씩 그리는 건 자신과의 약속이라, 감기는 눈을 비비며 펜 잡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전신 거울에 비친 눈 비비는 모습이 마치 옹달샘 찾는 토끼 같았다. 


“내가 거울을 그렸었나?” 


보통 눈에 보이는 사물을 그려서, 집에 있는 살림은 거의 다 그렸다. 그런데 거울은 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렸던 종이를 꺼내 확인해보니 예상대로 거울은 없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22시 30분이었다. 바로 씻고 자야 내일 출근에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피곤한 몸은 이만 자라고 눈꺼풀을 내렸다. 그래도 이 송은 빈 공간에 전신 거울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신 거울은 간단하니까 금방 그릴 것 같았다. 


“어, 어?” 


전신 거울을 그리는 그 잠깐 사이 눈꺼풀이 훅 내려앉았다. 생각보다 몸이 고단했는지, 눈꺼풀과 같이 머리까지 푹 꺼졌다. 머리의 반동으로 정신을 다시 차려 빨리 그림을 마무리하려 했다. 그런데 전신 거울 그림에 큰 금이 가 있었다. 잠깐 조는 사이 손이 삐끗해서, 금이 간 전신 거울을 그려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수정을 하고 싶었지만, 펜으로 그린 거라 수정이 불가능했다. 이 송은 고민하다가 금이 간 것도 매력이라고 합리화했다. 그대로 그림을 마무리하고 고단한 몸을 침대에 뉘었다. 씻지 않아서 찝찝했지만, 그것보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피로를 푸는 게 우선이었다. 


어제 야근해서 일을 끝낸 덕분에 오늘은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여유로운 저녁시간에 즐거워져 노래를 흥얼거리며 귀가했다. 


집에 들어서니 그림들은 자기들끼리 떠들며 놀고 있었다. 그중 [전신 거울]도 있었다. [전신 거울]은 다른 그림과 달리 얼굴에 상처가 있었다. 그 얼굴을 보니 마음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전신 거울]은 상처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이 송은 모른 척 말 걸었다. 


“너는 네 모습이 마음에 들어?” 


[전신 거울]은 무슨 질문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다 금이 간 얼굴로 이 송을 바라봤다. 


-마음에 들고 안 들고나 있나? 나는 원래 이 모습으로 태어났는데. 


아마 [전신 거울]은 금이 간 것이 원래 모습인 줄 아는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나쁘면, 처음 보는 세상이 흐리게 보인다. 흐린 세상만 본 아이는 안경이 필요하다는 걸 모른다. 


이 송은 [전신 거울]이 그런 아이 같았다. 배 아파 난 아이는 아니지만, 자기 실수로 상처가 난 [전신 거울]에게 마음이 쓰였다. 


“사실 거울은 얼굴에 금이 가지 않아.” 


이 송은 [전신 거울]에게 거울을 사진을 보여줬다. 그리고 어제 자신의 실수로 얼굴에 상처가 난 거라고 고백했다. 


“내 실수로 얼굴에 상처가 난 거야. 미안해.” 


진실을 안 [전신 거울]은 충격을 받거나 이 송을 탓하지 않았다. 그는 이 송이 스마트폰으로 보여준 거울 사진만 보고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여러 사진을 보던 [전신 거울]은 한 장의 사진에서 멈췄다. 


-사물로서 거울은 다른 걸 비춰야 하니까 금이 간 게 치명적이지만, 나는 사물을 비추는 게 아니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대신 이것처럼 색 칠해주면 안 돼? 다른 거울보다 난 이게 더 마음에 들어. 


[전신 거울]이 보고 있는 사진은 스테인드글라스였다. 다양한 색의 유리 조각이 모여 하나의 장식품이 되는 스테인드글라스. 이 송은 [전신 거울]의 의견을 바로 받아들이고, 금이 간 선을 더 그렸다. 그리고 색을 넣어 공작새처럼 화려하게 만들어줬다.  


“어때, 마음에 들어?” 


흠이었던 금은 [전신 거울]을 유니크한 작품으로 탈바꿈시켜주었다. 금이 간 거울이 아닌 오색빛깔 스테인드글라스가 된 [전신 거울]을 보니 마음 깊숙이 뿌듯했다.  


-와, 내가 더 멋있어졌어. 아까보다 훨씬 좋아. 


[전신 거울]은 마음에 드는지 자기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며 만족해했다. 덧칠로 모습이 달라진 [전신 거울]을 보며, 다른 그림도 부러워했다. 특히 주목받는 걸 좋아하는 [빨래건조대]의 질투가 가장 심했다. 


-이 송, 나도! 나도 해줘. 


바지 밑단을 잡으며 보채는 소리가 들렸지만 모르는 척했다. [빨래건조대] 포기하지 않고 졸졸 따라다니며 해달라고 보챘다. 단칸방에서 도망갈 곳이 없어 우선 화장실로 대피했다. 그림도 어두워지면 잠을 자기에, [빨래건조대]가 잠들 때까지 화장실에서 스마트폰이나 해야겠다. 내 집인데 화장실로 도망가는 기분이 이상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 송, 빨리 나와서 나도 해줘. 


생각보다 끈질긴 [빨래건조대]때문에 화장실에 오래 있어야 할 것 같다. 이 송은 밖에서 [빨래건조대]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화장실에서 있어야 했다.




그.물.설. 네 번째 

이름 : 전신 거울

그 물건의 진짜 설명서 : 스테인드글라스








그림작가 이송련님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song_ryeon/

글 못 쓰는 소설가 브런치 : https://brunch.co.kr/@story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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