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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22.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14 - 시간의 흐름

2023 5 26 금요일


 오늘 저녁에는 엄마랑 교대를 한다. 주말 동안 나는 자유를 얻었다. 심지어 다음 주 주말도 엄마가 교대를 해주기로 해서 생각지도 못한 휴가를 얻은 기분이었다. 오늘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였다.


 매일 아침마다 이루어지는 일과가 있다. 6시 반에 일어나 동생을 씻기고 있으면 항상 40분쯤에 간호사가 와서 커튼 사이로 경관 유동식팩을 전해준다. 그걸 받아 든 나는 온장고에서 뜨겁게 데워진 피딩팩이 식지 않게 이불 사이에 넣어둔다. 이렇게 해둬야 식지 않고 온기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  


 동생을 씻기고 난 다음에는 몸이 건조하지 않게 전체적으로 겔을 발라준다. 처음에는 보습크림을 사용했는데 여드름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동생이 20대라서 그런지 피지분비가 많아서 특히 등이나 얼굴 부이에 피부 트러블이 자주 생긴다. 그래서 보습 크림보다는 피부진정에 도움을 주는 아줄렌겔을 사용한다. 구석구석 다 발라주고 나서 옷을 입히고 시계를 확인하면 7시였다.


 이제는 동생의 아침을 챙겨줘야 할 차례다. 경관 유동식을 진행하려면 물이 필요하다. 나는 한 손에는 텀블러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동생이 입었던 병원복과 기저귀 봉투를 들고 하나씩 처리를 하러 다닌다. 병원복은 복도 끝에 있는 세탁 수거실에 넣어야 하고, 기저귀 봉투는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화장실에다 버려야 한다.


 다시 생각해도 병원 구조상 동선이 최악일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과 세탁 수거실이 ‘ㄷ‘자 모양의 끝과 끝에 위치해 있는데 그 사이에 탕비실이 있다. 그래서 아침마다 수거실을 먼저 들렀다가 복도를 돌아서 화장실에 들리고 돌아오는 길 중간에 탕비실로 가서 텀블러에 물을 담는다. 동생의 아침을 챙겨준 뒤 나는 수건을 세탁해서 널고 아침에 사용했던 물품들을 정리한다. 그렇게 7시 30분쯤이 되어서야 간단하게 시리얼이나 미숫가루를 타서 먹거나 과일을 챙겨 먹는다.


 7시에서 8시 사이에는 환자 이송을 도와주는 직원분이 항상 아침인사를 하러 온다. 오늘은 나에게 슬쩍 다가와서는 삶은 계란을 건네주고 유유히 떠나갔다. 마치 어미새가 둥지 안에 있는 아기새에게 모이를 주고 가는 느낌이랄까. 매번 이렇게 받기만 한다. 그리고 8시쯤이 되면 의사들이 회진을 도는데 어제와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질문을 던지며 우리 자리에서 1분 남짓한 시간만 머무르다가 다른 환자를 보러 간다. 이렇게 매번 하루 일과가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동생은 아침마다 입을 쩍 벌리고 침대에 기대 누워 자고 있다가 재활을 갈 때쯤이 되면 두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어느새 짧았던 머리카락도 많이 자라나 삐죽삐죽하게 나있었다. 동생을 정면에서 유심히 관찰하는데 불현듯 내 손에 들려 있는 키위와 계란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동생에게 장난칠 생각에 신이 나서 키위와 계란을 동생 얼굴 옆에다 나란히 대고 사진을 찍었다. 동생한테도 사진을 보여주니 자기도 그 모습이 웃겼는지 소리를 내며 웃었다. 사진에 찍힌 동생의 표정이 너무나도 순진하고 해맑아 보여서 더 웃겼다. 이렇게 오늘도 동생 놀리기에 진심이었다.


 특별하게 아무 일 없이 재활을 무사히 끝내고 저녁에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엄마는 운전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초행길을 무서워해서 부산에서는 차를 잘 타고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퇴근을 했으면 병원까지 바로 오면 되는데 굳이 노포동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연산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왔다. 솔직히 말해서 엄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산에서는 운전하기 힘들다며 굳이 지하철을 타고 온다는 걸 보니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났다. 그럴 거면 도대체 운전을 왜 하는 건가 싶었다. 운전 경력이 1,2년이면 이해를 하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20년 다 됐는데도 이러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후 7시쯤이 되어서야 교대를 할 수 있었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노포동을 가서 차로 갈아탔다.


 일단 동네에 가서는 친구집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오늘 만난 친구랑은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3년 만에 만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서울로 가고 나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생일 때 간간이 안부를 주고받는 정도였고 직접 만나지는 않았다. 그 3년이란 시간 동안 주변 상황도 그렇고 왠지 모르게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20대 중반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후반에 만났을 때는 직업과 연애를 포함한 모든 환경이 달라졌다.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사람일이라지만 이야기를 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우리의 행적에 웃음만 나왔다. 그렇게 오랜만에 술 한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삼촌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나와 같은 동네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며 보고 싶으면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와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거절을 했다. 그런데 삼촌한테서 황당한 소식이 들려왔다. 사촌 동생이 체육시간에 발을 다쳐서 병원에 가보니 골절이라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안이 벙벙했다. 동생에 이어, 할아버지 이제는 사촌동생까지 줄줄이 병원행이다. 삼촌은 걸어 다니는 걸 보니 크게 다친 건 아닌 것 같다고 하지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수술을 바로 하는 게 아니라 월요일쯤에 한다는 말을 듣고 심각했으면 바로 수술을 진행했겠지 싶었다. 아무튼 이 정도면 올해에 뭐가 있는 게 분명하다.


 전화를 끊고도 황당해서 친구에게 이야기를 전했더니 도대체 올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냐며 놀라워했다. 그러게 말이다. 유독 올해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가 어느덧 결혼 이야기가 나왔는데 결혼이라는 게 나에게는 아직 낯설었다. 왠지 먼 미래의 일만 같은데 친구 주변에는 하나둘씩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친구가 2년 넘게 연애를 하고 있다 보니 요즘에는 주위에서 결혼을 할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친구의 말을 듣는데 이제 20대 후반이면 연애에서 결혼까지 고려해야 되는 건가 싶어서 혼란스러웠다. 지금 결혼은 무슨 연애도 못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라 취업도 안 하고 백수로 있는데 결혼이라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굳이 따지면 30살이 되기까지 2년 6개월 정도 남았다. 보통 30대 초 전후로 결혼을 많이 하니깐 분명 내 주변에서도 결혼한다는 친구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소름이 돋았지만 아직까지는 나와 연관이 없는 주제 같아서 흥미롭기만 했다.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가는 거보니 내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병원에 있다 보면 동생과 나를 보며 모두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해서 마냥 어리다고만 느꼈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는 곧 서른이 얼마 남지 않은 어른이었다.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니 놀라웠다. 체감으로는 여전히 20대 초반인 것 같은데 시간이 언제 이렇게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찬란한 30대를 맞이하려면 남은 20대를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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