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덤벙돈벙 Jun 25.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17- 귀소

2023년 5월 29일 월요일


 모처럼 나를 깨우는 알람소리 없이 푹 자다 깬 날이다. 슬쩍 실눈을 뜨고 옆을 살펴보니 친구가 깨어나서 폰을 하고 있었다. 몇 시인지 확인하려고 폰을 보니 오전 9시다. 어제 늦게 잔 것 치고는 일찍 일어났다.  


 친구는 내가 일어나서 뒤척이는 것을 보더니 밤새 코가 막혀서 코골이가 심했을 텐데 시끄럽지 않았냐고 물었다. 이미 병실에서 나는 소음으로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이 정도면 천국이라고 말했다. 친구는 내 말을 듣더니 바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났지만 한참을 누워있었다. 멍하니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아침은 뭘 먹으러 갈지 고민을 했다. 어차피 11시가 퇴실이라 시간은 여유로웠다. 창 밖을 보니 날씨는 먹구름이 잔뜩 끼여서 흐렸고 해변가에서 사람들이 모여 분주하게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끌시끌한 소리에 무슨 행사인지 구경하고 있으니깐 곧이어 어린이들이 출발선에서 동시에 앞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출발선에 적힌 글자를 유심히 살펴보니 '2023 세이브 더칠드런 국제 어린이 마라톤' 적혀 있었고 나는 창가에서 열심히 달리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같은 아침에 맞이했는데 아이들은 나와 다르게 에너지가 넘쳤다.


바닷가에서 사람들이 해맑게 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지금이 꿈인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몇 시간 뒤에 병원으로 다시 들어갈 생각에 다양한 감정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같은 시간, 같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데 마치 다른 세계인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침에는 골목 구석에 숨어있는 가정식 백반을 먹으러 갔다. 식당에 들어갔더니 사장님은 보이지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가 보여서 연락을 해봤더니 사장님은 장을 보고 돌아가는 중이라며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15분 정도 앉아 있으니 사장님이 양손 한가득 집을 들고 헐레벌떡 식당 안으로 들어오셨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에 괜찮다고 말씀드린 뒤 제육볶음과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사장님은 우리에게 반찬은 셀프라며 먹고 싶은 만큼 담으라고 했다. 셀프바에 가보니 어묵볶음부터 열무김치, 콩나물 무침, 깻잎 조림까지 반찬 종류만 8가지가 넘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반찬부터 야금야금 먹고 있으니 사장님이 무쇠팬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제육볶음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순두부찌개까지 나와서 맛있게 먹고 있으니 사장님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호박전을 서비스로 가져다주셨다. 맛과 서비스 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만족을 했다. 친구랑 둘이서 쌀 한 톨 남김없이

다 먹고 일어났는데 사장님은 깨끗하게 싹싹 비운 그릇을 보더니 놀라워했다. 보통은 여자들끼리 오면 남겨서 우리도 당연하게 남길 줄 알았는데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좋다고 말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쉴 틈도 없이 짐을 챙기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도착하니 2시쯤이었고 나는 짐을 풀었다. 엄마는 내가 조금 더 쉴 수 있도록 5시까지 동생을 봐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늘 휴식의 끝은 아쉽다.

이상하게도 밖에서 자유를 만끽하다가 다시 병원으로 들어오면 오히려 더 피곤해진다. 쉬지 않고 놀아댄 탓에 며칠 동안은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그래도 일주일 후에 나갈 기회가 또 주어졌다. 이번 일주일만 잘 버티면 된다. 나의 짧았던 자유는 이렇게 끝이 났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