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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20.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12 - 기쁜 이별

2023년 5월 24일 수요일


 팍팍하기만 했던 현실에서도 기분 좋은 일은 생기기 마련이다. 인스타에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을 하다 보면 내가 몰랐던 새로운 정보도 얻게 되고 생각지도 않은 뜻밖의 선물도 받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계정이다 보니 서로를 작가라고 칭하며 서로의 작품을 구경한다. 그러다 보면 여러 작가들의 캐릭터가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승인이 됐다는 소식도 듣게 된다. 팔로잉한 작가 계정에 새로 올라온 게시글을 보니 이벤트에 참여하면 오늘 갓 출시되는 이모티콘을 준다는 말에 바로 참여했다. 인스타툰을 시작하니 이런 소소한 재미도 생긴다.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았다.


 요즘 몸과 마음이 지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24시간 내내 먹구름이 가득한 채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는 감사하게도 나를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송을 도와주는 직원분은 나를 보면 항상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어쩔 땐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탕비실로 그 앞을 지나가고 있는 나를 불러 싱크대 선반에 숨겨놓은 두유나 요플레, 삶은 계란과 같은 음식을 몰래 건네주었다. 항상 음식을 챙겨주면서 늘 자신은 이미 먹었다는 말을 덧붙이는데 아무래도 받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았다.


 그뿐 아니라 병실을 옮긴 아주머니들도 나를 만나면 항상 잠은 잘 잤는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확인을 했다. 그러면서 먹을 것이 생기면 항상 챙겨주거나 병실이 바뀌어도 한결같이 점심시간만 되면 우렁각시처럼 나타나 찌개나 반찬을 자리에 놓고 사라졌다. 아주머니들은 그냥 자기가 먹으려고 만들었던 걸 나눠주는 거라고 하지만 너무 받기만 한 것 같아서 죄송스러웠다. 생각지도 않게 여기저기서 챙김을 받는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동생과 내가 머무르는 병실은 병세의 경중이 심한 사람들 즉, 거동이 불편해서 기저귀를 차야하는 환자들이 모인 곳이다. 그래서 상태가 호전이 되어서 기저귀를 안 해도 되는 상태가 되면 다른 병실로 이동하게 된다. 처음에는 갈등이 있었지만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하면서 이제야 생활을 맞춰 나갔는데 이제는 모두 떠나버리고 남은 이가 몇 없다. 동생을 예뻐했던 간병인 아주머니도 다른 병실로 가버렸다.


 만남에서 이별은 슬픈 일이지만 병원에서만큼은 기쁜 일이다. 여기에서 이별이 다가왔다는 건 환자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호전이 되었다는 의미와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24시간 내내 같이 붙어있다 보면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정이 생긴다. 그래서인지 퇴원은 정말 축하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떠나버리고 남은 빈자리는 또다시 새로운 누군가로 채워진다.


 장기 입원을 하고 있으면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보는 기분이다. 현재 병실에 남은 자리는 가운데밖에 없었고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들은 공간이 작다며 불평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동생과 처음 이곳을 왔던 날 같은 자리를 보며 경악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러면 간호사는 한 달 전에 내게 했던 것처럼 어쩔 수 없다는 말투로 먼저 들어온 장기입원 환자가 우선이라서 병실 환자가 빠지면 자리를 이동할 수 있다며 설명을 했다.


 문제는 그 순간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 달 조금 넘게 생활을 하다가 창가 자리로 옮기게 되었지만 우리가 다른 병실로 이동하지 않는 이상 다른 환자가 창가자리로 올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낯선 환경에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게 마치 과거의 내 모습 같기도 했다. 계속 대학병원과 비교하면서 불평을 하는데 곧 있으면 저 불만도 사라지고 곧 이곳에 익숙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자꾸만 대학병원은 이랬는데 여기는 어떻다라며 하나부터 열까지 투덜거리는 간병인의 모습을 보고 과거의 나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반성을 했다. 솔직히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입장에서 자꾸만 투덜거리는 말을 듣는 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나도 저랬던 것 같은데 기존에 있던 병실 사람들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현재 내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이미 익숙해져서 불편함을 못 느꼈다. 무엇보다 제일 큰 이유는 중간자리로 들어오는 사람마다 항상 저런 반응이라서 놀랍지가 않았다. 이제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자리가 좁다는 불평이 나올 거라는 짐작부터 했다. 그리고 그 불만은 며칠에서 몇 주 사이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제는 병원에서 몇 개월 생활하다 보니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이 되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기존 사람들과 생활 패턴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일주일 정도는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기존 방식에 익숙해지느라 신경이 쓰일 것이고,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새롭게 들어온 사람이 어떤 생활 패턴인지 파악을 해야 돼서 신경이 쓰인다. 그렇게 병원생활에 익숙해질 때쯤 되니 이제는 새로운 병실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는 병실을 먼저 탈출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동생이 기저귀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다른 병실로 옮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옮긴 병실에서  더 호전이 되면 그땐 퇴원을 하고 집으로 가게 된다. 하나 둘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우리도 곧 이곳을 떠나게 될 날이 오게 될 거란 걸 알게 된다.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건 서운하지만 그 어느 순간보다 기쁨을 느끼게 될 그날 만을 기다리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말이다. 이제 5월도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벌써 이번 해의 절반을 달려왔다. 그 어느 때보다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달이다. 분명 지금의 공간과 시간은 과거의 추억으로 머무르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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