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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18.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10 - 간병을 하다 보면 보이는 것들

2023년 5월 22일 월요일


 병원에 있다 보면 그동안 알게 모르게 정든 사람들과 이별해야 하는 순간을 겪기 마련이다. 그 이별도 잠시 함께 지냈던 사람들이 나간 빈자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진다. 우리가 그랬듯이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더 이상 거기서 머무를 수 없는 환자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내 동생보다 어린 사람이 들어오지는 않는다. 전부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다.


 그분들은 젊은 시절에 무엇을 했든 간에 상관없이 같은 환자복을 입고 병원에서 나오는 같은 음식을 먹는다. 나이가 들어 여유가 있다면 가족들은 간병인을 고용할 것이고, 돈이 없으면 가족들이 간병을 할 것이다. 병원에 들어오는 순간 직업도 나이도 그 사람이 살아왔던 모든 삶과도 상관없이 모두 같은 모습이 된다.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힘없이 침대에서만 생활을 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거나 초점 없는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많은 생각이 스친다. 저분들은 사회에서 무엇을 하던 사람들인지, 지금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그저 머릿속으로만 남겨둔다. 물론 가만히 있다 보면 아주머니들의 수다 속에서 무엇을 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병원에서 할 게 없다 보니 새로운 환자는 관심 대상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수납장 앞에 붙은 이름과 나이부터 확인해 보는 게 일쑤였고 그 주변을 기웃거리면서 정보를 캐내는 게 일이었다. 물론 간혹 가다 뇌수술을 했던 환자들은 틀린 정보를 알려줄 때도 있었기에 가족들에게 그 말이 사실인지 진위여부를 확인해 볼 필요는 있었다.


 이러한 사적인 영역들은 사회에서는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병원에서는 인지가 제대로 돌아오는지 확인차 미리 정보수집을 해놓을 필요는 있어 보였다. 가족들이 간병을 하면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바로 확인하기가 쉽지만 간병인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경력이 있는 분들은 자신이 돌보는 환자 가족들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예전에는 무엇을 했었는지 직업에 대한 정보정도는 기록을 해두는 경우가 많았다.


 병원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관찰을 하게 된다. 복도를 지나가다 보면 나처럼 간병을 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은 드문 드문 보인다. 나와 비슷한 또래를 보면 사연이 궁금해서 눈길이 한 번 더 가긴 했다. 물론 그 사람들과는 가족을 돌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지만 부모님을 요양한다는 점에서는 나와 달랐다.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오며 가며 자주 스쳐서 그런지 혼자서 내적 친밀감이 생긴 것 같다.


 내가 3개월 정도 병원에 있으면서 지켜본 결과 환자가 빨리 좋아지려면 옆에서 다양하고 익숙한 자극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전문 간병인이라고 해도 채워줄 수 없는 게 딱 한 가지 있다면 그건 가족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일 것이다. 간병인도 결국에는 돈으로 고용된 고용인일 뿐 가족을 대신해서 손, 발이 되어주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의 역할까지 해줄 순 없었다. 간병인의 실력이 좋아서 환자가 빨리 호전된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눈빛에서는 공허함과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보통은 환자가 말을 듣지 않을  언성을 높이거나 화를 내는 간병인  많았다. 이번에 우리 병실로 새롭게 들어온 간병인이  그런 경우였다. 환자의 기저귀를   커튼을 열고 간다거나 환자가 말을  들을 때면 짜증 난다는 투로 대했다. 그래서 옆에서 지켜보던 간병인 아주머니가  마디를 하면 입을 다물었다. 물론 나도  동생이 말을  들을 때면 짜증이 나긴 하지만 아프니깐 어쩔  없다는 생각에 짜증을 내진 않았다. 내가 아무리 힘들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힘든 거에 비교가 되겠나 싶어서 조심스럽게 대하는데 그런  생각하지 못하는 간병인들도 있었다. 말투가 어찌나 사납고 거칠던지 혹여나 동생이 듣고 자기한테 말이라고 착각할까  귀를 막아버렸다.


 또한 환자와 간병을 하는 사람들의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는다.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간병하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감정이 교차한다. 젊은 나도 간병을 하면서 체력적으로 버거울 때가 있는데 나이가 드신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그래서인지 보통은 재활이 끝나고 저녁밥까지 다 먹이고 나면 제 할 일이 끝난 사람들은 간이침대에 누워 있거나 잠들기 바빴다. 유일하게 체력이 남아도는 나만 저녁 시간에 동생과 마주 보고 앉아서 조잘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병실에는 TV와 동생한테 말을 거는 내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더욱이나 동생 곁에 내가 붙어있어야 한다. 전문 간병인은 환자를 돌보는 스킬은 노련하겠지만 정서적인 측면까지는 층족을 시켜줄 수가 없다. 위생적으로 케어하며 밥을 먹이고 거동을 도와주는 건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이지만 굳이 환자를 즐겁게 해 줘야겠다거나 긍정적인 말을 해주면서 마음을 다독여주는 건 별개의 사항이라 제일 기본적인 것까지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간병인과 가족 간병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은 아무래도 이 시련을 함께 헤쳐나가야 하는 사이라서 특히나 이런 상황일 때 더 애정을 가지고 보듬어 줄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낫게 하려면 집안에서 가장 수다스러운 내가 동생을 심심하지 않게 옆에서 조잘거리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걸어 정신없게 만들면서 우울해할 틈도 안 주고 있는 중이다.


 동생은 하루가 다르게 고개도 오른쪽으로 잘 돌리고 눈빛도 더욱 또렷해지고 있다. 이제는 제법 말귀도 잘 알아듣는 것 같고 말을 걸면 반응도 빨라지고 있다. 시간이 될 때마다 그릭 요거트를 먹이면서 혀를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고 아침마다 혀를 내미는 연습도 시킨다. 말을 걸면 여전히 가느다랗게 공기 90%, 소리 10% 정도로 섞인 목소리를 냈지만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콧줄을 빼려면 잘 먹어야 하고, 잘 먹기 위해서는 입 안과 주변 근욱을 계속해서 자극시켜 줘야 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눈깜박임으로 의사 표현을 하게 하는 대신 고개를 움직이거나 입을 통해서 표현하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엄마는 어제 동생의 상태를 보고는 생각보다 더딘 회복 속도에 실망을 했는지 저녁에 갑자기 문자가 왔다. 평상시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나의 말에 너무 기대했던 탓인지 막상 주말에 만났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회복이 더딘 것 같아서 콧줄을 못 뺄까 봐 겁이 난다고 했다. 우리가 전문 간병인처럼 케어를 못해서 콧줄을 못 빼는 건 아닌지, 나는 물론 잘하고 있지만 혹시나 우리가 전문가가 아니기에 놓치는 게 있는 건 아닌지 많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힘 빠지는 소리를 해서 미안하다며 둘 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엄마가 욕심이 많아서 그런 거라고 마무리를 지었고 나는 그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달래줄 만큼의 상태도 아니었고 솔직히 엄마의 문자를 받고 전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을 부정당하는 기분이라서 대꾸하기가 싫었다. 나는 또다시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비난받는 것 같았다. 보통이면 이런 말을 듣고 나서는 따지면서 화를 냈을 텐데 이제는 싸울 의지조차 꺾여버렸다. 그냥 모든 게 끝나면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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