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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24.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16 - 2023 센텀맥주축제

2023년 5월 28일 일요일


 오늘은 특별 휴가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이면 나는 다시 엄마와 교대를 하지만 하루도 쉴 틈 없이 알차게 놀고 병원에 들어갈 것이다. 며칠 전에 내가 병원에서 잠시 나온다는 말을 들은 친구가 센텀맥주축제를 가자고 제안을 했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마침 내가 교대를 하는 주말에 축제가 열렸다. 심지어 오늘은 축제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이건 분명히 맥주축제에 가서 즐겁게 놀다 오라는 신의 계시인 듯하다.


 축제는 6시부터 시작해서 오전에는 집에서 할 일을 하다가 여유롭게 준비를 했다. 어제 몇 시에 만날지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봤는데  알려주지 않고 자세한 건 당일 날 말해주겠다는 친구 말이 미심쩍긴 하지만 계획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하필 오늘 같은 날에 비가 내린다. 다행히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놀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거의 다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내려갔다. 집 앞에 세워져 있는 친구의 차를 확인하고 문을 열었는데 내가 오자마자 친구들은 사이드미러를 닦아 달라며 티슈를 건넸다. 도대체 우리 집까지는 어떻게 무사히 왔는지를 모르겠다. 친구의 운전이 난폭하다는 소문을 들은 바가 있다. 목숨을 담보로 차를 얻어 타고 안전벨트가 날 지켜주리라는 믿음으로 출발했다.


 타자마자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달라고 했더니 친구는 광안리에 숙소를 잡아 놓았다고 했다. 뜬금없는 말에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몇 달 전부터 맥주축제를 갈 계획을 세웠고 같이 갈 사람이 없었으면 혼자라도 가서 놀다가 자고 오려고 했는데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 2명이나 더 늘었다고 했다. 일정을 미리 알았으면 내일 부산에서 바로 병원으로 바로 갈 수 있도록 짐을 챙겨 나왔을 텐데 이미 늦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 모인 세명의 조합으로 이렇게 따로 놀러 가는 건 처음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우리끼리 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술자리에서 제일 문제아들만 모였다면서 걱정을 했다. 어쩌다 보니 술자리에서 술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만 모였다. 그래도 오늘은 맥주라서 괜찮다. 그리고 이미 시작 전부터 지쳐 보이는 친구 하나가 있어서 평소처럼 마실 것 같지는 않았다.


 우선 광안리 숙소에 차를 주차한 다음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외부음식을 들고 들어가도 된다고 하길래 피자를 포장해 가기로 했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날씨는 여전히 흐렸지만 우산 없이도 놀 정도가 되었다. 버스를 타고 영화의 전당 앞에 내렸더니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축제에 오면서 비가 오는 날인데 설마 사람이 많겠냐고 했던 나의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이미 매표소 앞은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앉을자리도 없었다. 심지어 출입문 앞에서 외부음식은 반입이 불가능하다며 우리를 막아섰다. 입구에서는 컵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일단 선착순으로 나눠주는 것 같아서 컵부터 받고 바로 나오면 안 되겠냐고 직원한테 물었더니 컵만 받고 얼른 나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재빠르게 들어가서 컵을 받고 다시 출구로 나왔는데 친구가 들고 있던 피자가 없다.

 

 피자를 어디 놔뒀냐고 물었더니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했다. 어이가 없어서 그걸 왜 버리냐고 물어보니 맨 뒤에 서있는데 우리가 직원이랑 이야기를 나누더니 후다닥 입장을 하길래 당황해서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던지고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도 포장된 상태로 버린 거라 다시 곱게 주워올 수 있었다. 쓰레기통도 쓰레기가 담기지 않은 빈 종이 박스라서 피자를 잠시 안에 두었다가 꺼낸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시작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축제장소에 도착은 했는데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광장 의자에 걸터앉아서 피자를 먹고 있는 이 상황이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어떻게 피자를 버릴 생각을 하냐니깐 자기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받은 컵은 선착순 사은품이 아니었다. 사은품은 이미 마감이 되었고 컵은 모두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그래도 친구 덕에 우리가 공유하는 추억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우리는 피자를 마지막 한 조각까지 남김없이 처리하고 드디어 입장을 했다.


들어가 보니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선은 주인이 없는 것 같은 자리에 짐을 올려두고 무엇이 있는지 주변을 탐색했다. 일단 셀프코너로 가서 맥주를 컵에 따르고 축제의 묘미인 타투 스티커를 붙이러 갔다. 그런데 셋이 모여보니 성향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굳이 MBTI로 나눠보자면 우리가 함께 어울리는 무리 9명 중 2명을 제외한 7명이 I 즉, 내향적인 에너지가 강한 친구들이었고 2명만이 유일하게 E로 외향적인 에너지가 강한 친구들이었다. 그 외향적인 친구가 나를 포함해서 여기에 한 명 더 왔다.


 그래서인지 지금 외향인  사이에 끼여버린 내향인 하나가 몹시 지쳐 보였다. 나와 다른 친구가 신나서 스티커를 붙이러  때도 자기는 하지 않을 거라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줄을 기다릴 때도 자기는 찍지 않을 거라며 열심히 찍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기만  뿐이었다. 원체 흥이 많은 우리랑은 르다는  알고 있었는데도 평소보다  힘들어하는  같다.


 신나는 무대를 보면서 들썩거리는 흥을 주체할  없어서 둘이 일어나 춤을 추고 있으면 친구는 가만히 앉아 박수만 쳤다. 하지만 다른 성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황이 웃기기만   아무 생각이 없었다. 마치 말괄량이 비글  마리를 산책시키러 나온 보호자 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리고 엄연히 말하면 내향적이라고 해서 적극적이지 않고 조용하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짐을 올려놨던 자리에 알고 보니 원래 주인이 있어서 다른 자리로 옮겨야  때도 적극적으로 해결한  I 친구였다.


 축제에서는 4인용 테이블을 길게 이어 붙여 놓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도무지 앉을자리가 없어서 헤매고 있었다. 친구는 어디론가 가더니 2명씩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고 그 덕에 두 테이블을 붙여놓은 경계선 자리를 얻어서 앉을 수 있었다. 이런 걸 보면 굳이 외향인지 내향인지 나눌 필요가 없다. 단지 상황에 따라 발현되는 에너지가 다를 뿐이라고 느꼈다.


 우리는 그렇게 축제가 끝이 날 때까지 놀다가 한 명은 어제 잠을 못 자서 집으로 바로 가겠다고 말했고 나와 다른 친구는 이대로 숙소에 들어가기 아쉬워서 해운대에 있는 펍으로 향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광란의 밤을 즐기다가 새벽 1시에 숙소로 들어가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신나게 놀아서 그런지 친구와 나는 씻고 바로 잠들어 버렸다. 병원을 들어가기 전에 확실하게 논 것 같다. 내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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