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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19.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11 - 극도의 예민함

2023년 5월 23일 화요일


 도대체 동생은   기저귀를 가는 도중에 소변을 눠버리는 걸까. 실컷  닦고   기저귀를 새로 갈려고 하는 순간 시원하게 싸버린다. 바로 앞에서 처참한  목격할 때면 암담한 현실에서 도망을 치고 싶을 뿐이다. 소변으로 젖어버린 침대 시트를 돌돌 말아서 걷어버리고 새로 갈아입힌 옷을 다시 한번  갈아입혔다. 그나마 다행인  이번에는 똑바로 누운 자세로 쌌기 때문에  옷이 젖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에 같이 병실을 썼던 아주머니께서 택배를 가져다주셨다. 안 그래도 택배가 왔다는 문자를 받고 나중에 내려가야지 하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감사인사를 전한 뒤 상자를 바로 개봉했다. 부피가 작으면 나중에 정리를 하려고 했는데 기저귀 속 패드 8팩이 들어서 그런지 그냥 두기엔 존재감이 너무 컸다. 테트리스 하는 것처럼 패드 8개를 창문과 옷장 틈 사이에  넣어서 정리하고 그걸로 모자라서 옷장 위에 까지 올려두고 나서야 정리가 끝났다. 그렇게 아침부터 심심할 틈이 없었다.   


 동생이 재활을 받는 동안에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다.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보면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무얼 하는지 궁금해하면서 질문을 하고 관심을 가지는데 상당히 부담스럽다. 어릴 적부터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쳐다보는 게 느껴지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면서 안 하던 실수를 했다. 지금은 그나마 나아진 것 같지만 그래도  옆에서 기웃거리며 보는 게 괜히 신경이 쓰여서 그리던 것을 멈추고 밖으로 나갔다.


 재활 치료실 복도 끝에는 바깥으로 나가는 문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나가 보니 건물 실외기들이 잔뜩 있었다. 건너편에는 건물 주차장이 보였다. 멍하니 가만히 담 아래를 바라보는데 생각보다 담이 낮아서 뛰어내리면 건너편 건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왠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상상을 혼자 해보면서 좁고 기다랗게 길이 나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호기심이 생겨서 길의 모퉁이가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알아보려다가 포기했다. 실외기 때문인지 담과 실외기 사잇길은 후텁지근하고 바닥에는 새들의 배변 흔적이 엄청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길을 걷는데 그 사이로 거미줄이 쳐져 있었는지 내 몸에 걸려서 그 특유의 휘어 감는 느낌에 소름이 돋아서 그대로 다시 되돌아갔다.


 오전 재활이 끝나고 병실에 올라오면 무조건 기저귀부터 갈아야 한다. 재활 시간 연속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도중에 화장실을 가는 것이 불가능해서 기저귀는 소변으로  묵직해져 있었다. 그래서 오늘 새로 도착한 패드를 려고 하나를 뜯었는데 턱도 없이 작은 크기를 보고 탄식을 했다. 전에 엄마가 유튜브로 기저귀 관련된 영상을 찾아봤는지 쓰고 있는 패드를 보더니 리뷰에서 흡수율이 좋지 않다고 했다며  좋은 걸로 알아보겠다고 했었다.


 아무리 흡수율좋아도 크기가 작으면 동생의 소변량 감당이  돼서 바지에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재활 시간에 소변이 새서  번이나 병실을 올라와서 바지를 갈아입혀야 했다.  모습을 안쓰럽게 여긴 간병인 아주머니가 기존에 쓰고 있던 기저귀를 무엇인지 물어보더니 동생한테는 너무 작을 거라며 오버나이트를 추천해 줬다. 오버나이트는 패드 길이 자체가 길다 보니 페니스에 감싸고 기저귀를 채우다 보면 어쩔  없이 기저귀 속이 빵빵해질 수밖에 없다. 엄마는  패드를 여러  채워야 하는  마음에  들어했고 그래서  얇으면서 흡수율이 걸로 구매한  같은데 제일 중요한 패드 크기를 간과했다.


 예전부터 나와 상의도 없이 필요 없는 물품을 구매하고 병원으로 가져다 놓는 게 불만이었는데 이번에는 기저귀 패드가 문제다. 솔직히 기저귀 패드를 보자마자 짜증이 올라왔다.  심지어 8팩이나 와서 그 많은 걸 언제 다 쓸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써야 할 지도 막막했다. 분명 패드 2개를 감싼다고 해도 크기가 작아서 소변이 샐 게 분명하고 만약에 작은 걸 쓰려면 짧은 주기로 갈아야 하는데 도무지 답이 안 나왔다.


 일단 당장 따질 힘조차 없어서 동생 점심부터 챙겨주고 재활을 보냈다. 그 사이에 올리브영에 들러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고 병원으로 돌아갔는데 엄마한테서 뭘 산거냐는 문자가 와있었다. 그래서 답장을 해주면서 오늘 도착한 기저귀 패드가 작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냐며 반품을 알아보겠다고 문자를 보내놓고선 조금 있다 전화가 와서 반품 신청을 했다며 다시 포장을 하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큰 박스는 이미 버렸고 다시 포장할 만한 것이 없었다. 심지어 이미 곳곳에 쑤셔 박아놓은 기저귀패드들을 다시 꺼내서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피곤하고 귀찮았다.


 엄마는 밑에서 박스를 구해오거나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으라며 말을 했고 나는 그게 귀찮아서 반품을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나와의 상의도 없이 주문을 멋대로 해서 결국 수습은 내가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다. 가뜩이나 지칠 대로 지쳐버려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상태인데 추가적으로 해야 될 일들을 만드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나의 일을 덜어주기 위해서 좋은 마음으로 했던 엄마의 배려가 오히려 일거리를 더 늘어나게 만들었다. 엄마는 도와주려다가 이렇게 된 건데 내가 성질을 내는 바람에 상처를 받았고 내 눈치를 살피면서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주문을 안 하겠다며 말했다.


 결과가 어쨌든 간에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 잘 알면서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신경질 내는 내 모습도 싫고 그냥 이 상황 자체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냥 지금은 모두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으면 싶다. 좋은 것도 싫어지고, 싫은 건 더 싫어지고 있는 게 현재의 상태라서 그런지 가시 돋친 반응이 나오게 되는 상황이 오면 너무 피곤해진다. 도대체 이 감정의 소용돌이는 언제쯤 잠잠해질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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