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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21.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13 - 우선 순위

2023년 5월 25일 목요일


 시간이 지나면 전부 해결이 되듯 이제는 병원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진 듯하다. 오전 6시 반에 일어나서 일과를 보내고 나면 적어도 오후 11시 늦어도 12시 전에는 잠이 든다. 병원에 있으니 그동안 엉망이었던 생활패턴이 제자리로 찾아가는 기분이다. 그전에는 자고 일어나도 피로가 가시질 않았고 일찍 일어나는 건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해가 중천을 넘어서 하루의 절반을 잠자는 시간으로 날렸는데 지금은 인생에서 하루의 시간을 가장 알차게 쓰는 중이다.


 처음에는 몸을 닦이는 것부터 기저귀를 가는 것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면 지금은 30분 정도로 시간이 단축됐다. 간병을 하다 보니 나 스스로도 기술이 능숙해졌다는 걸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요령도 모르게 힘으로만 했을 때 보다 모든 일을 할 때 훨씬 수월해졌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변수들도 존재했다. 제일 난감한 건 동생이 기저귀를 갈 때 소변을 눈다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기저귀를 갈고 있는데 신호도 없이 바로 소변을 누는 바람에 바닥이 흥건하게 젖었다. 그 광경을 보다가 순간적으로 비닐봉지를 갖다 대서 소변을 받으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비닐봉지만 괜히 소변으로 적시게 되었다. 동생이 옆으로 돌려진 상태로 소변을 눠버려서 시트, 상의 무엇 하나 멀쩡한 게 없었다.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한숨이 나와 버렸다. 도대체 왜 소변을 참지 않는 거냐고 동생에게 따져 물었지만 답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제발 기저귀 갈 때 만이라도 조금 참아보라고 말은 했지만 그게 가능했으면 기저귀를 차고 있지도 않았을 거다.


 생각지도 않은 사고로 시간이 지체되어서 결국은 오늘도 첫 타임에 지각을 했다. 정신줄을 겨우 부여잡고 병실로 다시 올라와서 보니 감사하게도 같은 방을 쓰는 아주머니께서 기저귀 봉투를 치워주셨다.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고 침대와 베개 시트를 벗겨내서 베이킹소다 세정제를 뿌렸다. 다른 자리 아주머니들은 락스로 에어매트와 병실을 바닥을 닦으면 된다고 노하우를 알려주셨지만 시트를 씌운다고 해도 피부에 직접적으로 닿는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찝찝해서 락스를 사용하진 않았다. 소변이 닿은 부분을 다 닦아내고 새로운 시트로 다시 갈았다. 방청소도 잘 안 하는 내가 여기서는 맨날 청소를 하고 있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놀랍다. 인간의 적응력과 습관이 만들어낸 행동은 새삼 대단하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동생을 보면 하루가 다르게 의식이 또렷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재활이 끝나고 치료사는 동생이 오늘은 반응도 잘해주고 집중력도 좋았다며 말해주었다. 날이 갈수록 호전이 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장난을 치면 반응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삭발을 해서 짧아진 머리카락이 삐죽삐죽하게 서있는 동생의 모습이 마치 아기 독수리 같아서 놀렸더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피식하고 웃었다. 확실히 웃는 모습을 보면 예전보다 훨씬 표정이 커지고 다양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설사도 멎었고 종아리에 생겼던 종기도 가라앉았다.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콧줄이었다. 콧줄을 너무 오랫동안 하고 있으면 위궤양이 발생할 위험이 있기에 7월 달에 상황을 보고 음식을 삼키는데 문제가 있다면 그때는 배에다 호스를 연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만큼은 제발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다. 머리에 상처가 난 걸로도 모자라 배까지 상처를 내고 싶지 않다. 그 상황을 피하려면 삼키는 연습을 계속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평일에는 밥 먹는 시간이 빠듯해서 입 주변 근육을 움직이는 연습이라도 시켜야 했다.


 동생을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을 때마다 회복기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다가도 죄책감이 몰려와서 괜히 대화를 한번 더 걸고 스트레칭을 해준다. 그러고는 현재의 우선순위가 동생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스스로 계속 상기시켰다. 나를 우선으로 두고 싶어도 지금은 그럴 수가 없으니 말이다. 왠지 모르게 하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주춤하게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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