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썼지만 손발이 오그라 든다
내가 썼지만 손발이 오그라든다
누구나 소설 쓰면서 부끄러워 노트북을 덮어버리는 경험을 해봤을 겁니다. 내 웃음소리를 글로 적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손발이 오그라들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럽습니다. 감정을 묘사를 오버해서 적은 것 같아 썼다가 금세 지워버립니다.
이는 소설 처음 쓸 때 누구나 겪는 과정입니다. 책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내가 쓰려고 하니까 부끄럽고 쪽팔립니다. 현실에서는 '맛있다' 한 마디로 끝나는 걸,
'머리에서 종이 울리고, 입 안에서 식재료 살아서 춤을 춘다. 눈 앞에 식당은 사라지고 생선이 뛰놀던 바다가 펼쳐진다. 신선한 바다내음과 넓은 바다를 뛰어노는 역동적인 몸짓이 입 안에서 그대로 재생된다.'
각종 미사여구를 넣어 과하게 포장하는 게, 질소를 가득 넣어서 과대 포장하는 것 같아 민망합니다.
실생활에서는 '맛있다'로 끝이지만, 글에서도 짧게 끝내면 독자는 아무런 감흥을 못 느낍니다. 쉬운 예로 연극이나 드라마 속 배우의 연기를 떠올려보세요. 배우는 혼자 서 있는 상황에서 얼굴 전체를 이용해 '걱정, 초조, 고민' 등 내면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실상에서는 속으로 생각해도 멍 때는 표정이 전부이지만, 배우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노골적으로 더 오버해서 표현합니다. 그래야 관객은 배우의 얼굴을 보고, 극 중 배역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심리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배우가 관객이 다 알 수 있도록 얼굴에 심리를 드러내는 것처럼, 소설도 독자가 온몸으로 수긍할 정도로 알려줘야 합니다.
짧은 '두리번거리며 걷는다'는 길을 잃어서/주변 풍경이 생소해서/습관적으로/사진 찍을 장소를 찾으려고/살인 장소 물색/협박을 당하고 있어서/정신질환으로 환청이 들려서/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서 등등 무수힌 많은 경우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독자가 헷갈리지 않도록 구체적으로 오버해서 설명해야 합니다.
예)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핸드폰만 보고 걷는 다른 사람들 사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심히 걸었다. 높은 빌딩과 고개 숙인 사람들 사이로 이질적인 발소리가 들렸다. 작은 발소리가 점차 커졌다.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몸의 떨림이 커졌다. 확인하기 무서워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었다. 소리는 귓구멍 속을 파고 들 정도로 커졌고, 이내 다시 멀어졌다. 멀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정장 입은 남성이 맑은 구둣소리를 내며 걸어가고 있었다.
특히 감정은 더 극적으로 묘사해야 합니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지구를 떠나 안드로메다에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표현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은 실생활에서도 다 다르게 느낍니다. '화가 난다'는 A는 말하지 않고 참고 넘기고, B는 바로 소리쳐야 분이 풀리고, C는 강한 자 앞에서는 내색 안 하고 약한 자에게 분풀이하기도 합니다. 같은 감정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낍니다. 그래서 오글거린다고 '화가 난다', '설렌다', '좋아한다' 정도로 겉핥기 식으로 표현하면, 독자는 어떻게 공감해야 할지 전혀 모릅니다.
예) 설렌다
1. 내일 여행 갈 생각에 설렌다
2. 비행기 티켓에 적힌 날짜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날짜는 9일 목요일. 2시간만 지나면 바뀌는 날짜였다. 오전 비행기라 지금 자야 늦잠 자지 않고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두근거리는 심장은 뇌가 잠들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인생 처음 첫 미팅을 나가는 것처럼 설레는 심장은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쉼 없이 두근거렸다.
오글거리는 요소를 불필요한 요소 또는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소설의 재미를 위해서,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오글거려서 못 쓰겠나요?
오글거리는 것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마음을 바꿔보세요. 오글거리는 건 유치한 게 아닙니다. 비현실적인 것도 아닙니다. 과대 포장도 아닙니다. 그림이 없는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온전한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미료입니다.
오글거려서 글을 못 썼다면, 같은 장면을 다시 써보세요. 불필요한 요소가 아닌 꼭 필요하다는 걸 알았을 뿐인데, 이전보다 편하게 글이 쓸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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