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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23.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15 -완벽한 하루

2023년 5월 27일 토요일


 병원에서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겨서 그런지 알람 없이도 아침이 되면 눈이 자동으로 떠진다. 오늘은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나갈 준비를 했다. 전부터 친구가 밥 한 끼 하자면서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묻길래 장난으로 소고기, 랍스터를 외친 적이 있었다. 내 말을 들은 친구는 미친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었는데 어제 연락이 와서는 자기가 사주겠다며 소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렇게 장난으로 이야기한 게 실제로 일어나 버렸다.


 집 앞으로 나가보니 익숙한 차 한 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수석 문을 활짝 열고 친구한테 격하게 인사를 하니 보자마자 시끄럽다면서 비명을 질렀다. 늘 여러 명이 같이 모이다가 단둘 이만 만나게 된 건 오랜만이었다. 사람을 분명 둘인데 대여섯 명이 있는 것처럼 차 안은 시끌벅적했다.


 거제도 여행을 갔던 게 벌써 한 달 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한 달 만에 만나는 친구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는 중이라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친구는 우리 중에서 가장 먼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해서 5년 동안 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걸 옆에서 쭉 지켜봐 왔기에 처음으로 편하게 쉬고 있는 친구를 보니깐 학창 시절에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친구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친구는 새로운 소식 하나를 들고 왔다. 아는 언니가 주변에서 소개팅에 관심 있는 친구가 없냐고 물어서 떠올려보니 딱 한 명이 생각났다고 했다. 그래서 소개팅을 시켜줬는데 어제 친구한테서 상대방이 억지로 소개를 받은 거냐고 묻는 거 보니 아무래도 잘 안된 모양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지만 일단 호기심을 접어 두었다. 어차피 그 친구와 만나기로 해서 내일 직접 물어보면 된다. 이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늦게 알다니 내가 병원에서 하루빨리 탈출을 해야 될 이유가 생겼다.


 차를 타고 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늦게 도착할 것 같아서 식당에 전화를 해서 예약 시간을 늦췄다.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 사람끼리 만나면 꼭 한 번은 이렇게 무언가를 변경해야 될 때가 있다. 그런데 또 어떻게든 해결이 됐었기에 딱히 신경 쓰지도 않았다. 빠르면 빠른 대로, 늦으면 늦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라서 항상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나름 재밌기도 하다.


 친구가 나를 데려간 곳은 하누마을 방갈로라는 식당이었고 소고기를 먹을 때면 항상 오는 곳이라며 추천했다. 냉장고에 있는 채끝등심과 꽃갈빗살을 골라서 계산을 하는데 막상 얻어먹자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치페이를 제안했는데 거절당했다. 내가 돈을 다시 벌게 되는 날이 오면 거하게 갚겠다고 말하니 뭘 갚겠다고까지 하냐면서 손사래를 쳤다. 이런 걸 보면 내가 인복 하나는 타고난 것 같다.


 동생의 일이 터지고 나서 친구들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친구들은 함께 있을 때는 내색을 안 하다가 몰래 뒤에서 나를 이렇게 챙겨 주었다. 정말 8명 중에서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개인적으로 연락이 와서 밥을 사주거나 잘 챙겨 먹으라면서 기프티콘을 보내 주었다. 생일에도 서로 단톡방에서 축하만 했지 선물까지 주고받지는 않았었는데 기대하지도 않은 깜짝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애들이 평소에 말과 행동이 다정하진 않아도 무심한 듯 나를 아끼는 걸 보니 진심이 느껴져서 더 고마웠다.


 친구 덕분에 오늘 한우를 배불리 먹고 후식으로 야무지게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다. 그리고 저녁에 시간이 되는 애들을 불러냈다. 남은 시간 동안은 우리 집에 가있기로 하고 친구 차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서 어제 친구네 아파트 주차장에 두고 간 엄마차를 찾아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오자마자 친구는 샤워를 하겠다며 화장실오 들어가버리고 나는 거실에서 신나게 노래를 틀었다. 나는 예전부터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걸 좋아했는데 우리 집으로 놀러 온 애들을 보면 불편해하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모두들 자기 집인 것 마냥 편하게 있다가 간다.


 오늘 친구랑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다가 잊고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내가 재택근무를 할 당시 낮에 자기 집에 있던 친구가 심심했는지 우리 집에 자러 온다고 해서 흔쾌히 오라고 했는데 잠옷을 그대로 입고 와서 황당했던 적이 있다. 3년 전 일이라 까먹고 있었는데 하여간 내 친구지만 이상한 애들이 많다. 그래서 더 재밌다.


 저녁에는 시간이 되는 애들만 모이다 보니 전부 모이지는 못했다. 갑작스럽게 잡힌 약속이었지만 그래도 4명이 모였다. 중간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 한 명이 잠시 얼굴을 비추고 사라지기도 했다. 웃긴 건 처음에 맥주 한 모금을 건넸을 때는 공부를 해야 한다며 버텼다. 그런데 애들이 하이볼을 마시는 걸 보고 하이볼은 괜찮을 것 같다며 한잔을 마시더니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맥주까지 빼앗아 먹고 다시 공부를 하러 갔다.


 또 이 자리에는 ㅁㅂ술만 마셨다고 하면 인형 뽑기를 하러 가야 하는 애가 있어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에 인형 뽑기를 하러 갔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했는지 전보다 실력이 더 늘었다. 술을 마시면 더 잘 뽑힌다는 친구의 철학을 믿고 열심히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4명 중 1명이 성공을 했다. 물론 그 한 명은 우리를 뽑기 방으로 끌고 온 친구였다.


 2차에서 술을 더 마신 후 헤어지기 전에 다시 한번 인형 뽑기에 도전했다. 결국 친구의 말을 믿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3명이 뽑기에 성공을 했다. 기계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인형 하나를 뽑아 보겠다고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웃기면서도 귀여운 인형을 뽑아서 기분이 좋았다. 병원에 가져가서 동생한테 자랑이나 해야겠다. 오늘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완벽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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